루차도르Luchador
"아 정말. 이 자식 은혜도 모르는 까치 같은 놈이네?"
"야이, 등신아 까치가 은혜를 알지 왜 모르냐?"
황대현과 박재호는 걸핏하면 말다툼을 했다.
우린 9살 때부터 친구였다. 스무 살에 대학으로 흩어지면서 각자의 색채가 뚜렷해졌고, 우리의 관계도 서먹서먹 해졌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황대현이었다. 대학교를 입학한 순간 대현과 우리의 정서가 상당 부분 차이가 발생했다.
그게 대현 본연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현은 학교라는 제도권 속에 갇혀 억압되어 있었다. 대학교 입학으로 드디어 자유의 빛을 보았고 내재되어 있던 욕망이 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대현은 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만끽하기 위해 먼 지방으로 진학했다. 그 첫해 1학년 1학기 여섯 과목에 F 학점을 맛보았고, 2 금융권 저축은행에서 6백만 원을 대출받아 오토바이를 사는 기행까지 저지르고 다녔다(이 일은 훗날 신용불량자가 되는 불씨가 되었다).
거기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반년 이상 어딘가에서 두문불출했다.
오죽했으면 대현의 모친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대현의 소재를 파악하기도 했다. 뭐,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어떻든 나는 재호와의 관계는 그럭저럭 이어갔다. 대현과는 색채가 극명하게 달라져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연락을 끊게 되었다.
그런데 어젯밤 11시경 대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9년 만의 일이다.
그날 우리는 동네 조개구이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아파트 상가 거리를 걸었다.
"올림피아드 오락실, 아직도 있네?"
"어, 그러네? 여기 진짜 오래됐다."
"그래 예전에 여기서 철권 참 많이 했는데."
"한판 하고 갈까?"
"그럴까?"
오락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락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만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둘러보는 동안 재호는 동전교환기에서 지폐를 투입하고 있었다.
가만 보자, 여기 들어오니까 까마득한 옛날 일이 생각났다.
때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느라 장기간 집에 안 계셨고 아버지와 4살 터울 누나와 지낼 무렵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인천으로 일주일 일정의 출장을 가셨고 마침 누나도 대학교 MT 참석차 집이 비었었다.
나는 집이 비는 관계로 이 황금 같은 주말을 아주 즐겁게 보낼 예정이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대현을 꼬드겼다.
"야, 이번 주 우리 집 비는데 친목을 도모할 겸 술이나 한잔 걸칠까?"
대현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환대를 했다.
그날 대현은 학교를 파하고 자신의 집에 들러 간단한 개인 정비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대현의 집은 학교와 거리가 좀 있는 동네였고, 우리 집과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따라서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러니까 술 한잔 걸치기 딱 좋은 시간대에 대현이 벨을 눌렀다.
우리는 거두절미하고 술부터 마련하자고 입을 모았다.
대현은 키가 180을 훌쩍 넘어 발육상태가 남달랐다. 짧은 곱슬머리와 거뭇한 수염이 난 대현은 아파트 상가 슈퍼마켓에서 별문제 없이 소주 두 병과 맥주 가장 큰 것 두 병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소주가 22도였고 학생의 궁핍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에게는 꽤 넉넉한 양이었다.
안주거리는 딱히 필요 없었다. 집에서 봉지 라면을 잘게 부수어 끓이면 그만이었다. 잘게 부서진 면과 짭짤한 국물을 수저로 떠먹으면 그만한 안주도 없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어렸고 밤은 깊었다. 술도 넉넉했다. 들뜬 마음에 집으로 곧장 올라가기는 싫었다. 뭔가 시간 때울 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오락실이 눈에 들어왔다. 대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철권 한판 뜨고 가자."
"오케이."
대현은 오락실로 들어서자 짐짓 뜸을 들였다. 오락실은 손님이 한 명밖에 없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하필이면 철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임시로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 곡조 불렀다.
밖으로 나왔을 때 그 학생은 여전히 철권을 하고 있었다.
"아, 그냥 연결해서 꺾어버려?"
"아냐. 냅 둬. 얼마 안 남았을 거야."
학생의 게임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포기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오락실 밖에 대현이 뜻밖의 말을 했다.
"잠시만. 저 새끼 째철수 같은데?"
"째철수? 어릴 때 그 째철수?"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