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그 점을 지적하기에는 내가 밑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이제 내가 없는 곳에서 인생의 재미와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렇게 싫어하던 흡연까지 해야 할 정도로 고난을 겪었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싶은 걸까.
결론은 '나 좀 변했다.'라며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거다
나는 그의 말에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배타적인 속마음이 입으로 배출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사소한 사안이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나는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을 만큼 토라져 있었다.
"에라이, 덜떨어진 놈아 난 갈련다."
"아이, 또 왜 이래. 오래간만에 만나 놓고는."
"…."
재호가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나는 재호의 만류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재호가 황급히 일어나 붙잡았다. 나는 단호했다.
"미안하다. 재호야. 우리 다음에 소주 한잔하자.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
"아, 이 자식들 정말 왜 이래."
재호도 더는 적극적으로 붙들지 않았다. 중얼거리며 담배에 불을 댕겼다.
그날 두 친구가 술을 얼마나 마셨고 언제쯤 자리가 파했는지 알 수 없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대현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덩달아 재호와도 소원해졌다. 뭐, 의절까지 바랬던 건 아니었다. 단지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고 다시 세월은 흘렀다. 그럴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일이다.
세월이 흘러 약 10년 후(정확히는 9년이다) 우리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각자 새로운 커뮤니티에 가담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었다. 연애도 했다.
재호를 포함한 우리 셋은 모두 다른 도시에서 취업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현은 취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중간한 포지션이었다.
대현은 대학교를 중퇴했다. 자퇴인지 재적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휴학과 복학을 수없이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수학 기간을 총 결산해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주변에 그런 사연이야 흔하게 있다.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대현의 경우에는 나태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는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느라 학업에 신경 쓰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경야독하며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 삶은 늘 고단한 것이다.
아무튼, 대현의 흉이나 보자고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젯밤 11시가 다 돼 갈 무렵. 그냥 잠들기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자기 전에 책이나 좀 읽을까 싶어 책장을 기웃거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아니었고 메신저 앱의 무료 통화 알람이 맹렬히 울려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봤더니 '황대현'이었다.
황대현이 오밤중에 무슨 일로? 그것도 메신저 앱이다. 전화 대신 앱으로 통화를 거는 경우는 딱 한 가지이다. 상대방의 전화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는 메신저 앱에 자동으로 친구 추가가 된다. 어떤 사정으로 전화번호를 삭제해도 메신저 앱의 친구 목록에는 영향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번호를 지운 후 전화할 일이 생기면 메신저 통화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다. 참으로 문명의 이기는 편리함 삶을 제공해 준다. 번호를 지운 사람까지 인연이 끊어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다.
"이게 누구야? 황대현이. 어쩐 일이냐? 잘 지냈어?"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