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는 서류를 건네받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세부적인 날짜와 시간, 결제 금액이 적혀있었다. 민지는 섣불리 대답을 했다가는 문제가 커지겠다고 직감했다. 따라서 딱히 이렇다저렇다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단단히 일이 꼬였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인식했다.
"박민서 대표와 가장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게 언제입니까?"
"…글쎄요. 이틀 전부터 연락이 안 되어서 저도 그러니까…."
"이틀 전부터 연락이 없다? 그전에도 이틀 동안 연락이 안 되거나 한 적이 있었습니까?"
"네, 간혹…."
"그때는 무엇을 했다고 하던가요?"
"주로 지방에 헤드헌팅 하러 다녔다던데…."
"무슨 헌팅요? 술 잡수시러 다니셨다고요?"
"아니요. 헤드헌팅 그러니까 직원 구하러요."
"흠. 그럼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신다는 거네요?"
은주가 커피와 주전부리를 내려놓았다.
"저는 잘 몰라요. 워낙 자유분방해서…. 골치 아픈 질문은 곤란해요."
"일단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분증만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민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신분증을 꺼내 왔다. 경찰은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전화번호도 물어보고 수첩에 적었다.
이어 은주에게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은주의 입에서도 영양가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은주의 직책이 무당이라는 말을 들은 경찰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도 신분증 확인과 연락처 기록은 빼놓지 않았다.
창고 문을 열고 민서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세 모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사실 내가 최 부장 그 새끼 잡으려고 사람을 붙였걸랑."
자매는 생각지도 못한 은주의 발언에 짐짓 놀라며 흥미를 보였다.
"사람이라니?"
민지가 물었다.
"그 왜 있잖니. 심부름센터라는 곳."
"…아, 엄마 거긴 언제?"
"그러게, 기지배야. 좀 들어 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통해서 안 되겠더라. 그깟 17억이야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20년 가까이 믿고 지냈던 사람한테 뒤통수 맞고 나니까 한번 물어보고 싶더라. 나도 오기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사람을 써서 알아봤는데, 그 자식 필리핀으로 도망갔대더라. 지금은 뭐,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갖고 폐인이 다 됐다더라. 그 말 듣고 지금은 뭐 감정이 싹 가셨지만. 왜 그리로 갔을까 따져보니, 거기는 범죄자 인도가 안 되고 물가도 싸서 숨어지내기 그만한 곳도 없다는 거야. 그리고 또 덥잖니. 야자나무도 많다던데 나도 그런 곳에서 한 번 쉬어 봤으면 좋겠더라."
"엄마 지금 필리핀으로 도망가자는 말이야?"
민서가 피곤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래. 이제 이 짓도 그만 손 뗄 때가 된 것 같구나.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안돼. 아직 학교 공부도 다 못 끝냈고. 무죄 추정의 원칙 몰라? 이게 죄가 성립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여기 생활 다 포기하자는 말이야? 우선 변호사부터 알아보자."
"언니, 지금 학교가 문제가 아니야. 뉴스에 나오면 죄가 되든 안 되든 무사할 것 같애? 우리 30년 전에 겪어 봤잖아. 이제 그만 끝이라고 한국하고는 안녕이야!"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