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수록 깊어지는 사념에 대하여
꼭 안된다고 하면 하고 싶다. 아니, 해야겠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반골 기질을 고집해 왔다. 사람들이 말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보통의 경우에는 나를 설득시키지 못한다. 혹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만류가 역으로 호기심을 자극할 때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똥인지 된장인지 남들이 알려줘도, 내가 직접 찍어 먹어본 다음에 인정하는 탓이다. 혹시 모를 일이지 않은가. 남들이 똥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게 된장으로 쓰일지, 남들이 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된장 일지.
이 반골기질의 황당한 점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하지 마”가 가장 강력한 청개구리 소환 주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 그 생각만 하게 된다. 기린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면, 하루종일 그 기린만 생각난다. 일상 때문에 사고 회로가 무뎌져 기린을 잊을 때 즈음, 길을 건너다가 불쑥 기린이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한다. 감정이 관여되는 일이 특히 그렇다. 이성이 뜯어말려도, 감정은 끝끝내 나를 대가가 큰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논리적으로 내게 해로운 일이나 선택지, 사람을 잊자, 이렇게 다짐하면 역으로 그것만 자꾸 떠오른다. 이것은 마치 늪과 같다. 늪은 우리가 안된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강하게 끌어내린다. 아무리 도망쳐도, 늘 사념은 나보다 빠르다.
그래서 나는 회피하는 것보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을 택한다. 기린에 대해 끝까지 생각한다.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진심을 다해 기린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고 고민한다. 진실은 결코 얕은 곳에 있지 않다. 끝까지 깊이 파고들면, 단단한 바닥에 닿는다. 그 바닥을 차고 다시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 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다. 사람들과 갈등이 잦을 때, 거절을 당했을 때, 계속해서 무언가에 실패할 때, 기회를 놓쳤을 때, 목표한 만큼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을 때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라,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만 같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나의 결함에 대해 고민하는 늪에 빠진다.
트라우마나 나의 호불호를 끝까지 파헤쳐, 그것이 왜 나를 괴롭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어떻게 나를 지켜야 할지 알게 되니까.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그렇지 않다. 진실은 결코 얕은 곳에 있지 않지만, 어떤 늪은 끝까지 파고들 가치가 없다. 거긴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바닥일 뿐이다. 어떤 늪은 도망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도망칠 수 없다면 모른 척하기로 약속하자.
더 이상 자신의 기질이나 성격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하자. 어떤 점이 잘못되어서 고쳐야겠다는 생각 일랑 않기로 하자. 의심이 들어도 모른 척하기로 약속하자. 거기에 늪이 없다고 믿는다면, 우린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다.
–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그곳에는, 늪이 없다고 믿는 M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