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짠아 엄마는 대충 하는 법이 없어
아내는 임신 전까지 꾸준히 취미생활을 하고 살아왔다. 공연 관람, 맛집 탐방, 폰 게임 같은 보편적인 거는 기본 장착이고 합창단, 발레, 꽃꽂이, 기타 연주 등을 즐겼다. 혼자 하기보단 지인들이랑 같이 하거나 수업을 들으며 즐기는 편. 심지어 한때 현질까지 하던 폰 게임은 헤비유저들 카톡방에도 들어가 있었다능. 그렇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한 안정기까지는 취미를 쉴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방콕만 하려니 무료했던 아내의 새 취미는 뜨개질! 짠짠이 모자를 떠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불이 붙어버렸다.(사실 취미를 대충 하는 법이 없다.) 퇴근하고 4~5시간을 유튜브를 보며 실과 바늘을 붙잡고 살더라. 독한 여자 같으니... 날 가져요 엉엉. 소일거리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자고 시작한 뜨개질인데 새벽까지 안 자며 눈에 불을 켜고 죽어라 했다는 아이러니. 짠짠이 것도 좀 만들고 주변에 선물도 해주고. 늦게 자는 것 빼고는 아주 건전하고 생산적인 취미였다.
안정기가 되어 외출이 가능해지자 다시 합창단을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대학교 합창단 동아리에서 만나서 무려 15년이 넘도록 합창단 활동을 하는 중. 대학교 졸업 후에는 졸업생 합창단에서. 우리를 만나게 해 주고 같이 술 먹을 사람들을 한가득 남겨준 고마운 곳이다. 2018년 12월 초, 16주 차에 예정된 공연을 서느냐 마느냐 고민하다가 서는 걸로 결정! 그동안 합창단 공연에서 임산부로서 아기 포함 둘이서 서는 공연자들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고 우리도 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나 포함해서 셋이서 서는 공연! 짠짠이가 태어나고 나면 당분간 합창단 활동은 어려울 테니 마지막 공연으로서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2019년 3월 말, 31주 차에 한번 더 공연을 선 게 함정.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이제는 취미생활을 대강 접고 출산휴가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는 새로운 취미 열차에 탑승하였으니. 매주 토요일마다 드로잉 수업을 시작했다. 운전기사 명목으로 나도 함께. 아내는 교과서와 노트에 그림을 잔뜩 그리던 만화 키즈였지만 난 그림이라고는 미술시간에 의무적으로 하는 것 빼고는 피해 다니기만 했던 사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사진 따라 그리기라는 가벼운 콘텐츠로 수업을 진행하니까 수업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더라. 그리고 배운 걸 토대로 집에서 아내와 함께 색연필과 스케치북으로 언제든지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짠짠이 방에 놔둘 액자 그림도 각자 만들었다.
아내가 그림 그리기를 상당히 좋아해서 수업 때 사용했던 72색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줬는데 이게 또 아내의 취미 열차에 불을 댕겨버렸다. 또 잠을 줄여가며 이번엔 그림 그리기라니. 주변 사람들 그리는 거에 푹 빠져서 선물도 하고 그랬다. 우리 마누라는 좀 독하게 하긴 했지만 임신 기간에 건전한 취미를 만드는 건 추천. 마음 편히 시간도 잘 가고 자연스럽게 태교도 되니 좋았다. 직접 경험하고 주변 사례를 보니 임신 기간의 취미는 이런 게 좋겠다.
1. 특별한 장비나 도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
2.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것
3.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것
4. 약간 중독성이 있어야 불 붙이기 좋음
5. 조금은 반복적인 활동이 머리 비우고 시간 보내기 좋음
6. 혼자서도 배우자와 같이도 즐길 수 있는 것
우리에게 있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였고 뜨개질은 아내 혼자만의 취미로서 훌륭한 역할을 했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게임도 좋은 취미인 것 같다. 너무 중독적인 종류만 아니라면. 간단히 조이스틱 세팅해서 옛날 슈팅게임(보글보글 이라든지)을 같이 하면 건전하고 건강한 취미가 될 거 같다. 물론 실행하지는 못했읍니다. 주말에 날 잡아서 티비에 화면 연결하고 프린세스 메이커 같이 하면서 가상의 애 키우기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결국은 못했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스포일러지만, 짠짠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이 모든 취미는 강제 종료되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