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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간 첫 해외여행

짠짠아 비행기 타자!

by 다비드

짠짠이 기형아 검사를 마치고 이사 준비도 마무리할 즈음 우리의 관심사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기형아 검사를 마치자마자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본 게 "해외여행 가도 되는 기간이 언제인가요?". 우리 부부는 같이 여행을 참 열심히 다녔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신혼여행 일정에 맞춰 결혼식 날짜를 설 연휴 근처로 잡은 정도. 당시 설 연휴와 붙여서 2주의 신혼여행을 신나게 다녀왔는데 나중에 보니 3~4년에 한 번 꼴로 설 연휴 중에 결혼기념일이 잡힌다는 슬픈 전설이(...).

여하튼 선생님이 보통 28주 이전에 가면 큰 문제없으니 다녀오라는 말에 맘 편히 가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는 게 산모와 태아에 큰 부담이 된다기보다는 해외에 가서 혹시라도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어렵다는 게 실질적인 문제라고 하더라. 건강상태가 양호하면 28주 이내 기간에 비행시간 5시간 이내 정도는 큰 문제가 없다고. 오케이 그럼 우리도 남들 다 간다는 태교여행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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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 스카이스캐너, 부킹닷컴 보면서 신나는 여행 계획 짜기!


어디를 갈 것인가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론은 남들 다 간다는 .

1) 무리 없이 여행할 휴양지
2) 비행시간 5시간 이내
3) 괜찮은 숙소 환경

이 조건을 적절히 만족하는 게 괌이었다. 한 항목씩 따져보면 더 좋은 대안이 있지만 종합평점을 매겨보니 결론은 괌으로. 동남아 휴양지들도 상당히 끌렸지만 당시 동남아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이라 포기. 장소를 정했으니 숙소, 일정 등을 정할 차례. 이번 여행은 휴양이니 아내가 준비하기로. 우리 여행 준비에는 일종의 룰이 있는데 많이 이동하고 구경하는 관광 여행은 내가, 숙소 중심으로 푹 쉬는 휴양 여행은 아내가 준비하는 것. 이는 각자의 여행 취향을 반영한 방침이다. 이번 괌 여행의 모토는 "숙소에서 물놀이하면서 쉬다가 가끔씩 드라이브 하기" 였지만 어쩌다 보니 열심히 꽉 채워 놀고 오는 일정이 만들어졌다.

1) 1일 차: 저녁 비행기로 늦은 밤 괌 도착 / 공항에서 가까운 저렴한 숙소에서 수면용 숙박
2) 2일 차: 오전에 간단히 구경 / 리조트 체크인 및 물놀이
3) 3일 차: 물놀이, 드라이브, 휴식
4) 4일 차: 물놀이, 드라이브, 밤마실 / 리조트 체크아웃
5) 5일 차: 새벽 비행기로 아침 6시 인천 도착 / 출근(...)

써놓고 보니 임산부와 할 일정이 아닌 거 같기도(...). 여하튼 따뜻한 남쪽 바다로 출발!


20190125_175122.jpg 휴가 때마다 라운지에서 출국 직전까지 일하는 모습을 회사 어르신들이 보셔야 하는데


거의 자정에 도착해서 차 렌트하고 잠만 자는 방에 도착. 근데 잠만 잘 목적으로 예약한 이 저렴한 숙소가 생각보다 더 허름해서 아내가 좀 실망했다.(이 숙소와 렌터카만 내가 준비함) 괌 전체적으로 건물이 좀 낡은 편이긴 하지만 이 숙소는 90년대 토요 외화 시리즈에 나오는 허름한 여관방 같은 느낌. 피곤하니 그냥 자자 싶었지만 숙소 바로 앞의 펍에서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다 들려서 제대로 못 잤다. 이런 실망이 쌓이다 보면 여행 중 다툼으로 번지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2일 차 오전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대개 여행에서 많이 다투듯이 우리도 여행 방식이나 일정에 대한 다툼. 우리의 경우는 대개 이렇다.

나: 여기까지 와서 방에서 뒹굴지 말고 좀 나가자
vs
아내: 일하러 온 것도 아닌데 여유롭게 좀 지내자

나는 여행을 가면 항상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많이 걷고 돌아다니면서 여행지의 볼거리를 열심히 보는 스타일. 아내도 여기에 크게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쇼핑도 하고 휴식도 하길 원하는 편. 2일 차 오전 첫 일정으로 쇼핑이 좀 길어지다 보니 내가 짜증을 좀 내서 결국은 다툼으로 번졌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늘 그렇듯이 시간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다툼으로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여행에서 좀 더 여유롭게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직 멀었다.

신기한 게 혼자서는 여행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여행에 취미도 없는데 아내와 여행을 가기만 하면 열심히 아내와 이것저것 보고 싶다. 대학생 때 혼자 3주간 배낭여행을 하고 난 결론은 "난 여행 갈 필요 없는 사람이구나"였다. 해외 근무하던 2년 동안 딱 한번 주말에 혼자 여행 간 적 있는데 같은 결론. 그런데 아내랑 여행을 가면 욕심이 나고 같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아내를 닦달하게 된다는 아이러니.


20190126_132200.jpg 조르고 졸라서 결국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올랐읍니다


휴양지로서 괌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리조트 앞바다에서 하는 스노클링이 꿀잼. 백사장 근처 바다에도 산호가 많고 여기저기 물고기 떼들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스노클링이 처음이라 바닷속 구경이 싱기방기. 계속 바다 - 수영장 - 방을 왕복하면서 여름방학 맞은 초딩마냥 신나게 끊임없이 물놀이를 했다. 놀다가 먹고 마시고 자고 또 놀고먹고 마시는 게으르고 행복한 삶. 이게 돈으로 사는 휴양의 맛이 아닌가 시프요. 사실 아내가 예약한 리조트가 비싸서 좀 흠칫했는데 와보니 대만족. 역시 믿고 같이 사는 최대주주님께 충성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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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놀고 먹고 마시고 자고 신나게 탕진잼


괌은 전반적으로 시설이 낡은 편이고 음식이나 기타 서비스도 비교적 후진데다 물가마저 높지만, 막상 와보니 왜 많은 사람들이 태교여행으로 오는지 알겠더라.

1) 4~5 시간의 적당한 비행시간
2) 공항과 휴양지가 매우 가까움
3) 아이 동반 여행을 위한 인프라 구비
4) 한국인 편의 서비스 (어디는 SKT 할인마저 있음)
5) 쇼핑

괌에는 한국인 가족들이 정말 많았다. 누가 "괌에서 애를 손에 잡고 다니거나 배에 넣고 다니면 다 한국인이다."라고 했는데 과장이 아닌 듯. 여기저기 들리는 한국어와 익숙한 생김새에 무슨 대명리조트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 원래 우리는 한국인 많지 않은 여행지를 선호하는데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임산부 아내와 오니 한국인 가족들 많고 특히 임산부 한국인이 많이 보이니 괜히 맘이 편해지더라. 전에는 남들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찾아다니면서 외부의 볼거리 즐길거리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바다에서 둘만의 시간에 집중했다. 어디 갈까 뭐 할까 뭐 먹을까 알아보고 외부를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 대신 둘이 물놀이하고 우리 가족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채워졌다. 그러니 저기 저 가족들도 저렇게 왔구나 싶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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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보다 한국인이 많은 듯한 괌 아웃렛에서 마음이 푸근해지신 최대주주님


리조트 체크아웃하고 비행기 뜨기 전까지의 마지막 밤. 아내와 바다를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게 당분간 마지막 여행이겠지. 이제 석 달이면 짠짠이 나오겠네. 두 달 후면 출산휴가/육아휴직 들어가는구나. 이사한 동네는 어떻네 저떻네 그런 이야기들. 짠짠이 가지고 나서 한동안 지고 있던 긴장을 내려놓고 따뜻한 바닷바람 맞으며 앞으로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자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준비는 안 된 거 같지만 왠지 뭐든 잘 될 거 같고 희망찬 기분이 들었다. 23주 차에 다녀온 이 태교여행을 기점으로 우리 임신기간도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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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짠짠이랑 다시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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