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날로부터 임산부와 함께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처음인 임산부와 같이 사는 나도 모든 게 처음. 우당탕탕 좌충우돌까지는 아니지만 삐질삐질하며 살았던 시간. 초기에는 유산 조심하느라 안절부절못하며 조용히 방콕 생활만 했다. 아무리 무리하지 않으려고 해도 출퇴근은 해야 하니 통근 이동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퇴근은 내가 아내를 픽업해서 차로 조심히 같이 오면 되는데 아내 출근은 마땅히 대안이 없었다. 결국은 2호선 지옥철을 피해 조금 일찍 출근하는 게 최선. 그마저도 앉아가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고 한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임산부 배려석을 실제로 앉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고. 임산부 배지를 아무리 티 나게 달아도, 나중에는 배가 나와서 누가 봐도 임산부로 보여도 많은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단다. 그나마 나이 든 여성분들이 종종 자리를 양보해주셨다고. 나도 아내가 임산부가 되고 나서야 임산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일이 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인식이 잘 안되나 보다. 이렇게 늦게나마 시야를 넓혀간다.
임신한 아내가 첫 번째로 힘든 것이 이동. 그리고 다음이 음식이었다. 대한민국 온 동네 가득한 한국식 발효음식 냄새가 입덧 중인 아내를 괴롭혔다. 짜고 매콤한 한식에는 모두 비슷한 냄새가 있다고 하더라. 덕분에 본의 아니게 양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양식은 발효음식이 많지 않고 담백한 식단이 많아 입덧 중인 임산부에게 적절한 것 같다. 다행히 나도 아내도 양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수월하게 먹고 지냈다. 사실 식단을 고르는 것보다 큰 문제는 식욕을 깨우는 것이었다. 입덧이 시작된 아내는 완전히 식욕을 잃었다. 평소에도 아주 잘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과 술은 열심히 먹던 사람이었는데. 특히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와 와인 생각이 전혀 안 난다니 신기했다. 임신하면 맛있는 술 못 먹어서 어떡할까 싶었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아내의 입맛을 깨우기 위해 이리저리 단서를 찾아다녔다. 가능한 범위에서 이것저것 먹여보면서 잘 먹히는 키워드를 분석. 아내는 단 것이 단서였다. 냄새가 없고 달달한 것들로 칼로리를 보충하다가 가끔씩은 아내가 좋아하던 혹은 가고 싶었던 식당에서 양식과 일식을 즐겼다. 신기하게도 잘 안 들어가던 종류의 음식이 고급 식당에서 비싼 메뉴로 먹으니 잘 들어가더라.(...) 아내의 말로는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은 거부감이 훨씬 덜했다고. 어차피 짠짠이 나오면 가기 힘들 식당들 실컷 가자 싶어서 열심히 다녔다. 아내와 예정일이 2주 차이 나는 후배는 입덧이 심한 두 달간 누워서 물밖에 못 먹고 체중이 8킬로 줄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리는 다행이다 싶었다. 이 시국에 돈이 문제입니까 많이만 드십시오. 그래도 새벽 2시에 멜론이 먹고 싶다 이런 요구는 없어서 다행. 아내는 당시에 식욕도 없고 생각이 안 나서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대신 밤에 잠자는 게 불편해진 아내를 위해 쿠션 갖다 주고 주물러 주고 그런 건 많이 했다. 그러고 보니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이 다 불편했구나.
이동, 식사, 수면이 물리적인 부분이라면 그 외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아내를 도와야 할 것들이었다.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 임신에 따른 육신의 고단함, 유산 위험의 스트레스로 인해 아내는 부정적인 표현이 많아졌고 예민해졌다. 이런 경우에 나는 보통 "내가 뭘 잘못했나? 뭘 해결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사고가 이어졌고 아내와 대화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건 아내와 같이 지낸 지 10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부분인데 이제는 개선을 해야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찾은 단서는,
그래요. 그렇구나. 그러네. 그러겠네.
몸이 무겁고 쑤시니까 움직일 때마다 힘들구나. 음식 냄새 때문에 괴롭구나. 예전에 맘대로 되던 것들이 불편해지니 답답하고 짜증 나겠네. 짠짠이가 무사할까 걱정이 많구나.
내가 당장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건 아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 짜증, 푸념을 내놓는 것은 그냥 감정을 표현하는 것뿐. 내가 뭔가를 해결하려고 한 거는 쓸데없는 접근이었다. 조금 실마리가 잡히고 나서는 아내의 표현에 조급해하지 않고 들으려고 했다. 뭔가 직접적인 해결은 못 하더라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는 건 꽤 도움이 되었다.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고 아내가 좋아하는 석양도 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아내가 알아서 회복했다.
임산부 아내와 함께 산다는 건 내가 뭔가 특별한 걸 하는 게 아니었다. 아내가 힘들 때 자리를 지키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도록 보조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가 스스로 찾아간 취미생활을 나름 열심히 보조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