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짠아 우리 집이다!
최종 이사 후보 3곳의 지역은 인덕원, 서초, 사당이었다. 애초에 평촌과 서초였는데 어쩌다 인덕원과 사당이?!
내 직장은 인덕원과 평촌역 사이의 오피스타운인데 평촌이 조금 더 가까워서 처음에는 평촌역만 알아봤다. 하지만 평촌역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어 고민하다가 지도를 봤는데 인덕원역 앞에 있는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실은 평촌역 앞의 신축 아파트를 아내가 상당히 맘에 들어했는데 예산 때문에 포기한 타이밍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통도 유리한 인덕원이 급 매력적이었다.
서초에는 우리 예산과 조건에 맞는 집이 많지 않아 후보를 하나만 추렸는데 비슷한 통근 조건에서 사당에 괜찮은 대안이 있었다. 서초 매물이나 사당 매물이나 아내 회사 통근은 비슷한데 사당에서는 내 통근 조건이 훨씬 나아지고 가격도 조금 더 저렴해서 최종 후보로 추가.
결론은 인덕원!
실은 4주에 걸친 부동산 투어에 아내가 상당히 지쳐있었다. 당시는 막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라 몸에 부담도 상당했는데 막판에는 마음에 뒀던 매물을 고민하다가 놓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리모델링한 인덕원 아파트 매물을 본 아내가 현장에서 바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아 몰라. 이제 더 볼 기운도 없어. 그냥 여기로 해!"라고 했지만 뜯어보니 확실히 장점이 많았다.
1. 대출 없이 예산 확보 가능
2. 아파트 단지 환경 및 깔끔한 매물 상태(도배도 불필요)
3. 도보 10분으로 내 직장 통근
4. 버스 1회 60분으로 아내 직장 통근
5. 상대적으로 우수한 서울 접근성
6. 유모차 산책 가능한 공원
7. 대형마트, 백화점, 병원 등 편의시설 이용 편리
육아를 고려하면 아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정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아내의 출산휴가/육아휴직 기간이 약 1.5년일 것을 고려하여 이렇게 방침을 정했다.
1. 출산휴가/육아휴직 전까지 아내 퇴근 시 내가 자가용으로 픽업
2. 짠짠이 기상 후 아침 8시 출근 전까지 내가 육아 담당
3.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아내 점심 챙겨주고 짠짠이 보다가 회사 복귀
4. 칼퇴 후 18시 전에 귀가하여 육아 참전
5. 새벽 수유는 아내 전담(내 직장생활을 위한 아내의 배려)
이사 후 아내의 출근 기간은 약 4개월이고 이후 1년 이상은 통근이 없으므로 내 직장에 가까운 게 낫겠다는 결론이었다. 어중간히 가까운 게 아니라 도보/자전거 10분 이내다 보니 내가 점심시간에 육아 참전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 그리고 혹시나 병원 등의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아내 육아휴직 종료 후의 계획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이제 이사 준비를 할 차례. 이런 본격 이사는 처음이라 좀 막막했다. 결혼할 때는 집을 구해놓고 각자 원룸에서 짐을 챙겨 오는 수준이라 작은 용달 트럭 하나로 끝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4년을 생활한 짐과 짠짠이를 품은 아내가 있었다. 포장이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업체 검색. 요새는 인터넷 사이트에 견적 의뢰를 하면 십 수개의 견적서가 오고 그중에서 고르면 된다. 가격과 평점을 미리 확인하여 5개를 추리고 전화해서 방문견적을 받았다. 그중에 방문상담 시 가장 느낌이 좋고 가격이 너무 낮지 않은 곳으로 계약했다. 이번 이사도 그렇고 외부 용역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
사람 손 타는 일은 돈 너무 아끼지 마라. 스트레스가 더 손해다.
전세 계약, 이사 계약을 마무리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런 큰 결정이 처음이라서 알아볼 당시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뭐든지 처음이라고 쫄 필요는 없다. 웬만한 것은 닥치면 대강 어떻게 되더라. 이건 육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8년 11월, 우리는 간만의 여유를 즐겼다. 짠짠이는 안정기에 접어들어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고 있었고 이사 준비도 끝났다. 게다가 입덧마저 진정되었으니. 이제 곧 떠날 동네를 한 달간 구석구석 돌아봤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먼 남쪽 지방 출신이라 대학 입학부터 봉천동에서 자취를 하며 10년을 넘게 살았다. 특히 나는 어릴 적 이사를 종종 다녀서 봉천동 자취방이 가장 길게 산 곳이었다. 4평짜리 원룸 한 곳에서 무려 10년을 살다니. 따지고 보면 인생의 절반을 서울 봉천동에서 산 거다. 이 곳을 떠난다는 게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 짠짠이는 이렇게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사하는 날. 포장이사는 정말로 미리 준비할 게 거의 없었다. 버릴 것들 정리만 하고 몇 가지 귀중품만 싸고 이사팀을 기다렸다. 이사팀이 와서 3시간을 척척척 하니 집이 싹 비워졌다. 문을 닫고 각종 계량기 사진을 집주인에게 보내서 정산을 마치고 인덕원으로 향했다. 새 집에 가서 잔금을 치르고 짐을 정리하고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까지 하니 이제야 이사를 했구나 실감이 났다. 다 마치고 집에 와서 한숨 돌리다 보니 봉천동에 놓고 온 게 갑자기 생각났다. 번거롭지만 아내와 둘이 다녀오기로. 텅 빈 옛집에 오니 기분이 묘했다. 괜히 좀 더 돌아다녀보고 창문도 한 번씩 열어보고 사진도 찍고 조금 머물렀다. 이젠 정말 안녕 봉천동. 그리고 안녕 인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