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기형아 검사에서 낙관적인 결과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소식을 조금씩 알리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내는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혈액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위험도가 높게 나왔습니다. 1/40. 추가 정밀검사가 필요합니다."
앞서 1차 기형아 검사 결과가 좋다고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위험도가 1/40이면 얼마나 높은 거지. 2.5% 확률이면 진짜 높은 거 아닌가. 어디 보자 저위험군 기준이... 1/270?! 그냥 기준을 넘은 게 아니라 엄청 높은 거네. 큰일이다. 정말 다운증후군이면 어떡하지.
우리가 뭘 잘못했지...
아이에게 닥친 위기를 마주하면 자책을 하게 된다. 초보 부모는 다 그렇지 않을까. 그동안 했던 수많은 일들 어딘가에 원인이 있는 것 같아 과거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원망스러워졌다. 아내는 회사에서 이 소식을 듣고 멍하게 오후를 보냈다가 나를 보고는 펑펑 울었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나. 괜찮다 괜찮을 거다 하는 수밖에.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에 미리 겁먹지 말고 얼른 추가 검사를 받고 기다리기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은 추가로 니프티 검사 또는 양수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 여부를 확인한다. 여기서 또 우리의 고민이 발생했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면 고민거리가 없는데 일종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니프티 검사: 정확도 99% / 산모 채혈 방식이라 태아 위험 없음
vs
양수 검사: 정확도 99.9% / 바늘로 양수를 채취하는 방식이라 태아 사고 위험 존재
원래 다니던 난임 전문병원은 양수 검사로 유명한 곳이라 양수 검사를 권했다. 하지만 아내는 바늘이 들어간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니프티 검사는 안전하지만 행여라도 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어차피 양수 검사를 해야 하고 괴로운 시간이 연장된다. 아내는 고민하고 이리저리 인터넷도 뒤져봤지만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정보가 늘어난다고 마음이 편해지거나 선택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대개 선택을 못 하는 이유는 선택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이럴 때 남편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자. 내가 책임질게. 잘못되면 나를 탓해.
나는 우선 현직 산부인과 지인들 의견을 들으니 니프티 검사의 정확도도 충분하고 지금 다니는 병원이 양수 검사로 유명해서 사고 없을 테니 두 검사 중에 뭘 해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니프티 검사로 결정했다. 검사 결과는 잘 나올 테니 안전한 걸로 하자고. 무조건 긍정적인 말만 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둘 중에 한 사람은 그래야 한다. 사실 내가 무슨 실질적인 책임을 얼마나 질 수 있나. 그렇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내가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괜찮다 걱정마라 아무 일 없다 나만 믿어라" 이렇게 계속 말했다. 분만할 병원으로 옮겨서 니프티 검사를 했고 2주를 기다렸다.
검사 결과 짠짠이는 정상이었다.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를 지나기가 어려울 줄이야. 아내 말을 빌리자면 "임신 관련 난관의 마일스톤을 모조리 찍는 느낌". 검사 결과를 받고 나서야 얘길 하는데 아내는 2주 동안 악몽을 3번이나 꿨다고 한다. 말도 못 하고 속이 문드러졌을 아내가 안쓰러웠다. 지인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회사와 집만 오가며 나쁜 생각 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2주. 이 기간 동안 또 하나의 진부한 문장이 새겨졌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정말 다른 욕심 다 내려놓고 건강하기만 바라게 되더라. 짠짠이를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만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의 마음을 항상 기억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가족들만 건강하다면 다 괜찮다. 이제는 이걸 기억하며 그땐 짠짠이가 단단히 효도를 하려고 그랬나 보다 하고 웃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