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짠이 반가워!
임신 소식을 처음 알린 건 5주 차 즈음 출장지의 외국인 동료였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 상황이고 실질적으로 첫 임신 소식을 알린 건 6주 차 양가 부모님이었다. 원래는 안정기인 12주 전에는 알릴 생각이 없었는데 요양을 위해 추석 귀향을 패스하기로 결정하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저희 이번 추석에 못 내려가겠습니다."
"왜???"
"딸/며느리가 임신을 했습니다."
"!!!!!!!!(환호) 그래! 오지 마! 안 와도 돼!!!"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소식을 전했는데 정말 엄청나게 기뻐하셔서 많이 놀랐다. 당신들은 환갑이 넘었고 우린 결혼한 지 4년이나 되었으니 많이 기다리셨겠지만 생각보다 너무 반응이 격해서 얼떨떨. 나중에 들어보니 부담될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다들 아주 애타게 기다리셨다고. 하긴 한 3년 차부터 장모님께서는 살살 이야기를 흘리긴 하셨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이런 뻔한 표현이 왜 그리도 수명이 긴지 실감 난다. 부모형제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상당히 무미건조한 성격의 전형적인 공돌이인데도 임신을 알리는 순간은 특별하더라. 가족들과 나눈 영상통화, 카톡 대화창을 한동안 되새김질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음은 자주 보는 지인들. 종종 모여서 음주/과식/수다를 즐기는 사이인지라 안정기가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얘(아내)는 술 못 먹습니다."
"왜?? 혹시...???"
"맞습니다 ㅋㅋㅋㅋ"
"!!!!!!(환호)"
그들이 대부분 육아 선배들이라서 소식 전하기도 편했고 임신 과정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특히 유산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나누고 여러 가지 도움말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난임, 유산, 난산 등의 어려움이 꽤 흔한 일이고 내 주변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굳이 자세히 알릴 일이 아니라 잘 모르고 있었을 뿐. 막상 우리가 그런 어려움의 당사자가 되니까 지인들은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주기적으로 챙겨줬다. 도움말도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 나눈 것 자체가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오히려 부모형제들에게는 걱정 끼칠까 봐 세세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나눌 수 있으니. 지인들과의 시간이 유산 위험을 넘어 안정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힘이 되었다. 고마웠다. 같이 술 많이 먹길 잘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12주 차 안정기가 찾아왔다.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입덧도 조금 나아졌고 마음도 한결 편해져서 외부활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동호회도 복귀하고 결혼식도 다니고. 사람들 만나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임신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는 게 정말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전에 임신 소식을 잘 축하해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결혼 전후와도 비슷하다. 내 결혼 전에 수백 번의 결혼식을 갔지만 정작 내가 결혼하고 나서야 제대로 결혼을 축하해줄 마음을 깨달은 듯한. 역시나 사람은 경험해야 깨닫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축복 속에 짠짠이는 순조롭게 자랐다.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에 1차 기형아 검사를 했다. 정밀초음파로 태아를 육안 관찰하여 기형아 여부를 대략적으로 판단하는 절차. 핵심은 콧대가 뚜렷한가, 목 뒤 투명대가 두껍지 않은가, 이 두 가지 인데 짠짠이는 다행히 이상이 없어서 마음을 놓았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가는 과정은 낮은 확률의 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의 연속이다. 유산 위험 단계를 거쳐 또 한 단계를 지나니 이제 이대로 시간만 지나면 짠짠이를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