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복귀한 뒤 첫 주말,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임신 테스트를 하고 난 뒤에 간 병원에서 임신 확인과 함께 유산 위험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만 나이 33세, 요새 사회에서는, 그리고 우리 생각에도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의학적 소견은 달랐다. 출산 시점 산모 나이 만 35세부터 '노산'으로 분류한다. 아내도 이 부분을 상당히 의식해서 아이를 가지기로 하고는 임신을 서둘렀던 거고. 아기집에 피가 좀 고여있는데 초산이라 유산 가능성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임신을 하니 이 말의 무게가 이전과는 굉장히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기본적으로 위험(Risk) 수용적 성향이라 "만에 하나"로 시작하는 많은 걱정들을 대체로 답답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진짜 위험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랬던 거였다. 게다가 이건 앞으로 닥칠 위험도 아니었다. 현실화된 위험은 위기(Crisis)다. 내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위험과 위기를 겪게 된다. 위험은 걱정이 따라오지만 위기는 자책을 불러온다. 아내는 자책으로 상당히 힘들어했다.
왜 모임을 나갔을까. 왜 술을 마셨을까. 왜 무리했을까. '왜'로 시작하는 수많은 물음들...
아이의 위기와 관련되었을 것 같은 모든 일들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아내를 덮쳤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아이에게 해로울까 걱정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게다가 이런 상황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보통은 유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정기까지 주변에 안 알린다는데 우린 혹시나 정도의 수준이 아니니. 당시 내가 아내의 마음을 달래는 건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위로를 잘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크게 깨달았다. 긴 연애+신혼 기간 동안 아내가 가장 서운해하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아직도 그 모양이었다. 임신과 육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여자인 아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고 남편인 나는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위로하는 게 최선인 경우가 많다. 남편들은 아내를 위로하는 법을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것이다. 남편의 임신/육아 준비랄까.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미 늦은 건 어쩔 수 없고.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해서 바로 실행하기.
1. 아내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단축근무 신청. 아내 회사는 임신 6주~12주 기간 동안 임산부에게 6시간 근무를 허락하는 제도가 있었다. 언제부터 쓸까 고민하는 아내에게 당장 신청하자고 했다.
2. 가능한 대로 아내 출퇴근 라이드. 2호선 지옥철 출퇴근길을 피해야 했다. 출근은 많이 못해줬지만 퇴근은 80% 이상!
3. 추석 귀향 일정 취소 및 요양.
4. 요양을 위한 집안 환경 구축 및 가사 전담.
열심히 병원 다니고 요양하면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배가 아프거나 피가 비치는 날에는 둘이서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그리고 입덧도 같이 찾아왔다. 얼큰한 음식 냄새가 괴로워서 한동안 찌개, 탕, 볶음 요리는 중단. 음식점 많은 먹자골목은 진입 불가. 지나고 나서 여러 케이스와 비교했을 때 아주 지독한 입덧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처음이니 아주 힘들어했다. 입덧에는 딱히 왕도가 없더라. 입덧 유발 상황을 최대한 피하면서 음식 잘 골라먹기. 산부인과 의사 친구가 추천해준 입덧 캔디도 조금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는데, 입덧을 하면 괴로워서 몸이 힘들고 입덧을 안 하면 혹시 짠짠이가 잘못되었을까 마음이 힘들고 이런 진퇴양난에 빠졌다. 우산장수와 양산장수의 엄마 이야기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지만 긍정보다는 부정적 생각이 주로 아내를 지배했다. 처음 겪는 커다란 일에 의연하게 긍정적 자세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더라. 사실 임신과 육아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종의 평균적인 수준이란 게 있고 누가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게 처음이고 단 하나의 케이스이니 호들갑을 떨 수밖에.
아내는 5주부터 8주까지는 주 2회, 그 이후엔 주 1회씩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매번 유산방지 주사도 처방받았다. 다행히도 매주 병원에 갈 때마다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 갔고 10주 정도 되니 아기집에 핏자국은 거의 사라졌다. 12주 안정기에 접어들어 "이제 4주 후에 오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정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표현이 절실하게 와 닿더라. 예전에는 심드렁했던 많은 관용어구들을 하나하나 새로 마음에 새기게 된다. 짠짠이가 생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