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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r 22. 2024

너는 어디에 있을까

알지만 알지 못했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그저 흩날리는 정도였지만. 하늘은 뿌연 잿빛이고 공기는 새파랬다. 입김이 나오는 순간 얼어버릴 것 같은, 양쪽 귀가 내 것이 아닌 것같이 감각이 사라지는 그런 추운 날. 놀랍게도 도봉산으로 향하는 등산객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게 계속 이어졌다. 마치 이 날 이 시간, 다 같이 여기서 만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계모임에서 전국 유명한 산을 찾아다니셨다.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한국 사람들이 등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 게. 여기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서울에서. 면적 대비 가장 많은 방문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북한산 옆 도봉산에서.


첫눈이 내린 다음날, 감사하게도 햇빛이 따스하게 얼굴에 와닿았다. 이른 아침부터 끝없이 밀려오는 등산객 무리에 합류한 우리는 도봉산 신선대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와 함께 걸어온 그 많은 등산객들은 다양한 연령대만큼이나 다양하게 개발된 등산 및 둘레길 코스에 따라 여러 갈래로 다 흩어졌다.


우리 가족에게 도봉산은, 암릉을 타고 올라가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다른 산에서 보지 못한 철제 난간봉이 길 중간에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도 내려오는 사람도 그 난간을 잡고 이동했다.


등산 후기를 여럿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데. 그 단단할 것 같은 마음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실물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정녕 등반 준비가 된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마당바위까지는 갈 만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날씨가 적당히 좋아서. 나의 딸이 울진 성류굴 탐험할 때와 같은 모험정신을 발휘해 줘서. 주변의 등산객들이 그녀를 보고 감탄하고 열렬히 응원해 주셔서. 우리는 오늘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오렌지즙 짜듯이 나는 짜내고 있었다.



뿌옇게 흐린 하늘을 볼 때,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마당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간식도 먹고 눈앞에 탁 트인 하늘도 보면서. 분명 맑은 날씨인데 하늘이 뿌옇다. 대기오염의 실상을 눈앞에 마주하고 마음 저 아래에서부터 찌릿해졌다. 사실 우리 가족은 소도시에서 깨끗한 하늘을 보고 살고 있지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지구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가족이 만든 쓰레기를 집에서 비우고 눈앞에서 사라지게 한다고 아무 일 없었던 걸로 되지 않는 것처럼.


도심 속에 있는
도봉산에서,

이 정도의 현실 마주 보기와
불편한 진실 받아들이기가
필수과제로 주어졌다.


탁한 하늘 아래, 약을 꿀꺽 삼키듯 필수과제를 넘기고 마당바위에서 털고 일어났다. 엉덩이에 붙은 흙먼지는 털어낼 수 있었지만, 무거워진 책임감은 더 강력하게 내 몸에 붙어버렸다.



까마귀의 자태를 가까이서 보는 영광은 덤이었다



그다음은 더 큰 의지가 필요했다. 아주 큰 바위와 그냥 큰 바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급경사 길을 따라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다. 땀이 났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는 무한반복궤도 속에서.



혼잡 탐방로, 급경사 등산길에 믿을 수 없는 그 이름



마지막 신선대 오르는 길은 아래에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바로 앞에 올라가는 사람의 엉덩이가 내 머리 위에서 멀어지는 각도랄까. 그 가파른 암벽등산길에 올라가는 난간과 내려오는 난간 두 줄이 박혀있었다.


혼잡 탐방로 안내 현수막이 난간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거렸다. 신선대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현수막 위치에서 정상까지 사람이 가득 차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각도의 오르막에 봉 하나 잡고 멈춰 서 있기란 그 어떤 종류의 용기와 근육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일인데,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감사하게도 오늘 일어나지 않았다.


제일 걱정되었던 나의 딸은 등산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남편 덕분에 안전하게 신선대에 잘 도착했다. 정상이라지만 너무 좁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가운데,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대며 존재를 알렸다. 어쩔 수 없었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사진 서너 장 찍고 후딱 내려갈 수밖에. 그곳 몇 안 되는 사람들 모두, 누가 더 빨리 사진 찍고 내려가나 내기하는 듯 신속하게 하산했다.



좁은 정상 매서운 바람,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



나는 자운봉을 찾고 있었다. 그 우아하고 보랏빛 기운이 느껴지는 웅장한 자운봉을. 내 눈앞에 보이는 이건 뭘까. 거인의 각얼음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묵직한 자태였다. 가까이서 보기에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방향감각이 내비게이션급인 남편은 이것이 맞다고 했다.



산 아래에서 본 자운봉
신선대에서 본 자운봉



아래에서 올려다본 자운봉과 올라가서 보이는 그것이 너무 달라서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옆태인지 뒤태인지 방향감각 없는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 데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래에서 본 모습 그대로 여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우스워졌다. 다양한 가능성을 닫은 채 아는 것 하나에 집착한 것 아닌가. 결국 어떤 모습이든 모두가 다 자운봉이다.


내가 11년 같이 산 남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가 전혀 새로운 모습에 멍해질 때가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모습이 전부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다가 아닌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었음을. 이런 생각, 저런 행동, 그런 태도 모두가 그냥 그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라는 큐브를
이리저리 돌리며
맞추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6면에 섞여있는 색깔을 다 맞추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 신선대까지 와서 다행이었다. 이리하여 우아함과 묵직함이 각 면을 차지하는 자운봉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내려갈 때는 좀 더 경치를 즐기고 싶었으나 역시나 난간봉을 잡고 암릉을 타고 내려가니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점심으로 작은 컵라면을 젓가락질 한 번에 다 먹은 일, 험한 산속에 먹을 것을 찾아 나온 고양이들을 본 일 따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내 손이 봉에 닿아 미끄러져가는 길이와 내 발이 닿는 돌의 위치와 그 사이 내 몸이 움직이는 각도가 안전한가에 집중을 해야 했다.


집에서 가져온 겨울장갑은 접지력이 없어서 무아지경으로 미끄러지듯 봉을 타고 내려갔다. 쓰윽 탁탁. 쓰윽 탁탁. 박자가 생기고 리듬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보았던 페르시안밀 고대운동이 생각났다. 이런 등산길도 움직임 명상이 되지 않을까. 오직 봉과 내 손, 내 다리, 내 몸의 움직임만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이 순간 내 우주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내가 봉 명상을 하는 사이 나의 딸은 남편과 함께 안전하게 잘 내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입산통제 표지판을 4시간 30분 만에 다시 만났다. 산을 오를 때만 해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올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조금 더 성숙해진 우리는 마음의 키가 아주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새로운 산을 오르는
도전에의 열정이,

자연을 지켜야 하는
중대한 책임감이,

다름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깨달음이,

우리의 마음속
깊이
차올랐다.


그 앞에 높다랗게 비스듬히 서있는 벽오동나무가 보였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돌아올지 나무는 알고 있었을까. 벽오동은 가만히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결국 너의 짙은 푸름은,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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