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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r 15. 2024

아껴먹는 아이스크림

너와 오래 있고 싶어서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가을인 듯 여름이고, 가을인 듯 겨울이 된다. 오늘은 아직 내 곁에 있는 가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공기에서 가을냄새가 나니까. 나무들이 울긋불긋하니까. 하늘이 마냥 푸르니까. 낙엽이 또르르 굴러가니까. 햇살이 따스하니까.


가을은
아이가 아껴먹는
아이스크림 같다.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고.
점점 작아지는 게 아쉬워
먹으면서 자꾸 보게 되는.


올해는 가을이 언제까지 머무를까. 설악산으로 가는 길, 창밖 풍경을 보며 안심이 되었다. 가을이 아무리 바삐 떠나간다 해도 여기에는 좀 더 오래 머물다 가지 않을까 해서. 오늘은 아쉬워하지 않고 맘껏 행복하기로 했다.



가을도 화사하다, 봄처럼



북설악 금강산 화암사 숲길로 갔다. 울산바위를 보기 위해서. 설악산으로 가서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를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등산초보니까. (대청봉아, 너는 더 많이 기다려야겠다.) 신선대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 흙길도 돌계단길도 똑같은 길이 하나도 없이 다양했다. 경사가 꽤 급하긴 했지만 올라가는 맛이 있었다. 나의 딸이 재밌다며 등산스틱과 함께 성큼성큼 앞장서 올라갔다.(그녀는 아무래도 꾸준히 완만하게 단순한 길보다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길을 더 즐기는 것 같다.)


오래전에 설악산 흔들바위를 간 적이 있었다. 분명 지치고 힘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등산은 이 세상, 아니 우주에서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한 십 대 소녀는 그 기억을 순식간에 삭제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18살 과거의 내가 등산을 이렇게 재밌어하는 9살짜리 꼬마를 봤다면 아마도 충격을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비같이 등산길을 오르는 나의 딸에게 설악산에서 등산으로 괴로워했다던 고등학생 언니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가을햇살이 사랑스러웠다. 며칠 전 설악산에 올해 첫눈이 내렸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었다. 오기 전까지 날씨 걱정으로 애타던 우리의 과거가 애잔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묘기를 부리는 듯 우리가 등산하는 오늘, 딱, 봄날같이 따사로웠다. 외투도 다 벗고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흘러가는 구름도 멈춰서서 바라보는 찬란함



산은 아직 단풍옷을 입고 있었다. 울긋불긋 환하게 빛나고 고왔다.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색으로 뒤덮인 산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인생에서 이처럼 눈부신 가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딸도 남편도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에 같이 빠져들었다.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단조롭게 들릴 정도로 다 표현하지 못할 세계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자연 속에서
기쁨에 찬 모습을 보는 건,

나 자신이 행복한 것
그 이상의 환희였다.

이것 또한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일까.


조금 힘들어진다 싶을 때, 다 와가는지 궁금하다 싶을 때, 신선대에 도착했다.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지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있는 사람도 여기에 오면 다 낫지 않을까.



아득한 고요의 수평선에 빠져들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파랗고, 울산바위는 우아하게 솟아올라있고, 설악산은 불타오르듯 화려했다. 반대쪽으로 속초시와 그 너머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고요해 보였다. 멀리 바다 수평선을 보며 감동이 잔잔하게 메아리치며 찾아왔다.



햇살이 만든 그늘 아래, 울산바위의 품격
등산하기 전 도로 위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건너편에는 내 두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의 웅장함이 있었다. 장엄하고 눈부셨다. 울산바위 앞으로 화려한 가을의 색으로 수놓아진 산자락이 펼쳐져 있었다.


설악산이 울산바위를 감싸고 있는 걸까. 울산바위가 설악산을 지탱하고 있는 걸까. 설악산은 산세가 굵직해서 강인하고. 울산바위는 비바람에 오밀조밀 새겨진 선들이 섬세하다. 서로 다른 느낌의 둘은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마치
서로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마치
서로를 보듬기 위해
만난 것처럼.



과연, 시간을 얻긴 한걸까 _ 미시령터널과 옛길



우리는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앉을 수 있는 바위가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고. 어디에 앉든지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계속 머물렀다. 보고 또 보았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 해가 움직이며 만드는 눈부심과 그림자. 그에 맞춰 춤을 추듯 변신하는 설악산과 울산바위. 자연 안에 감동받는 사람들. 그곳의 온도, 습도, 공기, 풍경은 시시각각 바뀌고 새로이 만들어졌다.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을 향해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주었고. 아빠 캐리어에 업혀서 온 아기에게 나의 딸이 간식을 나눠주었다.


설악산 울산바위 앞에서
사람들은 웃었고
배를 채웠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산을 왜 힘들게 오르냐고 언젠가 남편이 내게 물었었다. 어차피 내려올 거 아니냐고. 풍경은 멀리서 보는 게 더 멋있다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많다고. 나는 그때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나 또한 아직도 깨닫는 중이라서.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자연을 찾아가는 중이라서.


오늘의 경험이 남편에게 아주 훌륭한 대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설악산이, 우아한 울산바위가, 눈부신 가을이, 따뜻한 사람들이, 특별한 오늘이 나의 남편에게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아직은 노는 게 제일 좋은 나의 딸에게도.








[ 한계령 이야기 ]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던 날



아빠의 손을 잡고 한계령 휴게소에 처음 다녀간 9살의 남자아이가 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른이 된 그 아이는 어느덧 아빠가 되었고, 태어나서 꼬물거리던 딸아이가 어느새 9살이 되었다. 그 아빠는 9살 딸의 손을 잡고 다시 한계령으로 돌아온다.



모든게 그대로, 혼잡함을 더하여



휴게소 건물은 예전 그대로, 설악산 한계령도 그 자리 그대로. 다만 건물은 많이 낡았고 주차장엔 차가 가득 차 있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아주 많아졌다. 지금 9살의 딸아이가 나중에 엄마가 되어 9살의 자녀와 다시금 여길 찾는다면 그땐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간직하여 나의 손녀손자가 엄마아빠 손을 잡고 이곳을 올 수 있다면 좋겠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보호를 위해 더없이 노력하는 대한민국이 되어 있다면 좋겠다. 그 속에서 나의 자손들이 자연에게 고마워하고 다양한 동식물과 공존하기 위해 고민하는 아이들이 된다면 좋겠다.


지금보다 생물다양성이 확대되고, 문명의 이기심보다 자연의 생태보전이 우선되는, 그래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감동적인 미래를 여기 설악산에서 그려보았다.


설악산은 그런 곳이었다.

현재에 있지만
과거와 미래를 같이 이야기하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있음을 이야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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