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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r 01. 2024

소원을 들어줄게

네가 원하는 만큼



구름 한 점 없는 파랗고 높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뜨거운 여름이 떠날 준비를 다했나 보다. 여름이라고 하기엔 선선하고, 가을이라고 하기엔 더운, 그 애매함의 종착지인 9월의 끝자락이다.



이미 정상인듯, 정상같은 정상아닌 _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까지 굽이굽이 구부렁길을 한참을 올라갔다. 나의 딸은 차 뒷자리에서 심심하다고 투덜대다가 이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번부터 100번까지(때로는 10,000번까지) 숫자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7이 들어간 숫자를 고르면 그럴 줄 알았다며 싱긋 웃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이야기책에는 항상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는데.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딸이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에 어린아이처럼 매번 넋이 나간다. 어쩌면 저렇게 스토리구성이 탄탄한지. 기승전결, 권선징악이 확실하고 해피엔딩(화자 취향)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은 똥이야기 시리즈다. (초등학교 3학년은 아직도 똥이야기가 배꼽 빠지게 재밌다.) 여덟 번쯤 숫자를 고르고 주인공은 다르나 모두 똥이야기인 여덟 편의 단편을 다 듣고 나서야 주차장에 도착했다. 난 이 대단한 작가님에게 오늘도 여지없이 무력하게 매료되고 만다. (6살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어 집에서 만든 책만 해도 열 권 남짓이다.)



나의 딸이 만든 사랑스런 이야기들






등산로 초입부터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서늘해진 기온 덕분인지, 길 양쪽으로 빽빽이 서있는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준 덕분인지 시원하고 쾌적했다. 10시간 산행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최적의 온습도였다. 우리의 발걸음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덕유산 향적봉을 오를 때 더위에 흐느적거리던 우리의 애처로운 모습은 벌써 잊었다.


길은 완만했고 콘크리트 포장길과 비포장 흙길, 야자수매트 깔린 길이 섞여 있었다. 며칠 전에 온 비로 흙길은 아직 축축하고 걷기에 질척거렸지만 나의 불쾌지수를 높이진 못했다. 휴일 아침 8시면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릴 시간인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지리산을 걷고 있는 우리 가족이라니. 내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올랐다. 나의 딸은 남편이 심사숙고하여 고른 어린이용 핑크 등산스틱을 오늘 처음 써보는 중이다. 아빠한테 사용법을 간단하게 배운 후 스틱과 함께 통통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경쾌했다.


높디높은 푸른 하늘.
아직은 푸르름을 간직한 나무들.

이른 아침 한산한 등산길.
멀리서 들려오는 귀여운 새소리.
바삭한 아침공기.


모든 게 완벽한데 굳이 흠을 잡으라면 길이 너무 평탄하고 편안해서 심심할 수 있다는 것. 그래, 이건 생트집이다. 나는 그냥 다 좋았다.


똥이야기 몇 편을 더 짖꿎게 만들어내고도 나의 딸이 지루해질 즈음 갈림길이 나왔다. 빠르고 가파른 계단길과 좀 더 느리고 쉬운 길 중에서 우리는 계단길을 선택했다. 돌아올 때는 여유롭게 편한 길로 오자 하고. 숨이 차오를 때쯤 아쉽게도 돌계단이 끝이 났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우리에게 힘듦을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힘들 겨를이 없이 한 시간 남짓 올라가니 노고단 고개다. 여기서부터 길이 넓어지고 하늘이 뻥 뚫렸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보이는 능선이 벨벳같이 부드러웠다. 파란 하늘아래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고개는 둥글한 봉우리가 단정했다.



내가 걷는걸까, 나를 걷게 만드는 걸까



불가항력이었다. N극이 S극에 끌리듯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멈춰 서서 360도 천천히 돌아보았다. 저 아래에 보이는 구름과 완만한 능선. 하늘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기울어진 내 마음이
중심을 찾아 편안해졌다.

이리저리 기울다
마침내 균형을 잡는
천칭 저울처럼.



모두가 제자리에 있다는 안정감



가만히 앉아서 쉴 때에도
마음이 수많은 생각 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느라
더 피곤할 때가 있다.


노고단을 향해 걸어간 오늘, 몸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데 마음이 점차 개운해졌다. 거스를 것 없이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서. 경이로운 풍경에 말을 잃은 채.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은 홀연히 사라진 채.


일순간, 자연과 나는 하나였다. 내가 산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산이 내 속에 있다고 존 뮤어가 말했던가.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속에 장자가 있었던 것인지 나비 꿈을 꾸고 나서 생각에 잠겼던가.



구름바다가 굽이 굽이 파도치는 곳



전망대에 도착했다. 내 눈을 가득 채운 건 파란 하늘과 푸르른 산, 그리고 산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하얀 구름바다였다.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나는, 어느덧 진파랑의 무한대 넓은 하늘이 되었다가, 초록빛나무 한가득 품은 산맥이었다가, 훨훨 날아다니는 흰구름이었다. 지저귀는 알록달록 산새도 되었다가, 어느덧 다시 ‘나’였다.



능선따라 흘러들어온 잔잔한 고요함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토닥여 준다.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잘하고 있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살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준다. 그 어떤 잣대나 기준 없이. 오롯이 ‘나’라는 존재 전부를.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자연 속에 안겨서, 내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반창고를 훌훌 털어버린다.


새살을 얻은 나는 자연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연을 아프게 했을지 모를 생활습관들을 반성해 본다. 언제쯤이면 대자연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내어줄 수 있어 기뻐하는데. 나는 나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닫는 노인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좀 더 올라가 보니 신라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던 제단과 돌탑이 보였다. 우리 가족도 돌탑 앞에서 노고할머니께 각자 소원을 빌었다. 딸에게 무슨 소원 빌었는지 물어보니 비밀이라고 한다. 그래야 소원을 잘 들어주신다나.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나의 소중한 딸에게 이야기했다. 어떤 소원이든 그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네가 한 것이라고. 노고할머니는 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소원을 빌며 힘을 얻고, 용기를 내서 그 소원을 실현시키는 것은 너의 굳은 의지와 뜨거운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노고할머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내가 널 위해
대신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너의 즐거움을
슬픔을
행복을
좌절을
다 들어주고 싶어.

네가 힘을 얻고
기운을 낼 수 있도록.

끈기와 열정으로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니
언제든지
엄마를 찾아와.

엄마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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