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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Jul 17. 2024

매너티가 속세를 떠날 이유

Blue Spring State Park, Florida



우연이었다. 구글 지도에서 이곳을 발견한 것은. 마침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에 있었고, 때마침 12월이었다. 즉흥적이었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처럼, 떨리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를 끌어당긴 건 무엇이었을까.


마법 같았다.

매너티(manatee)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
그렇게 찾아왔다.







에메랄드빛 샘물이 질투가 날 정도로 청아했다. 투명한 물속에 회색의 매너티 수십 마리가 보였다. 크고 작은 다른 물고기와 함께. 통통하고 길쭉한 몸에 깜찍한 크기의 앞발 두 개와 널따란 꼬리지느러미가 있었다. 가만히 떠 있기도 했고 천천히 움직이기도 했다.


평균 길이 3미터, 무게 500킬로그램 정도의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두꺼운 지방층이 부족해서 저온(20도 이하)에서 살 수가 없는 해양동물이었다. 추위를 잘 타는 그들이 연중 수온 23도를 유지하는 이곳 블루 스프링을 매년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이유였다.



엄마와 아기 매너티 (책 표지 출처:amazon.com)



매너티는 바다 소(sea cow)라고도 불리며 물속에서 잠을 자거나 풀을 먹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어른 매너티는 식물 50킬로그램 가량을 매일 먹으면서. (숨쉬기 위해 틈틈이 수면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궁금해졌다. 그들의 하루는 쏜살같이 잘 갈까, 지루한 듯 더디게 갈까.


나는 밥 먹고 놀고 자는 것으로 즐겁게 하루를 보내던 어린이였다. 나이가 들면서, 재미없지만 해야 할 일들이 나의 하루를 빼곡히 채웠다.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시간을 더 쪼개어 자극적인 활동을 추가했다. 내 인생에서 단조로움은 점점 멀어졌고, 나의 즐거움도 희미하게 옅어졌다.


행복한 시간은 늘 부족하고 아쉬워서 화살처럼 날아갔고, 하기 싫은 일로 가득 찬 날들은 시간에 끈적한 풀을 붙인 듯 끔찍하리만치 고인 물 같았다. 나에게 충만했던 순간은, 어릴 적처럼 단순했다. 그런 시간들은 때때로 슬로모션 영상처럼 내가 단 1초도 놓치지 않도록 느리게 흘러가기도 했다.


내가 느낀
시간의 속도는
결국
내가 정한 것이었다.


매너티는 자신의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주어진 삶 속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의 만족감이 그들의 둥그렇고 포동한 잿빛 등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단순함과 복잡함의 개념조차 필요 없는, 그런 인생은 과연 어떤 것일까. 아무런 잣대 없이, 좋고 나쁨의 평가나 판단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삶이란.


그들의 겨울 별장에서 매너티는 유유자적 여유로워 보였고, 그래서 부러웠다. 내 말을 듣는다면, 매너티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겠지만. 지금 이 모습은 그들의 있는 그대로 삶의 속도니까. 이들에게 정신없이 바쁜 순간이 있었을까. 뭔가 급하거나 여유가 없어서 풀을 10킬로그램만 먹었다던지 잠을 5시간만 잤다던지 하는 순간들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자연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왔을까. 어쩌면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될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자고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하루의 반을 잠으로 보내고 7시간 풀을 뜯어먹는 매너티가 가진, 자신을 위하는 꾸준함으로부터.


‘유유자적’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이라고 적혀 있었다. 매너티에게 속세라면 그들이 사는 세상, 또는 평소 살던 얕은 바다나 강이 될까. 그곳에서도 지금과 다름없이 이렇게 헤엄치고 잠을 자고 식물을 뜯어먹었을 텐데. 차가운 겨울엔 살기 위해 따뜻한 물을 찾아 이동할 뿐. 속세를 떠날 이유가 그들에겐 없다. 





다 같이 있는 듯 보이지만, 아니었다. 매너티는 사교 활동을 하지만 대체로 혼자 생활하는 동물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들이 편안해 보였던 이유. 무리 속에 있지만 무리로 있지 않았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생명체였다. 애초에 속세를 떠날 필요가 없었다. 떠나지 않고서도 그 속에서 본연의 자신으로 지낼 수 있으니까. 진정한 고수였다. 그것은 이제껏 내가 다다르지 못한 경지였다.


사람은 어쩌다 속세를 떠나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지경이 되었을까. 세속 사람들의 세상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이 눈코 뜰 새 없이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한 나머지, 천적이 없는 매너티를 멸종위기로 만들어버렸다. 돌고래만큼 지능이 높고 사람처럼 감정을 가진 그들의 생존은 우리 인간의 책임이다.








겨울 햇살은 무심히 빛나고 있었다. 온화한 매너티가 둥실둥실 헤엄치는 잔잔한 물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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