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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처럼 쌓여가는

by 맑음의 바다



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
Colorado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이런 종류의 쎄한 느낌을 잘 안다. 무언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려는 은밀한 복선 같은 것. 콘크리트를 발라놓은 듯 뒷목이 묵직해지고, 가슴속에는 대장간 풀무질의 뜨끈함이 올라오는, 그런 순간.






콜로라도에 와서 모든 게 마냥 좋았다. 화려한 백화점보다 더 반가운 H마트에 들러 여행 식량을 보충했고, 무엇보다 그리웠던 밭빙수를 한국 디저트 카페에서 먹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처럼 우리는 몸이 기억하는 한식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웠다. 잠도 충분히 자고, 호텔 수영장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화창한 아침, 국립공원 표지판은 보이지도 않는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사설 썰매 대여점에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주차하고 보니, 대여를 위한 대기줄이 내 몸속의 대장처럼 꼬불꼬불 길기도 길었다. 땡볕에 서서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썰매 하나, 보드 하나 빌렸다.





공원 주차장에서 사막까지 천리, 만리처럼 아득해 보였다. 나무로 만들어져 묵직한 보드와 썰매를 등에다 매고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애잔했다. 그렇게 호텔에 나온 지 3시간 만에 황금빛 사막에 첫 발을 딛었는데, 목캔디 같은 싸한 맛을 내는 바람이 분 것이었다.


오늘은 그 쎄함에 대한 내 인생의 우수한 경험치를 다 내려놓고 싶었다. 그 알싸함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었다. 하늘은 아기 얼굴처럼 해맑았다. 저 맑간 하늘색을 보라며, 뽀얗게 몽글거리는 구름을 보라며, 내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우리는 비장하다. 남편 등에 매달린 보드의 날렵한 모서리가 장군 허리춤에 반짝이는 칼날 같기도 하다. 마치 아이에게 사막 썰매를 태워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남편과 나는 신중해진다. 알싸한 바람을 애써 외면한 채, 아이가 태양 같은 웃음을 터트릴 근사한 언덕을 찾아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


초록의 산맥이 부드럽게 감싸 안은 광활한 사막을 걸으면서, 모래 언덕 저마다의 자유분방함을 보면서, 놀이터 모래상자 안에 기어가는 개미처럼 작아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 잊어버린 것만 같다. 모든 표현을 넘어선 세계가 여기에 있다.


이곳의 모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맥(Sangre de Cristo Mountains)이 사막을 감싸며, 바람을 되돌린다. 산맥에서 녹아내린 눈과 빗물은 모래를 이동시키고, 그 모래는 바람을 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래는 흩날려도 결국 다시 돌아온다.


이 자리에 있던 거대한 호수(알라모사 호수)가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는 시간의 깊이를 생각한다. 주변의 산들이 깎여 날아든 모래가 켜켜이 쌓인 수천 년의 높이를 짐작한다. 물과 바람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모래를 순환시키는, 자연이 숨겨둔 심연을 상상한다.





눈 시린 빛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래언덕 정상을 향해 오른다. 모래 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들어 언덕을 올라가기가 더 힘들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몸만 한 나무 썰매를 야무지게 들고 언덕을 오른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가.


내려올 때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오를 때의 고난이 필요한 것임을 그녀는 알게 된 것일까. 마시멜로우의 법칙처럼, 더 큰 만족의 지연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이 오르막길이, 계획대로 안 되는 일도 받아들일 만큼의 끈기라는 걸 그녀는 깨닫게 될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경쾌한 아이의 웃음을 확인한 남편은 보드를 타기 시작한다. 겨울 스키만 타던 사람치곤 잘 탄다. 운동 신경이 희귀한 나는 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만은 날쌔다.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바람은 점점 거세진다. 저 멀리 산맥 너머로 먹구름이 어둡고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이는 슈욱 모래를 가르며 썰매를 타고, 남편은 쓱쓱 보드를 타고, 나는 착착 사진을 찍는 와중에,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하늘은 어두운 남색으로 짙어지고 황금색 모래는 점차 빛을 잃어간다. 흩뿌려지는 빗방울 사이로 모래가 흩날린다. 움푹 파인 발밑의 모래는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곱디고운 모래가루를 온몸으로 맞으며, 나는 모래시계 유리병 안에 있는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시간은 모래가 되어 눈앞에서 쌓여간다.


모래 바람 속에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말없이 지켜본다. 한 손으로 사르륵 잡아 올린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조용히 흘러내린다. 내 속에서 흘러나온 그리움 같아서, 마음이 욱신거린다. 그것은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기억하려 할수록 흐릿해진다. 모래알갱이가 바람에 날려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내 얼굴에 따끔거린다.





“수술 자국이 많으셨어요.” 염을 했던 젊은 장의사가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잠자듯이 아빠가 누워있었다. 그 작은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을 이끌어준 그 듬직한 손을 다시금 붙잡고 놓기 싫을 것 같았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집에 가고 싶어 했던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거센 바람이 모래를 쓸어낸 것처럼, 빈자리에는 내 안에 꽁꽁 숨겨놓은 그리움이 드러났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와서, 아빠는 한국에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여전히 바보 같은 내가 멈춰버린 시간 속에 서있었다.


다 말라버린 호수 바닥에 쌓인 모래처럼, 사라진 것 위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그리움도 그런 것일까. 그 자리에 여전히 무언가로 남아 있는 것.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모래처럼 쌓여가는 것.


모래언덕은 매일 바람에 의해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내 마음도 매일 달라지는 일상 속에서 잊지 못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아빠가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그 풍경 안에 아빠가 스며든다. 이곳의 모래가 계속 순환하듯, 아빠는 갔다가 언제나 다시 돌아온다.






바람은 이렇게 거세게 불었어야 한다. 비는 이렇게 내렸어야 한다. 이것이 여기 산맥 안에 모래가 갇혀 사막이 생긴 이유이다. 우리는 자연의 때를 거스를 수 없고, 그 시간 속에 들어왔을 뿐이다. 휭휭 부는 바람 소리를 뚫고 나는 큰 소리로 하하 웃어본다.


우리는 다시 언덕을 내려간다. 촉촉해진 모래 위로 남편의 발자국 행렬이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의 시간은 우리 기억 속에 단단히 새겨진다. 먹구름이 사막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리의 그림자도 그리움처럼 길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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