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다
남편 플레이리스트에서 심상찮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징이 울리고 꽹과리가 신나게 춤을 춘다. 높다란 산봉우리를 마주 보고 텅 빈 도로를 달린다.
“엽전의 노비 직장의 노비 월세의 노비 대출의 노비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으니 이걸 어쩌면 좋으냐
그래도 오늘은 그냥 놀아볼란다”
국악과 EDM의 조합이다. 내 몸속에 흐르는 한국인 유전자는 마른땅에 반가운 비가 내리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조선노비’가 부른 <조선봉기가> 가사가 귀에 콕콕 박힌다. 꽹과리 소리 사이로 남편에게 말한다. 이거 우리 이야기인데.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달려 나온 조용한 산길 위에서.
현재 기온 41도. 자동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온도를 측정해 보여준다. 초록초록한 여름산에 기댈 듯이, 파란 하늘과 뽀얀 구름에 닿을 듯이, 오르막길을 계속 오른다. 익숙한 흥겨움이 차 안 공기를 흔든다.
저녁 6시. 비슬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태양이 남기고 간 열기가 산속 깊숙이 들어와 후끈거린다. 임도 옆에 흐르는 계곡이 시원한 소리를 낸다. 울창한 숲이 주는 초록빛에 안심이 된다. 숙소에 짐을 넣고 난 뒤, 빨리 찾아온 저녁이 아쉬워 산책을 하기로 한다. 차를 오래 타서 에어컨 냉기가 아직 몸에 남아있다.
오르막길에 유아차를 끌고 내려오는 어느 엄마가 보인다. 손에 들린 하얀 아기이불을 마치 택시를 부르는 듯 커다랗게 펄럭이고 있다. 그 이유를, 걷기 시작한 지 머지않아 우리는 알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그만 벌레들이 얼굴 주변으로 끊임없이 날아든다는 것을.
경사가 가파르다. 다리를 쭈욱 뻗지 못하고 계속 올라간다. 손으로 벌레를 연거푸 물리친다. 차라리 팔운동을 하자. 팔을 좌우로 크게 휘둘러본다. 등줄기로 땀이 주르륵 흐른다. 시원한 물 한잔이 간절해진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걸까.
결혼기념으로 남편이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셋은 어딜 가든, 무얼 하든, 항상 세트였다. 둘만 있는 시간이 어땠었더라. 나는 잠시 멈춰 오랜 기억 속을 헤맸다. 아이는 할머니댁에서 잘 수 있다고, 다 큰 어른처럼 말했다.
오전 11시, 아이를 맡기고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우선 맛있는 거부터 먹자고 말한 남편이, 주춤했다. 주차해 놓은 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타이어 펑크였다. 보험 서비스를 받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허허 웃으며 차를 탔다.
남편이 어릴 때 먹었다던 냉면 노포집을 가기로 했다. 10차선 도로 위, 이 많은 차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교통체증을 가까스로 벗어나, 식당 근처 공용 주차장에 비집고 주차를 했다. 시원한 냉면을 후루룩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짧은 시곗바늘은 숫자 2를 지나쳤다.
차 안은 한증막처럼 데워져 있었다. 냉면으로 시원해진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땀방울을 만들어내기 바빴다. 출발한 지 꽤 되었는데, 차 안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았다. 에어컨이 문제였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정비소를 찾아 수리를 받았다. 아무것도 안 하다가 혹시나 무료해지면 읽으려고 챙겨 온 책들이, 여행가방 안에서 날 애타게 부르는 듯했다.
우리는 왜 하필 여름에 결혼했을까. 그땐 무조건 빨리 하고 싶었어. 남편의 대답이었다. 같이 살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까. 나도 덧붙였다. 결혼식날도 이렇게 무더웠다. 하객들은 땀을 닦으며 식장으로 들어왔다. 12시 예식 시작인데 우리 가족과 친척들을 태운 버스가 오지 않고 있었다. 11시 30분, 40분. 시간은 잘도 흘러가고 나는 초초해졌다. 11시 50분이 넘어서야 익숙한 얼굴들이 나보다 더 애태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운전기사선생님이 길을 찾지 못해 헤매었단다. 나는 울상이 될 뻔하다가 웃음이 났다. 이렇게 환하게 웃는 신부는 처음이야. 예식이 끝나고 하객 중 누군가가 말했다.
미국에는 더운 날씨에 상의 탈의한 남자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남편은 티셔츠 밑단을 잡고 계속 펄럭이며 벗는 시늉을 한다. 그의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이 젖어들 때에 비슬산 암괴류가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나무들 사이 언덕배기에 누가 쏟아부어놓은 듯한 진회색 바위들의 무리가 보인다.
바위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정신이 번쩍 든다. 더위도, 벌레도, 갈증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정비소에서의 기다림도, 오르막길의 땀방울도, 결국 이 바위 앞에 닿기 위해 필요한 여정이었던 걸까. 나와 남편은 마주 보고 웃는다.
좀 더 올라가자 짧은 데크길을 따라 전망대가 나온다. 더 거대한 바위들이 경사진 곳에 모여있고, 주변에 초록의 나무들이 그들을 보호하는 듯 둘러싸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도 계곡이 되리라. 눈물자국이 말라버린 아이의 얼굴처럼, 빗물자국을 길게 드리운 바위의 얼굴은 뙤약볕에 바짝 말라있다. 그 앞에, 땀으로 샤워한 것 같은 나와 남편이 서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남편은 티셔츠를 반쯤 끌어올려 크롭티를 만든다. 나는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모양이 제각각인 회색빛 바위들과 동그란 뱃살을 드러낸 남편 사진을 찍는다.
천사 같은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버둥거리던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천천히 맞이하고 싶었지만, 계획보다 딸이 일찍 찾아왔다. 부부의 역할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로 바삐 부모가 되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 우리를 끼워 맞추느라 바빴다. 서툴렀고 눈물지었고 서로 상처를 줬다.
비슬산의 암괴류(岩塊流)는 약 1만 ~ 10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비슬산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극심한 온도 변화 때문에 갈라지고 부서진 게 시작이었다. 이후 중력에 의해 우르르 흘러내려온 돌무더기들이 자연스럽게 쌓여왔다. 누군가가 설계하거나, 딱딱한 계획 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힘과 아주 오랜 시간, 우연한 방향의 흐름이었다.
한 아이의 세상을 지켜내는 것은 육아백과사전과 달랐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우리는 종종 갈라지고 흔들렸고, 때로는 무너지고 흘러내렸다. 온도 변화로 깨진 바위들이 물 흐르듯 쌓인 자연의 작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지형은, 가족이라는 바위는, 그 흔들림과 예상 밖의 순간들이 오히려 더 깊은 사랑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딱딱 맞춰지지 않았다. 대충 이쯤에서 도착할 거라고 어림했고, 대충 이 정도 여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어림값과 실제값, 그 오차 속에서 진짜 쉼과 웃음이 생겼다. 그 덕분에 예정보다 오래 머문 풍경이 있었고, 계획하지 않은 더 진한 대화가 있었다.
‘조선노비’는 계속 노래 부른다.
“사랑의 노비 마누라의 노비
자식의 노비 부모님의 노비
양쪽 어깨가 내려 꺼질 거 같지만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살아볼란다“
어깨가 무거운 건, 그만큼 사랑하고 싶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천천히 단단해진다. 우리 삶은 그렇게, 어림값과 오차를 오가며 암괴류 같은 경이로움을 만드는 중이다. 꽹과리 소리가 다시 한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