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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스, 각도기와 삼각자

문제를 푼다는 것

by 맑음의 바다



아름다울 미(美). 어질 양(良). 옳을 가(可).


초등학교 수학 성적표에 빼어날 수(秀), 넉넉할 우(優)가 없어도 나는 마냥 즐거운 아이였다. 아름답고 어질고 옳은 것보다 빼어난 것이 더 낫다고 누가 정한 것인가. 엄마는 내가 유독 수학만 못하는 것에 대해 나무라지 않았다. 어질고 옳은 수학은 계속되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컴퍼스의 송곳(1화) _ 순천 낙안읍성



진정 수학을 포기한 건, 그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시기가 온 건, 고등학교 때였다. 수학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문과반이 되면서. 수학을 못 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진 우리들에게 그것을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 공공의 적에 패배당한 듯한 연대감이 있었다.


매미가 울어대고 더위가 끈적한 어느 여름날, 19살의 우리는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수학 선생님에게 물어봤었다. 수학을 왜 공부해야 되냐고, 사는 데 도움이 되긴 하냐고.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논리를 키우는 것이라고, 반듯하고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 논리력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해 상당히 의심스러웠을 뿐.



분수의 덧셈(2화) _ 예천 선몽대



세월이 흘러 똑같은 질문을 딸아이가 했다. 사소한 계산조차 폰을 꺼내 계산기 앱을 쓰는 나에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도 이해하지 못한 논리 따위 말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굴렸다. 숫자를 써서 우리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나이, 몸무게부터 물건 세기, 돈 계산하기, 그리고 시간의 흐름까지도. 그러니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이 네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나머지는 공식을 적용할 줄만 알면 된다고.


수학포기자의 애환이 담긴 눈물겨운 생존의 시간 속에서 이렇게 핵심을 끌어내다니. 감격에 젖은 나와 달리,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학교에서는 중요한 게 더 많으니까. 최대공배수를 구해야 하고, 사다리꼴 면적도 계산할 줄 알아야 하니까. 많은 과목 중에 유독 수학을 잘하는 게 한 아이의 자랑스러운 미래가 될 수도, 숨기고 싶은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었다. 수우미양가 성적표조차 없는 오늘날의 초등학생에게도.



네 자릿수의 뺄셈(4화) _ 단양 잔도



그런 아이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숫자를 넘어서서 삶에 녹아든 이야기를, 겨울밤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는 어느 날처럼 두런두런 말해주고 싶었다. 교과서 밖에 펼쳐진 눈부신 세상을, 답이 정해져 있는 네모난 문제지 밖의 우주를 보여주고 싶었다. 100점을 받아야만 빼어날 수 있는 게 아님을,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음을. 1년 전 여름, 낙안읍성이 시작이었다. 컴퍼스의 중심 같던 400여 살의 느티나무가, 내 희망과 기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우습게도 컴퍼스로 내 동그라미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 여정은 나의 병증을 찾아내고 치유하는 과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딸에게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온 우주가 나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지나온 길 위에서, 역사의 깊은 흔적에서, 조용히 흐르는 강과 출렁이는 바다 물결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써왔던,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를 어떻게 안아줄 것인가에 대해.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규칙 찾기(5화) _ 태안 파도리 해식동굴



아이에게 컴퍼스, 각도기와 삼각자가 한 통에 든 세트를 사 줄 때, 알았어야 했다. 오만하게도 나는, 컴퍼스의 송곳으로 종이에 구멍을 내어 이리저리 휘두르며 원을 그렸고, 그 원 속에 딸아이가 안전하기를 바랐다. 내가 그려주는, 크고 탄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둥근 원은 딸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삐뚤빼뚤 그려보는 원, 죽죽 그어보니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다양한 모양의 도형과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신기한 각도의 세계. 그녀에게 필요한 건, 미지의 우주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탐험자의 여정이었다.


나의 수학 점수는 부모님의 나에 대한 믿음을 흔들지 못했다. 그저 내가 요리조리 각도를 재면서 90도, 180도, 그리고 360도를 넘어선 세상을 그려보도록 내버려 두었음을. 둥그런 원 옆에는 삼각자로 그리는 뾰족한 삼각형, 집모양 같은 오각형, 기울어진 듯 균형 잡힌 평행사변형도 있다는 걸 알아차리길 바랐음을. 나에게 세상을 탐험할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느끼길 바란 것임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부모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세계를.



수직선 위의 원점(7화) _ 남해 남해대교



그때 수학 선생님이 말한 논리력은, 공식을 이해하듯 삶의 파편들을 바라보고 나름의 정리를 통해 비로소 사랑을 배워가는 힘이었을까. 나에게 삶은, 모순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얽힌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며, 부서진 마음을 내 안에서 다시 맞춰 나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수학을 잘했다면 인생이 좀 더 수월했을까. 선생님처럼 수학을 잘해도 삶은 문제지 답처럼 명쾌하지 않다는 것을, 언젠가 수학 문제에서 벗어나도 인생의 문제는 계속 풀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부딪히고 이해하고 적용하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을. 선생님의 깊은 눈빛은, 그래서였다.


인생의 논리라는 것은 왜 부딪히는지, 어디서 막히는지, 어떻게 풀어내면 되는지, 힘들어도 끈기 있게, 그리고 다정하게 돌보는 마음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막대그래프의 길이(8화) _ 경주 독락당






1년 동안 10편의 이야기는 아마도 하나의 방정식이었을까. 변수가 많고, 미지수가 많은 삶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풀이과정. 어쩌면 지구를 천 바퀴 돌만큼 기나긴 여정이면서, 집 앞 놀이터에 도착할 만큼 짧은 깨달음일 수도 있다.


딸아이가 컴퍼스를 꺼내 들고 무언가를 그릴 때, 나는 안다. 그 아이가 나와 같은 문제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답이 없는 삶 앞에서 중심을 잃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거리의 각도를 헷갈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믿음이 말한다. 아이는 그 문제 속에서 언젠가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가
인생을 풀어가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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