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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Apr 28. 2017

'사일런스' 그리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마틴 스콜세지 감독 영화의 매력.......

 엔또 슈샤꾸의 소설 '침묵'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더군요.  오래 전 '침묵'을 읽고는 소설가의 참으로 따뜻한 인간애에 감탄했습니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해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소설을 이번에 마틴 스콜세지감독이 영화화했고,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도 상영하였다더군요.

그가 만든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관람했었죠. 오래 전에. 당시 종교계의 반대로 상영이 금지 되는 등 파란을 일으켰었는데.....  원작인 '최후의 유혹'을 쓴 니코스 카쟌차키스가 교회로부터 파문 당하는 등 숫한 고통을 겪었듯이.


 이 두 작품을 특별히 선택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종교관과 혜안이 그에게 매력을 느끼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한마디로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많이 고민하고 깊이 숙고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케 하더군요. 

감독이 좀더 젊은 시절 선보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만 되었다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마리아와 마르타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라"고 하죠.

원작인 소설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살다가 라자로의 집으로 가서 라자로라는 이름으로 마리아와 마르타를 아내로 삼아 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나이 들어 바오로 뿐 아니라 제자들이 찾아와 예수를 질타하는 등, 그 모두가 십자가 위에서의 한순간의 꿈처럼..... 그러나 감독은 그 뒷부분을 생략한 작품을 선보이죠.  어쩜 그 시절의 감독은 한순간의 안일함에 대한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여 원작자 니코스 카쟌챠키스가 교계로부터 그리도 심하게 지탄받게 한 그 작품을 선택했을 거구요.


 

70대가 된 감독은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삶이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끌었으리라, 그리고 종교의 도그마에 갖히지 않는 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여 감독은 소설에는 없는 뒷부분을 작위적으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존경하는 스승이 배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차 일본으로의 선교 길을 떠났던 신부는 우여곡절 끝에 외면적인 배교를 하고, 극악한 일본인들의 뜻대로, 과부가 된 여인과 그의 아들을 가족 삼아 살다가 작고하게 되고......

영화에서는 그의 아내로 살던 여인이 항아리 관 속 그의 손에 작은 십자가를 쥐어 줍니다.  '그리하여 일본 땅에 종교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나 보구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더군요.


 때로 쉽게 판단하고 타인을 단죄하는 버릇을 뒤돌아 보게 하는 좋은 소설이었는데, 감독의 해석과 공들인 미쟝센이 아름다웠습니다.

 삶이 무르익어 깊어진 내면을 표현해 주는 작품을 선사해 준 감독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단기적 승패에 목숨 거는 조악한 문화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즈음, 가끔은 멋지게 나이듦의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아쉬운 때입니다.

 

그리하여 90대 김형석 교수님의 '예수' 마지막 부분이 더욱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극히 감정적이거나 세상적 욕심이 많거나 의심이 많거나 등등..... 우리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던 예수의 제자들이 순교를 택한 것은........


"사실 예수의 진정한 부활을 증거하는 사건들은 이 비겁하고 무능했던 제자들의 행적과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예외없이 예수와 같이 죽어 예수와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있었으며, 그것이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생애는 무덤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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