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만이 아니기를' 구병모의 소설집과의 접목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두 여인이 피아노를 함께 치며 노래합니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라는 제목의 노래를. 그녀들이 어린 시절 함께 노래했던 것처럼. 그런 모습을 동생인 레아의, 베트남에서 입양한 두 딸과 그녀의 시아버지가 지켜봅니다.
필립 클로델, 소설가로 유명한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라네요.
사실 언니 쥴리엣이 15년의 형기를 마치고, 유일한 혈육인 동생 레아의 집에 머물게 되고, 오랜 결별로 인한, 그리고 아들을 살해했다는 언니의 죄명은 레아의 남편 뤽에게도 불편한 형국이었죠. 그런 전력으로 쥴리엣은 어둡고 시니컬한 케릭터였고....
동생 집에 머물면서 입양 조카들과 함께 하며 또한 뇌손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서재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는 레아의 시아버지에게 위로를 느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 그러면서 의사였던 쥴리엣이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주사를 놓아 하늘 나라로 보내고 한마디의 변명 없이 재판 과정을 거쳐 형을 살게된 사실이 밝혀지고......
레아가 묻습니다.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냐'고. 쥴리엣은 대답합니다. '모두들 행복해 보이는데 본인만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고 있었으므로'
고통의 한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겁니다. 허나 레아의 집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준 사람이 말 못하는 시아버지였듯이 오래된 고목의 역할을 되새겨봅니다.
장자의 <인간세>에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장석이란 인물이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헌이란 곳에서 둘레가 100아름이나 되는 상수리 나무를 봅니다. 모두들 근처로 모여 감탄하는데 장석만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저 나무는 제목으로 쓸 만한 것이 못된다. 쓸모가 없으므로 이처럼 수명이 긴 것이다' 그날 밤, 장석의 꿈에, '너는 나를 무엇에 비교하려 하는가? 너는 나를 쓸모 있는 나무에 비교하려는 건가? 좋은 맛의 열매를 맺는 그 능력 때문에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고목이 되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시원한 그늘로 여러 사람의 쉼터가 되어주는 상수리 나무.
그런 존재 이유가 맘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또한 쥴리엣이 위로를 느끼는 명화가 영화에 등장하죠. 레아의 대학 교수 동료인 미쉘과 뮤지움에 가서 감상하던 '슬픔'이라는 에밀 프리앙의 작품.
쓸모 있는 나무의 열매 역할을 하는 예술 작품.
구 병모의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중,
'관통'이란 소설은 루쵸 폰타나의 '공간 개념'을 모티프로 이루어진 듯하더군요.
미온이라는 미대 출신 아기 엄마가 허름한 중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길거리 전시회에 출품된 루쵸 폰타나의 <공간 개념>의 모작인 듯한 작품 앞에서, 희망이라곤 찾기 어려운 남루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느낍니다. 보들레르의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캠퍼스를 칼로 부욱 그어 2차원의 세계를 3차원으로 만들었던 루쵸 폰타나의 <공간 개념> 역시 쓸모 있는 열매 역할을 해내고 있죠.
구 병모의 미온이 탈출할 수 있는 역할.......
그러나 무책임한 현실 도피가 아닌, 부욱 그어진 칼자욱에서 예수님의 상처를 기억해 내는 시각도 있더군요.
그리하여 나 태주님의 <틀렸다> 그 시가 생각났습니다.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이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