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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Jun 26. 2017

소설 <오직 두 사람>, 그리고 영화 <오두막>

상실에 대한 이야기들.....

 김 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습니다. 일곱편의 소설이 담겼더군요.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직 두 사람'에서는 묘하게 결속되어 살아가는 부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고 혼자 남은 딸이 아는 언니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이야기 합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쓴 부분을 다시 읽다가 문득 언니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그 순간의 제 감정은 그대로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을 거쟎아요. 언니, 전 이제 괞챦아요.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되요.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김 영하 작가는 말합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쓰여진 네편의 소설에 대해서........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상실에 대해서라면 오래전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가 있죠. 허무주의가 팽배한 일본에서 살아가던, 서구 문화에 익숙한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문장을 선사하던 작가의 소설은 한때 선풍적 인기를 누렸는데요.  와타나베라는 청년이 10대에서부터 30대까지 겪어내는 삼각 관계의 사랑 이야기.  문득 기억나네요.  몇몇 문장이.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영화 <오두막>.   사랑하는 막내 딸을 괴한에 의해 납치되어 잃게된 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상실 이후 견뎌내는 삶의 이야기를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심리적 치유 과정과 함께 잘 그려낸 이야기 입니다.

삶에서 겪는 상실의 고통을 어찌 쉽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밖에.

그리하여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왜냐구요?!  그들 종교 창시자 모두도 상실의 아픔 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길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붓다, 싯타르타 왕자도 태어난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이모의 손에 자라나죠. '어머니의 빈자리는 진흙밭이었을 터, 그 아픔 위에 연꽃 피운 싯타르타'라고 백성호 기자님이 표현하였더군요.

 예수 역시 양부인 요셉 아래서 성장하며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를 겪었을 것이고, 공자는 또 어떠한가요?!  그 역시 70세의 아비 공흘이 16세였던 공자의 모친 안징재에게서 얻은 아들로, 그가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4세에는 홀어머니도 세상을 등지는 상실을 겪은 인물임에.....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마드 역시 그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유복자였으며 6살 때 어머니까지 여의며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가 8세 때엔 숙부에게 맡겨지며 그 후 숙부를 따라 험난한 사막을 횡단하며 자랐다 하니.......


 상실을 겪으며 살아내면서 우린 끊임 없이 질문해야겠죠.

그물에 걸리지 않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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