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채식주의자'에서 보여주는 폭력 피해자들
최근 세간에 회자 되는 각 쟝르, 영화 '아가씨'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결국 남성들의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 여성들 이야기인데요.
맨부커상 수상으로 인기가 급부상한 '채식주의자'는 '몽고 반점' '나무 불꽃' 세 작품이 한데 엮어 '채식주의자'로 알려졌죠. 나무가 되고싶어한 영혜를 둘러싼 남편, 형부, 그리고 그녀의 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연챦게 영화 '아가씨'도 3부로 이루어진 구성이었는데요. 하녀 숙희, 아가씨 히데꼬, 그리고 또 다른 시각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남성들에 의한 폭력으로 야기된 여성들의 고통, 그리고 그들의 대처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요즘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혐 피살 사건으로 인한 사회의 분노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고 그리하여 두 작품을 남성들의 폭력이란 시각으로 들여다 보게 되네요.
우선 '채식주의자'부터 살펴볼까 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영혜라는 인물, 그녀는 본인을 물었던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 동네를 세바퀴 돌며 도살하여(육질이 부드러워진다는 이유로) 요리한 보신탕에 밥을 말아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죠. 별로 예쁘지도 개성도 없던 그녀는, 그런 이유로 남편에게 발탁되어 결혼하게 되고...... 어떠한 인간적 배려나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남편과의 삶에서 절망적인 정신적 폭력성을 경험했으리라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느 밤에 꿈을 꾸게 되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합니다. 인간적인 관심을 받아보지 못하는, 같은 주거 공간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면서 본인의 도구로서만 딸과 아내를 바라보는 그 동물적인 남자들의 몰이해는 한 가엾은 여자를 정신이상자로 몰고가는 결과를 만듭니다. 그러나 내게 더욱 아픈 통증을 유발한 인물은 '나무 불꽃'의 화자인 영혜의 언니였습니다. 그녀는 어린 동생들이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유년 시절부터 엄마 대신 그 아버지의 술국을 끓여주는 등, 그저 살아남기의 달인처럼 묵묵히 열심히 생활하는 케릭터였죠. 결혼 후에도 경제력 없는 남편 대신 말없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등... 그런 남편의 파렴치한 행동에 삶이 무너지고, 그러나 제정신 챙기면서 모두에게 버림받은 동생까지 뒷바라지하며 살아갑니다. 차라리 정신줄을 놓는 편이 편할 그런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제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조실부모한 아가씨 히데꼬는 파렴치하며 변태인 이모부 코우즈키 백작 아래서 자랍니다. 신사들 앞에서 음란 소설을 읽어줘야 하고 때론 그 찌질한 남자들의 쾌감을 돕고자 목각 인형을 상대로 실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의 이모가 나무에 목을 메어 자살하기 전에 했던 일을 답습하고 있는거죠. 영화에선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두 여자의 얼굴을 짖누르는 끔직한 폭력을 행사하는 백작의 모습이 나옵니다. 역관으로 일하다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본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가씨의 이모와 결혼하고 처조카의 유산을 탐내 그녀와 결혼할 계획을 가진 비열한 인간. 그런 남자의 폭력에 얼마나 몸서리치며 남성에 대한 혐오심을 키웠을지 가히 상상이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녀로 위장한 숙희가 왔고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에서도 둘은 사랑을 키우죠. 퀴어 영화로서의 대담한 성애 장면 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마지막 씬의, 방울을 이용한 사랑 행위는 아가씨가 읽던 소설 속의 내용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 끝까지 남성의 폭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여성을 보는 듯해 못내 아쉽더군요. 동성애자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지만, 또다른 퀴어 영화 '케롤'에서 다루듯 생래적인 그들의 동성애적 취향을 다루는 것과는 달리 남성에 대한 혐오로 인한, 그러니까 동성애란 과거 어떤 상처로 인한 귀결임을 증명하는 듯. 요즘 소수 성애자들이 본인의 목소리를 높이고 권리를 주장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그들의 시각으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문득 궁금하더군요.
사회적으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가 횡행하면서 양육자가 '욱'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며 키울 경우 피부양자 역시 같은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고 하는 보고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마지막 성애 장면은 거슬리더군요. 박찬욱감독은 인터뷰에서 '본인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 잘 버티고 헤어나오는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뭔가 적절치 못한 장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떻든 자기 감정을 조절 못하고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배설하는, 본인 욕구에만 충실한 인간들에 의해 멍들어가는 피해자가 넘쳐나는 세상, 거기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며 두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두 작품의 가해자는 남성들이었지만 소소하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며 가끔 발생하는 사건들에서 여성들 역시 가해자의 위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 명심합니다. 가끔은 옆 사람들의 사소한 취향에도 관심가져 주고, 오늘 새롭게 피어난 들꽃에게도 눈맞춤해주며 이 순간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며 사는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