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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Oct 26. 2020

루벤스가 <시몬과 페로>를 그린 이후.....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와의 비교.....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바로크 시대 지금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제일의 화가로 명성을 날리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특유의 화려하고  대한 예술을 펼치던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로 생기가 넘친다는 평을 받곤 하죠.  

그는 화가이자 학자였으며 외교관으로도 활약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소재는 신화적 이야기라든지 기독교적 성화인 경우가 많았는데요.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바로크 회화의 집대성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작품의 일부

당대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의 작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기념할만한 행위와 격언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시몬이라는 늙은 로마인이 역모를 꾸미다 잡혀 투옥되고, 아사형에 처해집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는 그에게 막 해산한 딸 페로가 면회를 오고,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가는 아버지를 본 딸은 자신의 젖을 물려주어 아사를 면하게 합니다. 딸의 효성에 감복한 왕이 시몬을 석방한다는 내용인데요. 막시무스는 이 이야기에서 부모에 대한 '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 남성 화가들은 사뭇 선정적인 분위기로 이 이야기를 그리곤 했습니다. 루벤스 역시 같은 이야기로 다수의 작품을 남겼지요.

<시몬과 페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루벤스를 힐난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이후 낙향하여 풍경화만 그리게 됩니다. 사실 그는 1630년 당시 열여섯 살 소녀인 엘렌 푸르망과 재혼하였으며, 그녀는 말년의 루벤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모델로의 역할도 수행했다 합니다. 그의 무의식 안의 성애가 그림에 투영되었을까요?!  어떻든 요즘 세대의 악플을 버텨내지 못한 루벤스......


  작년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던 사법 농단 사건의 재판에 나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바로 이 루벤스의 그림을 빗대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며 본인의 입장을 항변했는데요.

과연 원제 <Roman Charity>인 이 그림을 그린 루벤스의 무의식이 궁금해집니다.


  이번에는 책 이야기입니다.

노르웨이 임상심리학자인 아른힐 레우뱅이 쓴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에 대한......

 그녀는 총명하고 성실한 소녀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와 언니와 함께 사는 공부도 잘하던 그런 소녀.

14세 즈음부터 환청과 환각을 느끼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극심한 자해 행동을 보이게 되어 17세에는 마침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근 6년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오슬로 대학의 심리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본인의 어린 시절 꿈이었던 심리학자가 되기 위해서.

책 서문에서 그녀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매우 특별하다. 나는 한때 조현병 환자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저는 과거에 에이즈를 앓았습니다." 혹은 "이전에 당뇨병 환자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예전에 조현병 환자였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그게 가능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조현병 환자였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고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만 했는지 안다.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나는 건강하다.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 중에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그녀는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걸까?!

내 눈에 나는 '조현병 환자'로 비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른힐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아른힐은 빌어먹을 정도로 힘들었다. 이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이 필요했다. 나는 옛 동화에 나오는 기사처럼 괴물과 싸울 때 나를 도울 마법의 무기로 무장했다. 내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버티도록 도와준 것은 반항심이었다. 나는 모든 길이 막혔을 때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도와줄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녔다. 나에게는 항상 곁에서 나를 돕고 응원해준 가족이 있었고, 관심을  보여준 여러 의사가 있었다.

그녀의 대답입니다.

단지 불치병 환자로 보지 않고, 개인적 관심을 보여줬던 의료진들의 사례, 특히 딸에 대한 무한 사랑을 보여주던 엄마.

너는 여전히 내 딸이야. 아른힐. 너는 가족과 전통,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예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잖아. 예쁜 것과 소중한 것을 깨뜨릴 만큼 너는 미치지 않았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아프지도 않고. 너는 언제나 우리 딸이야. 너는 집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아니야. 우리 집에서 너는 아른힐이야.

병원에서 휴가를 얻어 집에 방문하던 날, 자해 행위를 일삼는 그녀를 방어하기 위해, 병원 측에서 요구합니다. '날카로운 것들은 치우라'라고. 그러나 엄마는 주문을 따르지 않고 예쁜 자기 찻잔을 준비해 놓습니다. 딸을 위해서.  그녀를 믿기에.....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고, 또한 그녀를 믿어주는 가족과 의료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험담을 하거나 악플을 다는 저렴한 행위의 위해성을 다시금 깨달아야겠네요.


 그리고 나의 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 찾아보고, 저 깊숙이 숨어 있는 사랑을 발견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발걸음도 시작해야겠지요?!

그러기에 어울리는 가을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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