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이라고 모두 대인 관계를 어려워하거나, 한두 영역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독서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한다. 감성적일 수도, 반대로 냉정하고 이성적일 수도 있다.
내향적인 사람의 핵심은 주된 관심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하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작은 일에도 숙고한다. 대상에 몰입하는 경향에 크고, 여러 사람보다 한두 사람과 있을 때 더 편안해한다. 다양하고 넓은 경험보다 소수의 깊은 경험을 즐긴다.
도리스 메르틴은 『혼자가 편한 사람들』에서 내향인을 대인 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지 없는지, 이성과 감성 중 무엇이 중심인 지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내 아이가 위의 유형 중 하나에 해당될 수도 있고, 여러 특성이 혼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공통적으로는 한두 분야에 대한 사랑이 뛰어나고, 깊이와 완벽함을 추구하며, 예민하고 양심적이다.
내 아이를 반드시 유형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성을 알면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소심하거나, 덜떨어져 보이거나, 집착하거나, 느린 모습을 행동으로 보면 문제로 보이지만, 큰 틀에서 바라보면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어떤 유형이 절대적으로 뛰어나거나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형에 속하더라도 그 특성에 맞게 개발되면 비범함을 지닐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주도형이나 비범형인 것은 아니고, 고립을 자처하는 은둔형이 괴짜이기만 할 리가 없다.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처한다면 그 어떤 아이라도 자신만의 강점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에만 꽂혀 다른 분야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비범형 아이라면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관련 장소나 인물을 찾아다니며 아이의 관심사를 더 깊이 끌어준다.
내 딸은 섬세형 아이이다.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는다. 큰 흐름과 무관한 작은 부분에 집착하는 것이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는데, 아이의 성향을 알고부터는 완벽함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외면한다.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이나 창조 영역에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완결성이 있을 때 남다른 작품이라고 말한다. 대가는 작은 디테일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며 마음을 다잡고 딸에게서 눈길을 거둔다.
은둔 성향의 아이도 부모가 견디기 힘들다. 이 아이들에게 과도한 자극은 금물이다. 아이가 싫어하면 즉시 빠져나오자. 모든 내향인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공기만큼이나 중요하다. 혼자, 또는 편안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편안해하고, 생각이나 활동을 깊이 할 수 있다. 사회성을 키운다고 억지로 놀게 하거나 팀 훈련을 시키면 지치고, 자신의 색깔을 잃을 뿐 아니라, 자신감마저 사라진다.
혼자만의 시간이 외롭고, 불쌍한 은둔자라는 편견을 버리자. 명상가, 철학가들은 혼자만의 시간에서 더 깊은 사고를 끌어낸다. 이 아이들은 내면과 맞닥뜨리며 가장 행복하고 짜릿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또 다른 나, 상상 속의 존재, 초월적인 존재와 마주하며 차원 높은 상상과 지식, 영성의 세계를 끌어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이 아이들이다.
주도형 아이는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모든 부모들이 원하는 ‘그림 같은’ 자식상이기도 하다. 이 아이들의 주도성을 인정하고 믿고 맡기면 양심과 사회적인 책임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만 지나치게 양심이나 책임의 무게를 느낀 나머지 자신을 정죄하는 죄의식에 빠질 수 있다. 위인전, 좋은 멘토, 영감이 있는 여행으로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 이 아이들이 스스로 잘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더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지인 중에서 주도형 아이의 모델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 부모는 아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미진한 부분만 거론하며 더 잘하라고 채근했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사회에서 좋은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완벽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남들의 평가와 비난을 힘들어한다. 비판을 피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 강점에만 정력을 쏟아부었다면 더욱 큰 인물이 되었을 텐데, 하는 탄식이 들곤 한다.
내향적인 아이들이 집중하는 분야와 형태는 다르지만 대개 한 두 가지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지적으로 느리면서 그림만 그리거나 노래만 부를 수 있다. 책에만 빠져 살기도 한다. 꼬마 과학도가 암석, 고양이에 꽂히기도 하다. 아이들의 몰입을 인정하자. 동물을 좋아하니 수학도 해보라고 유도하지 말자. 한 곳에 깊이 빠져든 아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전문성을 쌓는다. 좋아하는 대상과 조우하며 극도의 행복감을 맛본다. 한 단계를 무섭게 파고든 후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단계로 도전을 감행한다.
스스로 빠져서 했던 영역들은 이 아이들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이력이 된다. 이런 아이들의 포트폴리오는 열정이 가득하고, 자기 주도적이며, 누구에게도 없는 독창성을 지닌다. 아이가 몰입하는 지점을 따라가고 인정해 주다 보면 그 누구나 미래형 인재로 자라날 수 있다. 남다른 스펙을 만들어 준다고 학원이나 유명 컨설턴트를 좇아 다니는 일은 쉬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듯이 보인다. 몇 년 동안 줄곧 만화, 동화만 따라 그리던 정원이는 한때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한국 전통 복식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확장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케빈 리먼은 형제 순서에 따른 유형과 특성을 평생 연구하고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냈다. 형제 순위에 대한 연구? 형제 순위에 패턴과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그저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키워 온 관심이 형제 순위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으로 키워냈다.
하버드 대학의 토드 로즈 교수는 개개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평균에 수렴하는 공교육과 제도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를 연구하고 개선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로즈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 ADHD 진단을 받고 고등학교에서 중퇴를 당한 지독한 문제아였다. 유청소년 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개개인의 재능을 말살시키고 유예하는 교육의 문제를 처절하게 느끼게 했고 자신과 같은 학생이 다시는 생기는 안된다는 평생의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 형제 순위, 평균에 수렴하는 교육 제도의 문제는 이들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이다.
사실, 세상의 그 누구도 이들만큼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즉, 이 둘은 이 분야에서 ‘가장 잘한’ 사람이 아니라,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끌리는 관심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잘하는’ 사람은 되지 못할 지라도, ‘유일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몰입한 분야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문 영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모가 주제를 판단하고, 재단하고, 계획해서 몰입을 강요하고, 설득하는 것은 한참이나 핵심을 비껴간다. 효용성은 몰입을 낳지 않는다. 몰입이 효용성을 낳는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파고드는 내향적인 아이들은 미래형 인재에 최적화된 성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내 딸은 인지력이 상당히 느리지만 자연이나 그림에 대한 감수성이 특출했다. 친구 관계나 현실 세계에 굼뜬 대신 자신만의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늦되거나 내향적인 모습은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 글은 주로 인지적으로 굼뜨고, 친구 관계를 어려워하고, 혼자만의 예술 세계에 빠진 딸을 키우면서 얻은 경험담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