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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X Writing Lab Dec 07. 2019

느린 아이 파헤치기

느린 아이들은 사회생활에 불리한가?

악이 약자에게 가혹하듯 내향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아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어른들은 본모습을 감추고 ‘사회성 버튼’을 누르고 실제와 다른 나를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어떨까? 어른들의 비뚤어진 시선을 고려해서 갑자기 본성을 감추고 명랑 쾌활한 모습을 보일까? 안타깝게도 자신의 본성을 상황에 맞게 ‘개량’ 훈련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날 것 그대로의 내향성을 드러낸다. 



그렇다. 바로 늦된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늦된 아이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내향적인 성향을 살펴보면, 





말이 짧다.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고 혼자만의 영역을 즐긴다. 

공상과 상상을 많이 한다. 

걱정과 두려움이 많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부정적이다. 

평화주의자로서 갈등을 회피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곧 혼자 놀이에 빠져든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양심의 기준이 높고 질서를 잘 지킨다. 줄을 잘 서고, 양보를 잘한다. 도덕적이다. 

엉덩이 힘이 무겁다. 

한 가지에 빠지면 무섭게 집중한다. 독서, 그림, 음악, 춤, 운동, 숫자, 과학 그 무엇이든 가능하다. 

융통성이 없다

놀이를 주도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맞춰준다. 

놀이의 활동성이 작다. 

관찰을 즐긴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뜻대로 안 되면 주체를 못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새로운 시도를 잘하지 않는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 안전하고 잘 아는 것만 즐긴다. 

신중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크다. 







늦된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익숙한 모습이 아닌지. 



딸 정원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다. 토론이나 대화가 버겁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진지하다. 가벼운 농담이 안된다. 엉덩이가 무거워 한번 자리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자리를 지킨다. 친구들과 있으면 맞춰주느라 제대로 즐기지를 못한다, 혼자의 시간을 편안해한다.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열하고 분노했다. 



때로는 아이를 이해해 보기도, 화를 내기도, 때로는 설득도 해본다. 성격을 바꿔준다고 친구들의 모임을 만들어 주거나, 운동, 스피치 학원을 데리고 가는 사람도 있다. 늦된 성향을 아이를 가진 부모가 얼마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병명이 나오면 치료라도 가능한데 원인불명이라거나, 병이 없다는 진단을 받으면 더 속상해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늦된 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와 애환을 나누고 싶었는데 도통 아이의 늦된 속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자랑만 드러내고 자랑이 아닌 것은 감추니 그 누구도 드러내지 않는다. 내 아이만 그런가?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도 다른 부모와 애환을 나누기 싶어 블로그에 내 이야기를 올려보았다.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이웃이 나에게 글을 남겨주었다. 본인의 자녀가 비슷한 증상을 보여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퍼거슨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치료를 받았고, 덕분에 좋아졌다며 나에게도 치료를 권했다. 




늦된 성향이 과연 뿌리 뽑아야 할 병인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서 고쳐야 하는 것인가?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존중받고 인정받았던 성향이 갑자기 악마로 둔갑하는 게 가능한가? 









문제는 내향성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틀이다.




『융 심리학 입문에서는 개인의 타고난 성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해롭다고 말한다. 융은 부모의 역할이 자신에게 내재된 성질 쪽으로 발달하려는 어린이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를 위해 자녀에게 모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각자의 성격 유형을 용납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의 기준에 따르다 보면 잘못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좌절이 심해진다. 사회적인 비난에 개의치 않고 내향성을 유지하려면 사회와 대립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편이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 책에서 조언한다. 




이들이 ‘홀로’ ‘조용히’ 살아간다는 사실이 정말로 이 아이들의 미래나 사회성의 발목을 잡을까? 



여러 사람, 또는 여러 영역과 얕은 관계 대신 한 두 사람, 또는 한 두 가지의 좁은 영역에서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혼자 책을 읽고 조용히 하는 상상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 창의력의 원천이다. 


좋아하는 일에 조용히 몰입하는 힘은 전문가로 성장시킨다. 


말하기를 즐기지 않지만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인종, 국적,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사람, 동물, 자연, 신을 가리지 않고 교감한다. 이 아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다. 


조용하고 외롭지만 환희로 가득차서 세상과 조우한다. 




느리디 느리고,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자. 이 아이들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넓은 사회성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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