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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X Writing Lab Jan 30. 2020

느린 아이가 보내는 잠재력의 신호 3

동물 사랑

동물 사랑



나는 동물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경거리로 전략한 동물에 대한 딱한 마음이 들고, 도시화로 훼손되는 자연의 단면을 보는 듯하여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너른 초원이나 숲에서 살았다면 스스로의 존엄과 위생쯤은 철저하게 관리했을 생명이 시멘트 우리에 갇혀 먹을 권리, 주거의 권리, 위생의 권리까지 사람에게 맡긴 채 풍겨대는 동물원 특유의 냄새도 싫다. 그렇게 동물에게서 애정을 거둔 채 살아왔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딸은 동물을 좋아한다. 




관상용 동물원보다 작고 귀여운 초식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작은 농장을 좋아한다. 특히 작고 귀여운 동물에게 먹이 주는 활동을 좋아한다. 당근 한 봉지 주고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몇 시간이고 자리를 뜨지 않으려 한다. 당근도 많이 사면 비용이 들어 눈치가 뻔하니 당근 한 봉지를 아끼고 아껴서 최대한 시간을 늘려서 나눠주고, 다 떨어지면 근처 풀이라도 뜯어본다. 풀은 동물들에게 인기가 없음을 알고는 당근을 사달라는 낙타 같은 눈망울을 보이기도 한다. 



당근이 한 봉지를 넘어서면 먹이주기는 ‘먹이를 건네는 행위’ 이상으로 발전한다. 우격다짐으로 먹이를 받아먹는 힘센 아이들에게서 소외되고 연약한 동물 찾아내기, 힘센 아이들의 대열을 헤치고 약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동물의 혓바닥이 손바닥을 핥는 감촉 느끼기, 동물의 이목구비 살피기, 울타리가 없는 곳이라면 서서히 교감을 늘리며 만지고 안는 행위…



나의 동물 사랑은 갇힌 동물에 대한 연민에 그친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동물들이 어른들의 단백질 거리가 되었던 기억이 컸던 탓인지 동물과 함께 한 추억은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없다. 애완동물 학대 같은 문제도 마음 아파하는 정도로 그친다. 



하지만 딸은 나와 다르다. 태어나서 줄곧 아파트에 살았고,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동물 책을 좋아한 것도 아닌데 자그마한 동물에 대한 향한 사랑과 관심이 대단하다. 길거리 동물이라고 가리지 않는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놀고 들어온 날보다 아파트 길고양이와 놀다 들어온 날이 더 많다. ‘세균이 많을 텐데’하는 걱정부터 앞섰지만, 세균 따위에 동물을 사랑하는 위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대신 집에 와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만 일렀다. 



이름을 ‘송이’라고 지어줬다. 어느 날 아파트 단지를 걷는데 "엄마 송이 보여줄까?" 한다. 그리고는 길에 눕다시피 해서 차 밑, 풀밭, 인도길을 꼼꼼히 살핀다. 그렇게 발견한 송이는 길고양이답게 비만이고 지저분하다. 그저 불편한 마음에 빨리 집에 들어갈 틈만 노리는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딸이 송이를 발견했고, 송이도 딸을 본다. 송이가 먼저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그리고는 딸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쉬지 않고 울어댄다. 동물의 얼굴, 소리를 변별하지 못하는 나지만 송이가 내 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는 소리이다. 송이를 만져주기도, 송이가 딸을 따라 하기도 한다. 




둘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말을 걸지도 못하는 딸아이에게
동물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느낌만으로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인 것이다. 




나는 길고양이들도 집, 식사만큼이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딸에게 동물 체험의 최종 목적은 “관계 형성”이고 그 시작이 먹이 주기이다. 섣불리 다가서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상대가 마음을 열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서두르지 않는다. 이미지 인간이자 자연 친화적인 인간이다. 




"딸! 엄마는 동물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동물을 사랑해?"

"알아야 사랑해?"

"아.. 그래.. 맞다 맞다. 알아야 사랑하는 게 아니지. 사랑하니까 아는 거지. 네 말이 맞다 맞아."




딸의 인생에 동물이 자리하게 될 것을 직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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