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나비를 만난다는 것은?

by 사막나비


수년 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열린 사하라 서바이벌 마라톤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각국에서 온 대회 참가자들은 자신의 음식과 장비를 배낭에 메고 외부의 지원 없이 일주일 동안 총 6개 구간 250km 사막 횡단을 해야 했다. 하루에 지급되는 물은 단 10리터! 사막의 거친 모래와 50도 가까이 되는 태양을 견뎌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매 10km마다 있는 체크포인트였다. 일정 시간 내에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나같이 실력이 빠듯한 사람들은 숨 쉴 시간도 없이 걷고 달려야 겨우 턱걸이로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대회를 꿈꾸고 준비해온 선수들에겐 대회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짜릿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했고 매 포인트마다 빠듯하긴 했지만 통과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대회 삼일 째 되던 날 위기가 찾아왔다.

그날도 새벽 기상을 한 후 동료들과 함께 간단히 준비해 간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큰일을 봐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왔다. 첫 번째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두 번째 10km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아프리카 사막 정오의 태양은 살벌했다. 분명 첫 번째 구간까진 괜찮았는데 침낭과 대회 기간 중 먹을거리가 담긴 10kg 정도 되는 배낭이 어깨를 짓눌러 통증이 시작되었다. 어제 생긴 물집도 신경이 쓰여 한참을 고민하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준비해 간 물 한 통을 버렸다.

평소보다 더운 날씨를 감안하여 주최 측에서 특별히 중간 포인트쯤 물 배급소를 설치해 두었을 꺼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물은 바닥을 보이는데 주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나미비아 사막 특유의 적색 사구만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한 땀과 체온상승 때문에 호흡은 거칠어지고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만약에 대비해 한 모금 남겨놓은 전해질 섞인 미지근한 물이 가방 한쪽에서 찰랑거렸다.

한걸음 또 한걸음

한참 동안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체크포인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걷고 또 걸었지만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변화는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탈진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배낭을 내팽개치듯 던져버리고 사막의 신기루를 보고 있자니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바싹 마른 입술을 적셔주었다. 물통을 꺼내 들고 힘겹게 남겨둔 한 모금의 물을 마셨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파란 빛깔의 나비가 철퍼덕 앉아 있는 다리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나비를 보게 되다니!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비는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고 무사히 물 배급 차에 도착하였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부터 존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려 애쓴다. 풀 한 포기 , 개미 한 마리, 갓 태어난 아이조차도 자기 나름대로 생의 의무를 다하려 애쓴다. 다 컸다 자부하는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아등바등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 선악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 힘들고 모두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진이 빠져 더 이상 못 갈 것 같다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 우리를 구해 주는 것은 거창한 구호나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아니다.


지친 워킹 맘에겐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회사에서 상사에게 하루 종일 치인 직장인에겐 연인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날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어찌 보면 정말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연약한 나비 한 마리가 사막을 다시 건널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걷다 보면 또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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