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표

by 사막나비

사무실의 형광등은 언제나 같은 밝기였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밤에도.

창가 쪽 자리였지만 창문은 거의 열리지 않았다.

외벽에 붙은 유리창은 바깥 공기보다 실내 온도를 더 잘 지키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커서를 움직였다.

편집 중이던 원고의 마지막 문장 위에 빨간 줄이 하나 더 그어졌다.

원고는 어느 중년 작가가 보낸 여행 에세이였다.

수십 번은 읽었을 문장이었는데, 그날따라 눈에 오래 남았다.

사람은 어떤 순간 자기 마음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편집자로서라면 이런 문장은 조금 다듬어야 했다.

조금 더 간결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덜어내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나는 커서를 문장 위에 올렸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고칠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두었다.

사무실 어딘가에서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웃고 있었다. 아마 점심 약속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두 시쯤 잠깐 눈이 붙었다가 다시 깼다.

그리고 그때 떠올랐다.

코끼리.

산속 절에서 만났던 어린 동자승의 말.

잠을 자려면 코끼리와 화해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코끼리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어떤 순간 자기 마음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모른 척하며 살고 있었을까.

이 사무실에서 일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수많은 원고를 읽었다. 어떤 문장은 지우고, 어떤 문장은 남겼다.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 왔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다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삶의 문장은 한 번도 고쳐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새 문서를 열었다.

몇 초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타자를 쳤다.

사직서.

두 글자를 쓰고 나니 화면이 갑자기 낯설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문서를 열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회사를 떠나겠다는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몇 줄 되지 않는 문장이었다.

문장을 쓰고 나서도 나는 바로 저장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건물들이 겹쳐 보였다.

나는 어느 순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천천히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그때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바람 소리가 스쳤다.

숲을 지나가는 바람 같은 소리였다.

나는 아직 그 숲에 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를 닫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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