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짐 싸는 밤

by 사막나비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옷장을 열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방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와

창문 밖을 지나가는 차 소리가 가끔 들렸다.

나는 옷장 위쪽에 올려 두었던 여행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래전에 샀던 가방이었다.

몇 번 쓰지 않아 바퀴에 먼지가 얇게 붙어 있었다.

지퍼를 열자 가방 안에서

비어 있는 천 냄새가 났다.

나는 옷을 몇 벌 꺼내 접어 넣기 시작했다.

셔츠 두 장,

얇은 스웨터 하나,

청바지 한 벌.

여행이라기보다는

잠깐 어딘가 다녀오는 사람처럼 짐을 쌌다.

그때 문득 손이 멈췄다.

서랍 안에서 종이 한 장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꺼냈다.

오래된 수채화 종이였다.

모서리가 조금 말려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이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물통을 엎질러 색이 번지던 순간은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날 나는 울었던 것 같다.

그림이 망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종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번진 색은 아직 남아 있었다.

물이 스며든 자리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 생겨 있었다.

나는 종이를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

가방 안에는 아직 빈 공간이 많았다.

나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창문 밖에서는 바람이 건물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숲의 냄새가 떠올랐다.

실제로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다.

그런데도

어딘가 익숙했다.

나는 천천히 가방 지퍼를 닫았다.

그날 밤은 여전히 길었지만

이상하게도 전날들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마치 어디론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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