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필요가 없습니다.

더러운 주전자를 소중히 품고 사는 당신에게

by 사막나비

숲 속 명상 전통을 이은 위대한 스승과 함께 인도에서 수년을 보낸 A가 있었다.

스승이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인도에 돌아갔을 때 스승에게 가장 헌신한 제자인 다다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느 날 다다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꼭 보여줄 것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스승이 이것을 남겨주었습니다."

A는 흥분했다. 스승이 남긴 것이라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다다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오래된 나무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맨 아래 선반에서 무엇인가 끄집어냈다. 그것은 낡고 더러운 천으로 덮여있었다.

"보이나요?" 제자가 A에게 물었다.

"아뇨, 뭘 봐야 하죠?"

다다가 덮인 천을 벗기자 그 속에서 오래돼 낡아빠진 알루미늄 주전자가 나왔다. 인도의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전자였다. 다다는 A의 눈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스승은 가시면서 나를 위해 이것을 남겼습니다. 보입니까?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다다, 안 보이는데요."라고 A는 말했다.

다다는 더욱더 강렬하게 A의 눈을 꿰뚫어 보았다.

"당신은 빛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빛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주전자를 다시 천으로 감싸서 나무 옷장의 맨 아래 선반에 다시 넣었다.


정신과 의사인 마크 엡스타인 박사의 <트라우마 사용설명서>에 나오는 일화이다.


자아가 생기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고민이 있다.


무엇인가 이루어야 할 것 같고 무엇인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타인과 비교를 통해 왠지 뒤처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빛나기 위해 어떤 노력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본모습이 어떠하든 , 설혹 평범하고 낡고 더러운 알루미늄 주전자라 할지라도 다다가 주전자를 잡을 때 보여주었던 그 보살핌과 자상함으로 자신을 잘 보듬어 주면 되는 것이다. 어릴 때 알고 지내던 언니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내가 부끄러워하고 아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예뻐해 주겠어. 그래서 난 별로 예쁘진 않지만 나를 참 예뻐해 주기로 했어."

사춘기 시절 한참 자의식이 강했던 때라 언니의 이 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종종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말을 되뇌었던 기억이 있다.


"당신은 빛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충분합니다."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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