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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22. 2024

무지개 보라도시모험 - 아첨과 뇌물의 도시


 “여기는 보라도시야. 달콤한 말보다는 쓴 말이 더 건강에 좋아!”

 시나는 여전히 타이밍만 되면 말했다.

 “시나시나야…, 아까는 주의사항 말 안 해줬잖아… 남색 도시에서 말이야…!”

 “우리를 믿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맞앙~.”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이오~.”

 “…”

 넷의 항의에 시나는 침묵했다.

 “흠….”

 “그건 그렇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서나와 시나 사이에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역시 똑똑한 마네가 빨리 상황파악을 했다. 상자 밖에 누군가 있을까 싶어 구멍을 통해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거인이던 남색 원숭이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여기서 나가세~.”

 상자에서 마네를 필두로 규리와 서나, 다롱이가 낑낑 대며 나왔다. 주위는 온통 보라색이었고,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펼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 넓어 보였다.



 감옥 같았던 상자밖을 나와보니, 그 넓디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건 이리저리 쌓인 가지각색의 물건들이었다.

 “켁켁, 아이공 먼지양~.”

 “왜 이렇게 먼지가 많은지! 열어보지도 않은 것 같소! 켁켁”

 쌓인 물건들 위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물건들을 5층으로 쌓아놨어…. 엄청 많아…! 우리가 마치 난쟁이가 된 것 같아….”

 그동안의 도시들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아주 작디작은 꼬마가 된 느낌이었다. 넷이 갇혔던 상자보다 더 큰 상자들이 어지럽게 5층으로 수십 개가 쌓여있었다.

 시나가 침묵하다가 한 마디 던졌다.

 “저 큰 문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다른 문을 찾아봐!”

 “응! 우리 시나 말을 듣자…!”

 “나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동의하오~.”

 “알았어! 자, 찾아보자!”

 넷은 드넓은 보라색 공간 안에서 나갈 문을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 작은 굴이야!”

 규리가 코를 ‘킁킁’ 거리더니 구석 벽에 아래쪽에 작은 통로를 찾았다. 서나를 필두로 넷은 차례를 지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여기 빽빽 화살표야…! 이런 곳에 화살표가 있다니…!”

 서나가 앞장서 가다가 화살표를 발견했다.

 “하늘에도 있었는걸 뭐! 신기하지도 않다. 빽빽이는 그럴 거면 같이 좀 가지! 왜 혼자 갔을까?”

 마네가 정곡을 찔렀다.

 “내가 늦게 걸어서 답답해서 먼저 간 걸 수도 있어…!”

 “빽빽이가 누구오?”

 “응, 화살표로 길을 가르쳐주는 서나서나친구양!”

 다롱이가 궁금해하자 규리가 알려줬다.



 넷은 계속해서 통로를 기어 나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통로가 엄청나게 길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바로 머지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 다음!!!!!!!!!!!!!”

 통로 끝에 다다랗을 때, 어떤 거만하고 무례한 소리가 들렸다. 넷은 약간의 긴장된 눈빛이 되어 잠시 그 행렬을 멈췄다.

 “서나서나양~, 뭐가 보영?”

 맨 뒤에 있던 규리가 궁금해서 묻자, 맨 앞에 있던 서나는 철조망의 뚫어진 구멍으로 밖을 살폈다.



 보라색으로 된 응접실에 끝없이 줄을 선 가지각색의 생명체들이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들고 굽신거리고 있는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들 물건을 가지고 줄을 서 있어…!”

 “왜 줄을 서 있는데?”

 “‘다음!’이라고 누가 말한 거요?”

 마네와 다롱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서나는 답을 주기 위해 시선을 줄 맨 앞으로 가져갔다. 그곳에는 아까 넷을 가둔 남색 원숭이가 두 손을 모아 서서 ‘다음!’을 외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보라색 의자에 앉은 보라색 미어캣이 앉아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남색 원숭이가 외치는 소리였어…! 저기 왜 있지…? 아까는 컸었는데, 다시 줄어들었나 봐….”

 “엇! 보라색 미어캣미어캣? 소문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보기도 하네!”

 “누군뎅?”

 “왕족의 친척이라나! 확실히 모르겠지만 왕 다음으로 대단한 사람이래!”

 마네는 박식한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어캣미어캣이 손가락을 움직이니까, 빨간 토끼나 노란 난쟁이, 캥거루, 초록 곰, 파란 물방울, 또 다른 남색 원숭이가 물건을 들고 이리가고 저리 가고 있어….”

  마네는 그 자리에 앉아 서나의 말을 들으며 얼굴에는 인내천이 저절로 그려졌고, 팔짱을 꼈다.

 “그러고 보니 남색 원숭이가 보라색 미어캣미어캣의 부하로군! 나머지 생명체들은 잘 보이려고 뇌물을 주는 것 같은데? 아오~.”

 “그럼 아까 우리가 상자에 들어간 것도 보라색 미어캣미어캣 주려고 그런 거 아냥?”

 “맞아! 오~ 규리규리 웬일! 눈치 빨라졌어!”

 넷은 대화를 통해 이 상황을 생각해 보며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이 침묵 속에서 남색 원숭이와 미어캣미어캣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이 보따리는 빨간 도시에서 온 것으로 빨간 토끼가 가져온 것으로….”

 “됐어. 넘겨!”

 “그래도 한 번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미어캣미어캣님!”

 “됐다니까. 내 말 안 들려?”

 “네! 미어캣미어캣님 말씀대로 올려놔!”

 빨간 토끼는 빨간 상자에 가져온 물건을 제대로 보이지도 못하고 하이에나 병사들에게 뺏기고는 문 밖으로 쫓겨났다.

 “다음은 주황 도시에서 온 주황 난쟁….”

 “넘겨!”

 보라색 미어캣미어캣은 키가 작은 난쟁이 모습만 보고 넘겼다. 그렇게 난쟁이도 나갔다.

 “다음은 노란 도시에서 온 노란 여우입니다~.”

 노란 여우는 남색 원숭이에게 윙크를 했다. 미어캣미어캣은 보지 못한 듯했다.

 “아주 특별하신 분입니다. 아주 특별하신 분께 아주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왔습죠! 미어캣미어캣님께서 반드시 좋아하실 겁니다.”

 남색원숭이는 인정도장 이야기를 할 때와 같이 알맹이가 없는 말솜씨를 늘어놓았다.

 “저 아무래도 남색원숭이랑 노란 여우랑 뭔가 있어! 남색 바나나를 준 게 분명해! 서나서나야! 나랑 잠시 바꿔봐!”

 “응….”

 좁은 통로에서 마네는 서나와 자리를 바꾸려고 낑낑거렸다.

 “뭐지?”

 미어캣미어캣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노란 뚜껑을 열자 노란 호박 보석이 나왔다.

 “저거 노란 여우가 노란 두부 장수랑 노란 카스텔라 장수가 말했던 호박 보석이야! 10년 전, 100년 전에 말했다면서!”

 “오~ 반짝이는 보석이로군. 좋아! 좋아! 바보 같은 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보석이니까 내가 해야지! 하하하!”

 “미어캣미어캣님이 왕이 돼야 하는데 말입죠! 바보 같은 젓가락 삼 형제와 포크상어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미어캣미어캣님이 왕이 되시면 저는 이 자리에 앉아 있겠죠? 하하하!”

 남색 원숭이가 덩달아 웃었다.

 

 

 마네는 이 모습을 보고 여전히 이마에 인내천을 풀지 못했다.

 “아오~ 정말 나빴네. 미어캣미어캣의 왕이라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까?”

 “나빠나빠나빠!”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였다.

 “또 이 소리! 아까도 들렸어. 어디에서 들리는 거지?”

 마네가 귀를 쫑긋하더니 서나 등 뒤에 메여 있는 시나를 가리켰다.

 “시나시나?”

 서나는 시나를 다리 앞으로 앉혔다. 규리, 다롱이도 시나를 주시했다.

 “나빠나빠나빠!”

 그때 다시 시나에게서 이 소리가 들렸다. 서나는 시나를 등 뒤에서 앞으로 돌렸다.

 “시나시나야…, 너는 입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을 했어…?”

 “…”

 시나는 표정은 원래 없었지만, 말도 여전히 없었다.

 “나빠나빠나빠!”

 “또 들령! 뭔가 큰일 난 걸깡?”

 소리가 전보다 조금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나의 얼굴이 점점 부풀었다. 규리와 다롱이는 놀라서 뒤로 좀 물러났고, 서나는 시나를 잡고 있다가 시나를 그 자리에 두고 마네 쪽으로 물러났다. 시나는 얼굴이 커져서 천장에 닿기도 전에 입에서 서나가 많이 보던 물건이 쓩 하고 튀어나왔다.

  “엇…! 너는 내가 전화박스에서 본 수화기 같은데…!”

 스프링이 달린 채로 수화기만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수화기?”

 “수화기가 뭐요?”

 다들 놀라서 큰소리로 말었다.

 “쉿! 조용히 해! 다 들리겠다!”

 마네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대며 주의를 줬다.

 “나빠나빠나빠!”

 하지만 수화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크게 울었다. 통로에 있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그러자 아래에서도 결국 이 소리를 듣고야만 모양이었다. 미어캣미어캣이 위를 째려보며 남색 원숭이에게 알아보라고 손짓했다.

 “무슨 소리야!”

 “저 위에 같습니다!”

 “잡아!”

 남색 원숭이는 다시 몸집을 크게 만들어 거인화가 되어서는, 소리 나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철조망을 뚫고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넷은 수화기 때문에 놀란 상태에서 갑자기 커다란 손이 들어오려 하자 분주해졌다.

 “헉!”

 “얼른 뒤로뒤로뒤로!”

 마네의 말에 넷은 재빠르게 뒤로 갔지만, 결국 맨 앞에 있던 마네가 잡히고 말았다.

 “안 돼! 마네야…!”

 서나는 남색 원숭이의 손에 잡혀있는 마네를 구하려고 자신도 모르게 남색 원숭이의 손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서나의 눈에 남색 원숭이 손안에 그려진 빽의 화살표가 보였다.

 “얘들아! 화살표야! 하나, 둘, 셋 하면 뛰어!”

 서나가 그 찰나의 순간에 화살표를 보자마자 규리와 다롱이에게 크게 외쳤다.

 “하나! 둘!”

 규리는 서나의 말대로 셋을 외치고 뛰려 했으나 다롱이가 듣지도 않고 규리의 손을 잡고 뛰어 버렸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남색 원숭이는 이 둘도 잡았다. 한 손에는 마네와 서나, 다른 손에는 규리와 다롱이! 어차피 잡혀야 했다.

 “이 녀석들! 상자에 넣어놨는데 어떻게 나왔지?”

 “뭐냐! 왕궁으로 끌고 가!”

 “네! 알겠습니다. 미어캣미어캣님!”

 


 서나, 마네, 규리, 다롱이는 남색 원숭이 손에 빽의 화살표가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궁으로 향했다.

 “역시 빽빽의 화살표야! 잡혔어도 궁에 가는 거니까 다행이지. 그렇지?

 서나가 빙긋이 웃으며 속삭였다.

 “서나서나야, 너 많이 변한 것 같아! 처음에는 무서워하고 숨고 그랬었잖아!”

 “맞아…! 나도 이제는 용감해지고 싶어…! 이제 울기 싫어…!

 “나는 그냥 울고 싶은댕….”

 “허허~ 그래도 이렇게 친구들이 같이 있으니 잡혀있어도 마음이 편안하오~.”

 다들 남색 원숭이가 듣지 못하게 속삭이며 웃었다. 끌려가면서도 넷은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조용히들 해! 뭐라고 하는 거야! 웃지 마! 재판만 받으면 너희는 이제 감옥행이야!”

 “재판받아서 풀려날 수도 있죠!”

 “맞소!”

 “맞앙!”

 “우리는 잘못한 것 없어요…!”

 다들 용감해졌는지 원숭이가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원숭이는 어이가 없고,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어졌는지 비웃기만 했다.



 보라도시의 전망은 공중에서 보니 미어캣미어캣의 거대한 성만 빼고 나머지 집들은 옹기종기 동그란 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라색 포도 같았다. 거대한 포도의 끝자락에는 보라색 강이 있었다. 그 보라색 강 앞에는 희한하게 생긴 커다란 성이 있었는데, 분홍색 세모 6개가 쌓여있는 모양이었다. 균형이 맞지 않고, 삐뚤빼뚤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무너질 것 같아!”

 “분홍색 왕의 왕궁은 절대 무너지지 않지! 내가 쌓아서 그 공로로 미어캣미어캣님을 모실 수 있었단 말이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수화기는 어디 갔지…?”

 “시나시나 입에서 토한 겅?”

 “공중에 귀신같이 떠 있더니 어느샌가 보이지 않소!”

 “서나서나야! 그건 나도 모르겠다!”

 “다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중요한 점은 넷은 잡혀가면서도 남색 원숭이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빽의 화살표를 믿고 몸을 맡겼다는 사실! 이상한 모험에 빠져드는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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