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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24. 2024

무지개 분홍왕궁모험 - 길고도 긴 분홍왕궁의 왕이름

 “여기는 어디야…? 시나시나야? 뭘 조심하면 돼…?”

 “여기는 분홍왕궁이야. 무지개 나라의 중심부지. 너희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면 돼!”

 거대한 남색 원숭이의 손에서 보는 분홍왕궁은 분명 아름다운 분홍색이었다. 하지만 왕궁의 형태는 영화나 동화에서 보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웅장하다거나 번쩍번쩍하다거나 탄성이 자연스럽게 내질러 나오는 건물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분홍색 세모 여섯 개가 위태위태하게 쌓여 있었다. 아래 1층은 가장 큰 세모부터 위층으로 향할수록 세모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기둥도 없이 세모들만 세워져 있는 삐뚤빼뚤한 광경이라 보는 사람마저 긴장이 되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언젠가는 무너질 것 같지?”

 “차라리 네모로 세우지. 왜 세모일까…?”

 “저걸 세운 왕의 성품이 세모 인가 보오~.”

 “동의한당!”

 넷은 한창 수다를 떨다가 분홍왕궁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뭐라?”

 어느샌가 멈춘 남색 원숭이는 이 소리를 듣고 분홍 세모성에 제일 꼭대기 층인 6층에 네 명을 한꺼번에 던져 넣어버렸다.

 “아악 아파!”

 “아이공!”

 “윽! 아프오~.”

 “얘들아, 괜찮아…?”

 서나를 제외한 세 명은 굴러서 아팠지만 서나는 시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너희는 누구냐! 포크포크!”

 “가만두지 않겠다! 젓.가.락.젓.가.락 3형제!”

 머리 모양이 포크처럼 생긴 상어와 젓가락처럼 마른 3형제가 서나와 친구들을 한 명씩 전담했다. 날카로운 포크와 젓가락이 꽤 위협적이었다.

 “포크포크님, 젓가락젓가락 3형제님 안녕하셨어요? 미어캣미어캣님이 재판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 미어캣미어캣! 오랜만이로구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누군가가 부드럽게 말을 하며 분홍색의 긴 봉을 휘두르자 바닥에 레드 카펫이 깔렸다. 그리고는 그 위로 우아하게 걸어오려고 노력했지만 휘청휘청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머리에 케이크가 있어!”

 서나가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조용히 못해?”

 포크상어가 서나 앞에 포크를 꽂았다. 바닥이 약간 진동했다.

그랬다.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케이크를 얹은 그녀는 이 나라의 왕이었다.

 “너의 이름을 말하라아~.”

 “저는 서나서나입니다…!”

 “…”

 “어서 왕의 이름을 여쭤봐!”

 “서나서나가 이름을 말했으니, 그다음으로 알아서 말하시면 되잖아요!”

 마네가 대신 말해줬다. 젓가락의 ‘락’이 마네 옆에 쿵하고 위협을 가했다. 바닥이 또 진동했다.

 “왕왕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왕님은 한 번만 불러! 우리나라 법이야! 왕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두 번씩 불러야 돼!”

 “왕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음음, 나의 이름은… 두더지두더지!!!!!!”

 왕은 이름을 말하다 말고 케이크를 한 조각 떼어먹으며, 분홍색 봉을 휘둘렀다. 두더지가 어디선가 나타났는데, 입가에 국수 면발이 묻어있었다.

 “냠냠냠, 내 개인 이름 작명가이니라아~.”

 두더지는 이런 일에 이미 적응을 한 모양인지 묻은 국수 면발을 서둘러 먹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검은색 안경을 꺼내 썼다.

 “후루룩~ 왕님! 도착했습니다요!”

 “내 이름이 무엇인고오~?”

 두더지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돌판을 꺼내 더듬더듬 읽었다.

 “‘나 같은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걸! 아름답고 예쁘지? 예쁘고 아름답지?’입니다!”

 “잘 들었느냐아~?”

 이름이 생각보다 너무 길었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왕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밀린 업무가 있어서 말이죠!”

 보라 도시에 있던 미어캣미어캣이 헐레벌떡 뛰어와 허리를 굽혔다.

 “오호라아~ 미어캣미어캣, 내 충성스러운 신하! 두더지두더지, 잘했어! 안경 하나를 상으로 내리지. 내일 불릴 이름은 뭔가아~?”

 “내일은 ‘찬란하고 소중한 나는야 최고. 너 같은 건 손도 못 댈, 나는야 예쁜 왕’입니다!”

 “오호호호호~.”

 “역시나 아름다우십니다!”

 이름이 긴 왕은 분홍색 봉을 한 번 휘두르니 두더지 손에 새 안경 하나가 생겼다. 미어캣은 두더지의 작명에 속이 다 보이는 듯한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미어캣이 보이자마자 마네는 이때다 싶었다. 아까 본 상황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남색 원숭이가 미어캣에게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표정을 지은 모습!

 “아까는 바보 같다면서 지금은 아름답대! 왕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마네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미어캣은 당황하며 오른쪽에 있는 마네를 내리깔며 보았다.

 “조용히 못해? 이 바보 같은!”

 다시 왼쪽을 보면서 왕에게 고개 숙였다.

 “아닙니다. 이 바보 같은 것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닌데. 나도 들었엉!”

 옆에 있던 규리가 용기 내어 말했다.

 “아닙니다. 왕님. 이 바보 같은 것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른쪽을 보며 왕에게 말했다.

 “조용히 못해? 이 바보 같은 것들아!”

 또다시 왼쪽을 보며 다롱이에게 말했다.

 “나도 보았소!”

 다롱이도 큰맘 먹고 말했다.

 미어캣은 화가 났는지 왕을 보고 말했다.

 “조용히 못해? 이 바보 같은 왕아!”

 다시 왼쪽을 보며 다롱이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엇?”

 온화했던 왕의 얼굴은 이미 보라색 미어캣을 죽일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당장 미어캣미어캣을 가두고 이 네 명도 가둬라!!!!!!!”

 포크상어는 미어캣을 끌고 가려했고, 젓가락 3형제는 서나를 제외한 세 명을 끌고 가려했다.

 “나빠나빠나빠!”

 “맞… 맞아…! 다 나빠!!!!!!!!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까지 끌고 가는 거야…? 토끼 마네와 아기곰 규리, 물방울 다롱이는 왕궁에 도움을 요청하러 왔어…! 그런데 이야기도 들어보지도 않고 가두라는 거야…?”

 “이름을 한 번씩만 부르다니! 법을 어겼어! 남색 원숭이, 저 자를 잡으면 보라 도시를 주겠다!!!!!!!!”

 밖에서 서있던 거인화된 남색 원숭이가 왕의 말을 듣자마자 왕궁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사이로 미어캣은 빠져나갔다. 삐뚤어진 왕궁이 더 삐뚤어져 쓰러질 것만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잡혀 있었고, 서나는 큰 용기를 내어 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왕은 분홍색 봉을 휘두르려다가 귀찮다는 듯 신하들에게 손짓했다.

 “뭐 하는 거야! 포크포크, 젓가락젓가락, 얘 빨리 치워어~”

 이상한 왕은 금세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법을 어겼다고 화를 내더니 1초 만에 귀찮다는 듯 말하고 말이다. 다혈질인가 다.

 포크상어와 젓가락 3형제는 왕의 명령에 잡고 있던 마네, 규리, 다롱이를 놔두고, 서나 주위를 금세 둘러쌌다. 하지만 서나는 아주 차분하게 주위 상황을 살펴보았다. 왕궁은 개국이래 처음 있는 진동으로 무작정 흔들리고 있었고, 왕의 부하들은 서나 주위만을 둘러싸고 있었다. 서나는 예전 같으면 무서워서 울어도 벌써 울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서나를 쳐다보며 걱정하는 눈빛이 느껴졌고, 이상한 왕에게서 친구들을 지키고 싶었다.  

 “이상한 왕아…!!!!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서나가 살면서 가장 큰 소리를 냈다. 아주 용기 있는 좋은 소리였다.

 “좋아좋아좋아”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수화기가 어디선가에서 울었다. 그동안의 소리와는 다르게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까 시나의 입에서 나오고 나서 한참을 보지 못했었다. 수화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왕 뒤에 낯익은 존재가 보였다.



 “엇! 저기 공중전화가 있어! 빽도 같이 있네!”

 빽과 수화기는 작아진 공중전화 안에서 손짓했다. 이상한 왕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모두의 시선이 공중전화에 꽂혀 있을 때, 마네가 포크상어의 지느러미를 꽉 잡았고, 규리는 힘으로 젓가락 3형제를 뭉쳐버렸다. 다롱이는 물방울의 힘으로 남색 원숭이가 잡지 못하게 바닥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서나서나야! 얼른 가!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어떻게 너희만 두고 가…, 내가 구해줄게…!!!”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미 소원이 이뤄진 거양. 그다음은 알아서 할 수 있엉!”

 “서나서나는 서나서나의 길로 가야 하오!”

 “안 돼…!!!! 너희도 안전해야 해…!!!!”

 서나는 망설이다가 도저히 친구들을 이 상황에 놔두고 갈 수가 없었다. 서나는 씩씩 거리는 이상한 왕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정말 살면서 아주 큰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해보는 거야…! 친구들을 구하는 거야…!’

 서나는 이상한 왕에게 달려가 분홍색 봉을 낚아채고는 외쳤다.

 “친구들을 구해줘…!!!!!!!!!!!!”

 그러자 서나의 잠옷에서 사슴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한 명씩 태우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얘들아, 그동안 함께해서 행복했어! 다음에 또 만나자!”

 서나는 안심한 듯 마네와 규리, 다롱이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서나야 고마워! 꼭 다시 보자! 꼭!”

 포크상어와 젓가락 3형제는 얼빠진 듯 보고 있다가 이상한 왕의 소리에 서나를 잡으려고 뛰어왔다.

 “잡아아아아아!!!!!!!!!!!!!”


 

서나는 분홍색 긴 봉을 던져버리고 공중전화박스에 얼른 뛰어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동전을 넣어!”

 수화기가 말했다.

 “동전이 없어!!!!!!”

 포크상어와 젓가락3형제는 공중전화 문을 열려고 마구 두드리고 있었고, 이상한 왕이 분홍색 봉을 주워 휘두르려 할 때였다.

 “손을 펴 봐! 어서!”

 빽이 재촉했다. 손에는 백 원짜리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

 “응? 응!”

 서나는 재빨리 세로구멍에 백 원을 넣었다.

 “색깔 7가지를 말하시오!”

 이때 이상한 왕은 봉을 휘두르려다 큰 진동에 봉을 놓쳤고, 왕궁이 무너질 것 같았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 물방울이 뭐였지? 아! 파란색, 원숭이가 남색, 보라색은 포도! 빨주노초파남보!!!”

 말이 끝나자마자 공중전화박스는 심하게 흔들렸고, 순간 분홍 세모성은 내려앉았다.

 “얘들아~ 우리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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