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3. 66세, 아저씨! 나 좀 죽여주실래요?

by 이야기소녀

3. 66세, 아저씨! 나 좀 죽여주실래요?


“으악! 왜 자꾸 악몽을 꾸는 거야!”


그랬다. 엊그제 꾼 악몽을 어제도 오늘도 똑같이 꿨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망치에 맞고 머리에 새빨간 피가 얼굴에 철철 흐르는 꿈.


“오늘은 무슨 주소도 나왔던 것 같은데. 육육동 남읍 수목리?”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마지막 삼각김밥 하나와 아껴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시지 라면 하나를 꺼냈다. 내 마지막 만찬이다.


“악몽이든 아니든 난 오늘부터 살인자를 찾아 나서야 해.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주인공! 먹자!”

라면 물을 끓이다가 뉴스에 얻을만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TV를 켰다.


“경찰은 오전 산속에 시신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최초 신고자는 산에서 가게운영을 하는 이모 씨로 가게 준비를 하려고 여느 때와 같이 걸어 올라가다가 발견했다고 합니다…………이 소행은 지난번 연쇄살인범의 특징과 같습니다.”


물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고, 나는 라면 뚜껑을 열면서 무심코 TV를 쳐다보았다.


“저…저 머리에 피? 옷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머리 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옷은 하얀색으로 보였고 얼굴색깔이 빨갛게 보였다. 익숙했다. 물이 끓는점에 다다랐는지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올라왔다. 마치 지옥의 용암이 끊는 속도보다 더 한 것 같았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그런 미신은 믿지 않지만, 설마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그곳에 가 있는 내 마음을 발견했다.


“오옷! 이럴 때가 아니야. 마음을 가다듬고 제대로 먹고 가자! 후훔.”


떨렸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 일 수 있다. 진정하려고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의 밀당에 불어 터진 라면을 세차게 흡입했다. 역시 라면은 맛있다. 오늘은 더 맛있다. 삼각김밥도 기분 좋게 한 입에 다 넣어버리고 라면 국물을 국밥 들이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건 빨리 죽으라는 신의 계시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꿈으로 나와? 아냐! 잠깐! 쉽게 믿으면 안 되지! 검색하자!”


어제의 실수가 생각나면서, 무작정 나의 본능적인 선택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주소가 없을 수도 있다. 날 죽이지도 않고 고통만 주는 악마가 내 무의식을 휘저어 놓고 헛된 희망만 심어놨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야 했다. 의심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육육동 남읍 수목리… 엇! 웬일이야! 있다! 있어! 할렐루야!”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복권당첨과 다름없군. 솔직히 이 상황에서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복권이 당첨되더라도 난 죽는 게 낫다. 왜냐하면 가족이 없으니. 돈이 많아도 돈 쓰는 일만 있지, 무능력자이기 때문에 돈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돈도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에는 더러는 오히려 빚을 지고 과거보다 더 망했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돈은 삶에 필요한 요소이긴 하나, 복권정도의 돈은 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고 또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내 목표는 오로지 죽는 것뿐.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어떻게 갈지 경로를 검색해 보았다. 차비가 없었다.


“아냐! 있어!”


편의점 아줌마께서 고맙다고 주신 용돈 10만 원. 이거면 가고도 남지.




고속버스를 타고 ‘육육동 남읍 수목리‘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느 시골처럼 조용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몰라도 마을골목에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집인지 모른다. 나는 최대한 꿈을 되짚어보았다. 마른 흙길, 금이 간 담장, 집 안에는 커튼, 무슨 색이었더라. 희미하다. 낮은 탁자 하나 있었는데.


‘도시도 아니고 시골 마을이니 금방 돌아보겠지’하는 마음으로 세 갈래의 길 중에 첫 번째 길에 들어섰다.


“우리 동네에 웬 관광객이래? 우리 동네는 볼 거 없어요. 왜 왔대요?”


“아~ 그게….”


“김 씨네~ 그것도 몰라? 저기 황홍산에서 여자 하나가 죽었대잖아. 그거 때문에 왔다가 들린 거겠지 뭐. 맞지? 기자지?”


“아? 네네….”


아는 척 쩌는 한 할머니가 나의 신분을 보장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구나. 기자님! 그런데 우리는 아는 게 없어. 형사들도 다녀갔는데 아는 게 있어야지. 그 죽은 사람도 누군지도 모르고. 건질 게 없어. 그냥 밥 한 그릇 먹고 가.”


“하하하… 배가 불러서요. 그럼 저는 이…. 헉!”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이 있었다. 낮은 탁자였다. 어디서 봤지? 뭐 낮은 탁자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탁자가 아닌 것 같았다.


“왜? 가려고?”


“할머니들, 이 탁자 누가 만들었어요?”


“아~ 이거! 호호호~ 이거 우리 장 씨가 만든 거야. 장 씨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 친절하지, 성품도 좋지, 우리 집 앞도 쓸어주지, 또 가끔은 망치를 들고 와서 못도 박아주고 다 고쳐준다고~”


“맞아! 요 동네 사람들은 장 씨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도깨비 탁자 맘에 들어? 내가 하나 달라고 할게.”


“도… 도깨비 탁자? 헉! 네! 제가 직접 찾아가서 여쭤볼게요. 집이 어딘지….”


“우리 집 옆 골목 끝에 있어. 거기 집도 아주 깔끔해서 남자 혼자 산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 장 씨가 서울집이랑 왔다 갔다 하던데, 오늘은 여기에 있나 모르겠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해 주시고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까지 가르쳐주시는 할머니께 감사했다. 이럴 때는 말 많은 사람이 좋다.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유용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으니.

나는 반갑게 감사인사를 하고 다음 골목으로 넘어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심장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목디스크도 아니고 심장은 튼튼하니 질병 쪽의 두근거림은 아니고 곧 해방된다는 기쁨의 두근거림이었다.

꿈에서처럼 나는 그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집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옳다 커니!”


점점 가면 갈수록 바닥의 흙이 말라있었다.


“워워~ 진정해. 주인공! 담장이 어떤지 확인하자. 확실히 체크하고 시작해야 돼. 급하게 굴면 또 실수하니까.”

주황색 담장. 꿈속에서 나온 담장이 정확했다.


“나이스!”


나는 씨익 웃다가 입꼬리를 내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문을 두드렸다.


“헤헤. 흠흠. 저 계세요? 저기요!”


“잠깐만요! 누구시죠? 이 동네 분은 아니신 것 같고, 저한테 올 손님도 없으신데요. 아! 최근 황홍산 살인사건 때문에 오셨다가 길을 잃으신 건가요? 아이코~ 저 반대편으로 쭈욱 걸어 나가시면 마을 입구가 보일 겁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살인자는 살인자처럼 생기지 않았다. 꿈에서처럼 푸근한 느낌의 아저씨였다. 한국 중년 남자하면 떠오르는 그런 보통의 사람.

그러고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까. 살인자도 예외는 아니네.


“아! 그게 아니라요. 도깨비 탁자를 구매하고 싶어서요. 옆 골목에 김 씨 할머니가 추천해 주셔서 일부러 왔어요. 한번 구경해 봐도 될까요?”


“김 씨 할머니요? 아~ 그래요…? 음…. 좋아요! 들어오시죠!”


약간 고민하더니 들여보내줬다. 신난다. 드디어 살인자의 요새에 입성했다. 저기 커튼이 보인다. 꿈에서 봤던 커튼 그대로다. 분명히 커튼으로도 피가 튀었었는데, 사라졌다. 도깨비 탁자다. 저기 근처에서 하얀 레이스 원피스의 여자분이 살해당했었지. 오늘은 내 차례다.

나는 살인자가 허락해주지도 않았는데, 신발을 벗고 도깨비 탁자가 있는 거실로 들어갔다.


“도깨비 탁자가 거실에 있는 걸 어떻게 아셨네요?”


살인자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렸다. 악몽에서 그 목소리와 똑같다. 망치를 들고 내 뒤에 서 있으려나? 난 눈을 감으면 될까? 1초만 끝나나요?


“…”


“드릴 게 없어서 여기 요구르트 하나 드시죠. 이 도깨비 탁자 이쁘죠? 마을 어르신들이 달라고 성화이셔서 한 가정씩 다 만들어 드렸어요. 저야 어르신들 섬겨서 좋고, 어르신들은 탁자가 생겨서 좋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죠. 하하. 김 씨 할머니 말씀이니 특별히 들어드린 겁니다. 작업실에 만들어 둔 게 있으니 잠깐 기다려보세요.”


아저씨는 내 앞에 요구르트를 하나 놓으면서, 아주 친절한 표정으로 이번 달 우수사원처럼 다정하게 설명해 주었다. 망치는 손에 없군. 안 되겠어. 이렇게 되면 탁자를 가지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판이다.


“잠시만요!”


나는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네? 무슨 문제라도?”


“저 다 알고 있습니다.”


“네? 아~ 도깨비 탁자 돈은 안 받을게요. 서울에서는 비싸게 받는데 김 씨 할머니 소개로 오셨으니 당연히 공짜죠. 하하하.”


나는 벌떡 일어나, 실없이 좋은 아저씨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살인자 앞에서 아주 담대하게 탁자를 뒤집어 깠다. 놀란 아저씨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저씨~ 저 다 알고 있어요. 하얀 레이스 원피스 입은 여성분 망치로 때려죽이셨죠? 헤헤. 여기 그 여성분 피가 튀었잖아요~”


“으악! 너 뭐야. 정체가 뭐야? 경찰이야?”


아저씨는 놀라 뒤로 나자빠지며 뒷걸음질 쳤다.


“아녜요! 절대 아녜요. 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제 부탁 들어주시면 끝까지 비밀로 할게요! 헤헤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찾다니, 나의 살인자.


“꺽! 꺽! 뭐… 뭔데! 꺽!”


살인자를 되레 사색이 되어서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나 좀 죽여주실래요? 헤헤헤.”


“이게 미쳤나! 꺽! 꺽!”


아저씨는 내 천진난만한 미소에 경악하며 놀란 표정이었다. 왜 놀라지?


“아저씨, 괜찮으세요? 그 망치 있잖아요. 여자분 머리에 휘둘렀던 망치, 그거 어디 있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작업실에 있겠죠? 어디예요?”


“누구야? 꺽! 누가 시켰어? 혹시? 악… 악마다! 꺽! 꺽! 끄억!”


“아저씨!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딸꾹질을 하다가 완전 뒤로 누우시길래 일부러 나를 피하는 줄 알고 목덜미를 잡고 막 흔들었다. 눈을 두어 번 뜨는 가 싶더니 아얘 감는 것이었다.


“읍.”


“아저씨! 모른 척 마세요. 제 요청 들어주시지 않으면 경찰한테 다 말해버릴 거예요.”


“…”


아저씨는 미동도 없었다. 뭐지? 아저씨의 팔과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았다.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니 아무런 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악! 이러면 안 되는데, 아저씨, 가시려면 저 죽여주시고 가셔야죠.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나는 서둘러 내 스마트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했다. 대략 10분 후에 119는 와서 실어갔고, 나는 떠나는 구급차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이게 뭐야. 오늘이 마지막 일 줄 알았는데, 왜 아프셔가지고. 다 회복되시면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마음을 다스리는 와중에, 고속버스 운전기사님이 틀어놓으신 라디오를 듣자마자 좌절했다.


“긴급속보입니다. 두 시간 전쯤, 병원 응급실로 실려 들어온 한 중년 남성이 한 미제사건의 연쇄살인의 살인범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름은 장자철, 나이는 66세,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살인을 연쇄적으로 일으킨 주범입니다……올해 초 병원과 경찰이 맺은 협약으로 환자들의 혈액검사를 통해 DNA비교를 하게 되면서 연쇄살인범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 중년 남성의 시골자택 수색 결과, 최근 사망한 시신의 DNA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이 66세의 연쇄살인범은 개인적인 지병으로 숨을 거둔 상태라 공소권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운 사실입니다……이상 긴급속보였습니다.”

그 아저씨 이야기였다. 희망이 사라졌다.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가볼 예정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확실한 것 같은데…. 하아~ 이제 어디서 찾지. 하아악~”


나는 머리를 두 팔로 감싸며 휘저었다. 어느 누가 나의 이 고통을 알리. 왜 계속 실패를 하느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