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3세 동생! 좋은 말할 때, 나 좀 죽여줄래?
4. 23세 동생! 좋은 말할 때, 나 좀 죽여줄래?
서울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내내 망연자실해 있다가 버스가 멈추고 버스 안 사람들 모두 짐을 챙겨서 우당탕탕 내릴 때에야 정신을 차렸다. 이미 통로는 꽉 찬 상태라 그 행렬에 낄 자신이 없어 마지막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몇 안 되는 계단을 터덜터덜 밟아 내려갔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속버스를 탈출해 발을 지상에 닿는 순간, 등 뒤로 고속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인사말이 들림과 동시에 버스 문이 닫혔다. 나의 희망도 닫혔다. 이렇게 버스에서의 마지막은 스스로 원해서 맞이했는데, 왜 내 마지막은 내 의지대로 안 되냐고! 나에게 있어 인생은 원래 풀리지 않는, 나와 원수 같은 사이다. 태권도할 때만 운 좋게 사이가 좋아진 거지, 태권도 전후로는 좋을 때가 없었다. 그러니 뭐 이번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또 낙심하지 말라고. 그냥 그러려니 해. 그러려니.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조금 걷다가 하품이 나왔다. 힘이 다 빠진 것 같아서 잠시 고속버스 대합실 의자에 앉으니, 본격적으로 눈꺼풀이 계속 내려왔다. 참으려 해도 도무지 참아지지가 않는 수면의 욕구. 고속버스에서 잘 걸 그랬다. 뭐 어차피 짐도 없고 가져갈 돈도 없으니 자다가 소매치기당해도 상관없어. 나의 의지야, 버티지 않아도 돼. 수고했어.
“야! 현수막 이리로 붙이라고.”
“재료는 레몬, 참외? 참외주스가 있냐?”
“다음 팀 리허설 준비하세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여긴 어디지? 온통 노란색이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여기는 아무도 없잖아? 아니다. 누군가의 등이 보인다.
“흐흐흐~ 이번에는 성공? 아니,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굴러들어 온 애를 나가라고 할 수 없잖아? 흐흐흐~ 내 인기란! 넌 어떻게 생각해?”
앉아서 벽 쪽을 향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남자다. 반대편에는 여자 같기도 한데 고개를 숙이고 있네.
조금 다가갔다. 남자는 여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것 같다.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린다.
연인 같은데 방해하지 말고 나가야겠다. 연애세포 죽은 지 백만 년. 넌 죽었는데 난 살아있네. 내가 연애세포하면 안 될까?
사방으로 둘러보는데 입구를 좀처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다시 연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내가 좀 잘생겼지? 우리 집도 부자고, 난 미래가 창창한 모델지망생이야. 나 좀 봐. 완전 옷걸이나 옷이나 다 명품. 그에 비해 너는 좀 아니지 않니? 그런데도 내가 널 받아주는 이유는 네가 내 취미를 이해하기 때문이야. 나 어디서 고맙다는 말 잘 안 하는데 참 고마워.”
뒤에서 봐도 늘씬하고 키가 커 보인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오른팔이 계속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우리 커플티야! 노란색 방에 노란 커플티. 그리고 너는 노란 살결을 가진 여대생. 내 SNS에 올려야겠어. 내 팔로워 수 얼만지 알지? 너도 곧 스타가 되는 거야!”
“커플은하수팀! 아직 준비 안 됐어요? 꺅!”
“앗! 이런! 이런!”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붓을 팽개치고 재빨리 들어온 여자를 붙잡아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팔을 제압했다.
“흠읍!!”
악! 아까 그 여자는 온통 노란색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스텝처럼 보이는 여자가 몸서리를 치며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노란색으로 염색된 자신의 머리칼을 쓰윽 넘긴다.
“너도 날 좋아해?”
“미친!!!!!”
고속버스 대합실에 내 목소리가 짱짱하게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무의식적으로 내면 안 될 소리를 내고, 나도 모르게 주위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봐! 학생~”
“앗! 네! 죄송해요. 소리가 컸죠? 하하하.”
“그게 아니라 어제 그렇게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더라고. 돌아갈 집이 없어? 젊은 청년이 왜 여기서 노숙을 하고 그래. 밥은 먹었어?”
“네? 저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밖을 봐. 아침이라고. 밤새 여기서 자고 지금 일어났는데 뭘.”
“네? 헉!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했나 봐요.”
“그래~ 어여 들어가. 부모님 걱정하실라. 그리고 이것 좀 먹어.”
할아버지는 고속버스 입구에 있는 호두과자 노점으로 들어가셨다. 내 손에 쥐어 주신 것도 호두과자였다. 이런 인정이 아직도 있다니. 어차피 걱정할 부모님도 없고, 난 죽을 건데, 은혜도 못 갚고 어째. 그래도 밤새 살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할아버지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바로 일어나 고속버스에서 지하철로 이어진 통로로 걸어갔다. 하루가 지났다면 토요일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지하철에서 고속버스로, 고속버스에서 지하철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학생들 무리와 직장인 무리, 여행자 무리로 나눠지는 듯했다. 아무 목적 없이 고속버스를 타러 가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처럼 죽고자 하는 목적이라도 있어야지.
지하철 카드를 구입해 찍고 들어가는데, 계단을 내려가는 학생 무리들 속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아니겠지. 설마….”
저렇게 키가 크고 모델 같은 남자들은 어디나 많이 있다. 하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걸 어떻게 해. 저 팔 두께도 비슷하단 말이야.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학생 무리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번 꿈이 진짜일까? 어제는 운 좋게 맞았다 치지만 이건 아닐 수 있잖아. 학생이 어떻게 사람을 죽여. 저렇게 사람들이랑 사이에 있는데 설마.’
그 남자 주위에 여자들이 울타리를 두른 듯 멋있게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 한 명에 여자가 한 명, 두 명…다섯 명이라 저것도 가능하구나. 참 부러운 자식이군. 나이도 어린놈이 벌써. 아무튼 부럽다. 아니야. 부럽지 않아. 난 죽을 거니까.’
저 무리는 지하철 12-1 구간에 서 있다가 같이 올라탔다.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손잡이를 잡고 빽빽하게 서 있었는데, 이 사람들조차 힐끗힐끗 저 남자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저렇게 인기 많고 잘생긴 애가 뭐가 아쉬워서 살인을 해. 내가 착각한 거겠지. 집에나 가자.’
나는 다음에서 내려 갈아타려고 비좁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꾸물꾸물 움직이다가 반대편 문에 겨우 도착했다.
“커플은하수 어때? 우리 축제 때 노래 같이 부르자!”
‘뭐?’
나는 하차할 뻔하다가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바로 손잡이 막대를 잡고 밀물과 썰물 같은 인파흐름을 끈질기게 버텼다. 그와 동시에 방금 말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다! 그 여자 얼굴이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노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던!’
“그럴까? 그런데 말이야….”
‘목소리도!’
목소리가 꿈에서와 판박이 었다. 나의 시선은 지하철 유리창을 향하고 있었으나 나의 모든 감각은 그에 반사된 어린 살인자 놈을 향해 있었다.
“응?”
“왜? 말해줘. 내가 대신 부를까?”
“내가 할게.”
“쟤 말고 나는 어때?”
남자의 한마디 말에 다섯 명의 여자들이 죄다 달려들고 있다.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다. 정말 그들이 사는 세계로군. 그런데 저 놈은 뭐가 아쉬워서 살인을 하냐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이번 축제는 우리 노랑이하고만 할래. 우리 노랑이가 내 첫 주제에 딱 맞거든. 또 노랑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알지?”
“아…. 알지. 헤헤.”
노랑이라는 여자는 쑥스러운 듯이 볼이 발그레해지면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뭐야아~ 너희 둘이 진짜 사귀어? 됐어! 이제 여기 탈퇴야!”
“야!!”
남자는 뒤돌아 가려고 하는 여자의 손을 박력 있게 잡으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여자는 남자 품에 안기면서 볼이 발그레해졌다.
‘무슨 청춘영화 찍나. 아오~ 못 봐주겠네.’
“아… 알겠어. 다음에는 나랑 불러야 돼.”
“응응. 흐흐.”
토가 나올 것 같다. 여자들은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애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겉모습은 봐줄 만 한데, 말하는 센스는 삼류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운 것 같다. 아무리 살인자지만 저건 좀 안 되겠네.
“내려, 내려!”
어느새 지하철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대거 내렸다. 나도 덩달아 내리게 됐는데, 지하철역 이름을 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금빛대학교였다. 우리나라에서 1위라는.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노란색 날인가. 꿈에서도 노란색, 대학교도 노란색 비슷한 금빛. 뭐 저 애들도 나보다는 병아리니까 노란색 맞네. 아 그런데 쟤가 살인자면 좀 자존심 상하는데? 내가 나이가 쟤보다는 열 살이나 많을 텐데 부탁을 해야 돼? 하아~ 고민해 보자.’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나의 몸은 이미 본능적으로 저 놈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지금 와서 다른 살인자를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만 내 인생을 해결할 수 있으니 나이가 무슨 상관. 자존심을 버린다.
‘쟤는 살인자고, 나는 곧 죽을 거야. 죽으면 나이 다 상관없어. 이 세상을 뜨는 게 나의 목표! 그걸 도와줄 사람은 지금 쟤뿐이야. 다시 마음을 가다듬자. 쟤는 살인자고, 나는 곧 죽을 거야. 알았지? 다시 한번! 저 어린 노무 시키는 살인자고, 나는 곧 죽을 사람이야. 오케이! 됐어!’
혼자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심각하게 생각정리를 한 뒤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금빛대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20대들의 활기와 생기가 엄청났다. 양쪽에서는 유행하는 가요들이 뒤질세라 뒤섞여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안에서 밖에서 물밀 듯 밀려들었다.
‘크~ 이게 20대의 삶이었지.’
“오세요~ 여기 따뜻한 유자차와 코코아 있어요.”
“환영합니다! 금빛 대학교 겨울 축제에 오신 분들! 모든 공연 후에 추첨을 해서 선물 증정식이 있으니 꼭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이름 써주세요!”
“아! 네네.”
산타 모자를 쓰고 산타 복장을 한 20대 여대생이 나눠주는 작은 종이와 볼펜을 얼떨결에 받았다. 종이 위아래로 숫자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이름을 쓰는 칸이 있었다.
“777번? 주인공….”
“위아래로 다 쓰셨어요? 반을 잘라서 넣어주세요.”
“네네. 요기요.”
“감사합니다. 공연 후에 있는 추첨시간에 꼭 참여해 주세요.”
“네네. 777번? 숫자가 뭐 이리 많대.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내가 죽을 수도 있잖아?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는 죽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흠흠. 뭐 지금 그걸 따지게 생겼어?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일이 먼저지. 그리고 뭐 고독한 것보단 나으니까.”
입구에서부터 운동장 한 바퀴를 뺑 두르는 거리에 과 부스와 동아리 부스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얼추 보이는 곳을 보니, 만화 동아리는 만화캐릭터의 옷을 입고 그림을 그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음식을 파는 부스, 전시하는 부스 등등 여러 종류의 활동들이 있었고 무대에서는 한창 리허설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참 오랜만이네. 나도 대학시절 때는 좋았지. 선후배들이랑 태권도로 무대에서 날아다녔는데.”
여기저기 시선이 이끄는 대로 구경을 하고 있노라니 잠깐 회상에 잠겼더니 앞서갔던 남자와 여자애들을 놓쳤다.
“앗! 어디 간 거야.”
학생들 사이를 헤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도 그 멀대 같이 키 큰 남자애와 경호하는 여자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 혹시 선배님? 이리로 오셔서 저희가 만든 부침개 맛보세요.”
“아! 아닙니다. 그냥 놀러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부침개 말고 소시지 볶음은 어떠세요? 이리로! 호호호~”
나는 멍하니 서서 그들을 찾으려고 둘러보다가 금빛대학교 과잠바를 입고 있는 작고 귀여운 여대생에게 잡혀 끌려왔다.
“손님! 오천 원입니다.”
“오천 원씩이 나요? 앗! 여기 있습니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건데 오천 원이 뭐가 아까워. 이렇게 나에게 권해주는 사람도 없었구먼. 고마운 사람이지 뭐.’
마음은 다 받아들였지만 손이 무거웠는지 돈을 꺼내는데 덜덜 떨렸다. 이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입은 웃고 있는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소시지 볶음은 맛있을 거야.
“윽! 퉤!”
오천 원을 왜 줬을까? 나는 왜 여기에 앉았을까? 케첩과 소시지만 섞어도 맛있을 소시지 볶음에서 왜 이리 쓴맛이 나는 걸까? 그래, 공부만 잘하면 됐지 뭐. 뭐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돼. 요리? 못해도 살아. 요새는 밀키트도 많으니까. 하하하.
나는 인생을 달관한 듯 손님을 모으려고 애쓰는 여대생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 짓다가 나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 같아서 그 뒤에 있는 운동장으로 시선을 바꾸었다.
“손님! 떡볶이도 있는데 드실래요?”
“아~ 제가 밥을 먹고 와서 소시지 볶음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여대생은 실망한 표정으로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는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야~ 우리 손님 너무 없는 거 아냐? 이러다가 재료값이 더 나가겠어.”
“그러게 말이다. 저길 봐라. 사람들이 미여터진다~”
나는 여대생들의 대화를 듣다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정말 그곳 부스는 다른 부스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여자들이 많았다.
“저 혹시 저기가 모델과인가요?”
“비슷하죠. 방송연예과예요.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런데 왜 손님들은 여자가 더 많아요?”
“그야 잘생긴 모델 같은 남자애가 있어서 그렇죠. 이미 에이전시와 계약했다는 소문이.”
“야~ 남자애가 뭐야. 내 남편이야!”
“남편은 개뿔이. 너 걔랑 말 한 번도 섞은 적도 없잖아.”
“SNS에서는 말 걸어봤거든!”
“답장은 왔지?”
“…”
“그것 봐! 안 왔잖아!”
‘잘생긴 모델 같은 남자애? 혹시~’
“저 실례지만 그 모델 같은 남자학생 SNS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혹시 그 어린 살인자 놈인가 싶어 여대생에게 부탁을 했다. 그 여대생은 자신의 스마트폰 SNS를 열어 보여주었는데, 앞모습은 아리송했지만 뒷모습 사진을 보니 확실히 그놈이었다.
“엇! 감사합니다. 소시지 볶음에 아무것도 넣지 마시고 케첩만 넣고 볶으셔도 맛있을 거예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앗! 야! 너 케첩만 넣은 거 아니었어? 뭐 넣었어?”
“그게… 고삼차 가루… 우리는 식품영양과잖아. 이 트랜스지방만 생산하는 소시지를 손님들에게 그냥 먹인다면 우리 과 체면이 뭐가 되겠니!.”
“…”
나는 비록 오천 원을 날렸지만 그래도 정보는 얻었다. 이 넓은 부스를 언제 다 돌며 그 어린 살인자 놈을 찾을까 싶었고, 찾아도 시간이 많이 걸려 찾으면 이미 축제가 끝났거나 그 살인 공간을 벗어났을 수도 있으니 빨리 찾는 게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우와~ 사람들 활기가 엄청 나~ 이게 젊음이지.”
방송연예과 부스에 가니 여기도 지하철에서처럼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 부스는 다른 부스와는 달리 키가 크거나 외모가 돋보이는 학생들이 특이한 패션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진을 찍어주고 이천 원씩 받는 기부존이 있었고, 또 한쪽에는 주스와 과일 먹는 곳, 그 옆에는 ‘선배존’이라고 해서 연예인으로 이름난 선배들의 사진과 경력이 담긴 사진과 종이가 붙어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선배연예인들은 어제 왔는지, 오늘 올 건지 모르겠지만 그 공간조차 구경 온 사람들로 꽉꽉 차 있어서 주스를 파는 방송연예과 부스 끄트머리에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눈알을 굴러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그놈은 없었다. 하지만 아까 그놈 주위에 경호하고 있었던 여자 넷은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네 명의 여대생들도 일반인보다 외적으로 튐에도 불구하고 아까 지하철에서 그 어린 살인자 놈이 비하면 일반인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아~”
또 한숨이 나온다. 어쨌든 그놈은 그놈의 삶을 살고 있으니 뭘 하든 그놈이 책임질 일이고, 나는 나의 삶을 멈추려면 그놈이 꼭 필요했다. 반드시 꼭 그 살인자를 찾아야겠다.
‘생각을 하자. 생각!’
“레몬주스와 참외주스, 음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레몬주스는 들어봤는데 참외주스라는 게 있어?”
“그러게. 신기하다. 그럼 난 참외주스!”
“난 그냥 레몬주스 마실래. 얼마죠?”
그 순간 눈이 번뜩 뜨이면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참외주스? 꿈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꿈에서 누군가가 ‘재료는 레몬, 참외? 참외주스가 있냐? 나는 처음 들어보는데.’라고 했었다. 그럼 이 근처란 말인가?
그래서 대략 십분 간을 서서 주스를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꿈에서와 똑같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자!’
어쨌든 이곳에 없다면 여기에 있어도 소용이 없다.
“앗! 잠시!”
나는 방송연예과 부스를 떠나기 전에 아까 그 네 명의 경호원 같은 여대생들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사진 찍으시겠어요? 이천 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혹시 키가 크고 머리가 어깨 정도까지 길고 얼굴이 하얗고…”
“네?”
“앗! 그러니까 흡혈귀 같이 생긴 키 큰 남학생은 어디 갔나요?”
나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SNS에서 본 앞모습을 최대한 떠올려 말했다.
“아아~~ 이아율이요? 무대 리허설하러 간다고 노랑이랑 갔어요.”
이아율. 그 어린 살인자 놈 이름이 이아율이란다. 이아율이라는 말이 퍼지자마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굉장히 핫한 모델지망생인가 보다. 민망해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자리를 떴다.
‘무대 리허설이면 무대 대기실?’
학교 건물 중앙에 달려있는 시계를 보니 시간이 한창 지나 있었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갔다. 마음이 급해져서 뛰기 시작했다.
방송연예과 부스와 정반대에 있는 무대는 운동장 북쪽 끝에 있었다. 사람들과 부딪칠까 조심하며 여차저차 뛰어서 무대에 도착했다. 무대에는 한창 무용과가 리허설 중이었다.
“대기실이다! 헉헉!”
나는 무대의 양쪽을 둘러보았다. 대기실은 없고 무대 장치를 제어하는 담당자들이 천막 아래 앉아서 일하고 있었고, 기껏해야 무대 뒤쪽에는 천막을 쳐놓고 물을 마시는 작은 휴식공간이 있었다.
“없어! 어디지? 하아~ 어떻게 하지?”
갑자기 장애물에 막힌 느낌이었다. 해가 점점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이미 꿈속의 상황이 종료되었을 수도 있다. 나의 마지막 남은 희망도 여기서 끝인가? 아니야. 학교 건물 안에 있을 수도 있잖아.
나는 무대와 가까운 학교 건물에 들어가려고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문은 잠겨있었고, 그 앞에는 ‘강의실건물은 주말마다 폐쇄합니다’라고 종이가 붙여있었다.
더 이상 가볼 곳이 없어 보였다.
“꿈은 그냥 꿈인 것 같아. 이번 꿈은 잘못된 거겠지. 저번 꿈만 운 좋게 맞은 거야. 꿈만 믿고 여기까지 온 내가 바보멍청이다. 아까 이아율이라는 애도 내가 착각한 건지 몰라. 아휴. 시간이 별로 없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집에나 가자.”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몸 밖으로 배출하며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야 입구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여기는 음악동아리입니다. 신청하시면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드려요.”
“스트레스를 싹 풀어버리세요. 단돈 만원만 내시면 그릇 30개를 던지실 수 있습니다.”
“잠깐 비켜주세요. 무대 스피커 지나갑니다.”
“눈은 없지만 눈사람을 만들어드립니다. 엘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올라프가 되고 싶으신가요?”
“야! 현수막 이리로 붙이라고. 좀 더 이쪽으로.”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딱 저 소리였다. 여러 소리들 가운데 방금 들은 소리가 꿈에서 들린 소리 중에 하나였다.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나도 모르게 바라보았는데, 운동장 서쪽이었다. 목청이 큰 남자대학생들이 현수막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재료는 레몬, 참외? 참외주스가 있냐? 나는 처음 들어보는데.”
“맛있는 건 둘째 치고, 눈이 즐겁대잖아. 얼른 가보자.”
“이아율 있대? 전화해 봐.”
“잠시만~ 음… 없대. 리허설하러 갔대.”
“그럼 리허설 보러 가자.”
“좋소이다~”
현수막 설치 앞에 서 있다가 등 뒤로 지나가는 여대생 둘의 대화에 깜짝 놀랐다. 바로 뒤를 돌아 그 여대생들을 따라갔다. 다시 무대 앞이었다.
“다음 팀 리허설 준비하세요.”
“다음 팀 리허설 준비하세요! 커플은하수팀!”
“부르는 데 왜 안 나와?”
“몰라~ 뭐지?”
스텝은 리허설 팀들을 둘러보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도 걸어보다가 입술을 중앙으로 모으면서 큰 소리를 쳤다.
“커플은하수팀은 리허설 맨 끝으로 밀립니다, 다음 댄스위드패션쇼팀 올라오세요!”
여기다. 이 스텝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이 세 명의 소리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아율, 이 어린 살인자 놈은 대체 어디 있지? 무대 뒤편 강의실은 폐쇄 중이고.
“앗, 혹시?”
나는 계단을 두세 걸음 만에 뛰어 올라가 강의실 건물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뒤쪽으로 향했다.
“헙! 이럴 수가! 신이시여!”
보일러실 같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저기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컨테이너 박스를 살폈다. 입구가 하나 있었다.
‘그래! 정면승부다! 아니야. 정면 부탁이지!’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천천히 컨테이너박스를 향해 다가갔다. 문 앞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붙어있었다. 손잡이를 살며시 잡았다. 떨린다. 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평생 나오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희망이 여기 있다. 조심스레 문을 연다. 조금씩 천천히 문이 열린다.
“흐흐흐~ 이번에는 성공? 아니,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굴러들어 온 애를 나가라고 할 수 없잖아? 흐흐흐~ 내 인기란! 넌 어떻게 생각해?”
“응! 나는 네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해! 하하하~ 안녕?”
대기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20대 살인자 놈의 옆모습과 이미 숨을 거둔 것 같은 노랑이라는 여자의 옆모습이었다. 나는 너무 설레서 대답을 해버렸다.
노란 페인트를 노랑이라는 여자의 얼굴과 옷에 바르고 있었던 어린 살인자 놈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는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누구야? 어떻게 들어왔어?”
“난 주인공! 넌 이아율 맞지? 어떻게 들어오긴. 여기 문으로 들어왔지. 너무 기쁘다. 만나서 반가워!”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써져 있었을 텐데. 학교 직원인가?”
“그건 아니고, 흠. 말하자면 좀 사연이 있어. 그런데 너 지금 이 여자 죽인 거야?”
남자는 나를 째려보다가 내가 아무런 제스처를 하지 않고 묻기만 하자 경계를 풀었는지 다시 붓을 페인트통에 넣고 일어서서 팔짱을 꼈다.
“용건이 뭐지? 이렇게 묻는다는 건 나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일 텐데?”
“오~ 금빛대학생이라 눈치가 빨라.”
“시간 없어. 얼른 말하고 꺼져.”
“그럴게. 너 연쇄살인범이야?”
“그게 왜 궁금하지?”
“그래야 내가 본론을 말할 수 있거든. 경찰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연쇄는 아니지만 그럴 예정이지. 훗.”
남자는 먼 산을 바라보듯 닫힌 대기실 문을 바라봤다.
“좋아. 그럼 통과. 날 도와줄 수 있어?”
“내가 왜? 싫은데? 꺼지기나 해.”
어린 살인자 놈은 나의 진심 어린 말에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싫증 내 하는 것 같았다. 설렘에 차 있다가 이 예의 없고 싹수없는 어린 살인자 놈의 말투에 열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오늘부로 나는 기분파라는 걸 인정한다. 곧장 살인자 놈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동생! 좋은 말할 때, 나 좀 죽여줄래? 엉?”
“켁켁. 뭐? 죽… 죽여 달라고? 이것 좀 놓고 얘기해.”
“그래. 지금도 좋고! 오늘 안으로!”
“난 또 무슨 말이라고. 좋아. 먼저 얘 좀 처리하고. 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마. 아주 즐거운 시간이란 말이야.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다고. 이 노랑이를 꾀는데 일 년이 걸렸어.”
살인자 놈은 노란색 페인트가 잔뜩 묻은 붓을 통에서 꺼내 다시 노랑이라는 여자의 팔에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죽여준다는 말에 마음이 차분해져서 이 어린 살인자 놈 옆에 쭈그려 앉았다.
“방금은 미안.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넌 키도 크고 잘생기고 게다가 머리도 똑똑한 놈이 뭐가 아쉬워서 살인을 해? 이미 연예인이구만. 널 보러 사람들도 엄청 많이 와. 게다가 금빛대학교 다닐 정도면 집안도 잘 살 것 같은데 왜? 주위에 여자들도 따르고 말이야.”
“풉.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남자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가 이 남자애라면 죽을 생각하지 않고 아주 잘 살았을 것 같다. 얼굴도 잘생겨서 면접 프리패스상이고, 어딜 가든 다 호의적일 테고, 조금만 노력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거다. 머리도 똑똑하니 뭘 하든 이 세상에서 가장 여유롭고 쉽게 살 수 있는데 왜 살인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도무지 가지 않았다.
“…”
“일반시민은 이래서 문제야.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난 말이야. 돈이 없어도 너처럼 외모나 키가 중간이었어도, 여자가 없어도 살인은 했을 거야.”
“그러니까 왜? 왜!”
“아오~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니까. 이제 말 시키지 마!”
“…”
그렇다. 프로파일 심리퀴즈쇼에서 프로파일러 권이용 교수가 말한 선천적 살인자가 내 눈앞에 있었다.
“노랑아! 내가 좀 잘생겼지? 우리 집도 부자고, 난 미래가 창창한 모델지망생이야. 나 좀 봐. 완전 옷걸이나 옷이나 다 명품. 그에 비해 너는 좀 아니지 않니? 그런데도 내가 널 받아주는 이유는 네가 내 취미를 이해하기 때문이야. 나 어디서 고맙다는 말 잘 안 하는데 참 고마워.”
“…”
“우리 커플티야! 노란색 방에 노란 커플티. 그리고 너는 노란 살결을 가진 여대생. 내 SNS에 올려야겠어. 내 팔로워 수 얼만지 알지? 너도 곧 스타가 되는 거야! 나도 노랑, 너도 진짜 노랑.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
남자는 마치 인형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처럼 놀고 있었다.
‘이 자식 변태 아니야? 변태살인자. 이 어린 노무 시가. 그런데 나도 노란색으로 칠하려나? 이건 좀 난감한데. 뭐 그래도 죽이고 나서 칠하는 거는 괜찮아.’
“커플은하수팀! 커플은하수팀! 여기 있었네. 준비 안 하고 뭐해요! 아니, 지금 이게 뭐야. 꺅!”
“앗! 이런! 이런!”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붓을 팽개치고 들어온 여자를 재빨리 붙잡아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여자의 팔을 제압했다.
“흡읍!!”
스텝으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의 손에 잡혀 몸서리를 치며 남자를 쳐다보자 살인자 놈은 노란색으로 염색된 자신의 머리칼을 쓰윽 넘긴다.
“너도 날 좋아해?”
“미친!!!!”
나도 모르게 피아노 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리 잘생겨도 저 변태 같은 표정에 저 말은 좀 토가 나온다.
“뭐?”
“앗, 아니. 내가 그다음이니까 이 분은 풀어줘. 나가서 아무 말도 안 할 거죠?”
“읍읍”
스텝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안 한대. 얼른 풀어주고 나를 죽여.”
“내가 바보야? 지금 풀어주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잘됐다. 노랑 쌍둥이로 가면 되겠네. 너도 이 옆에 앉아.”
남자는 스텝을 강제로 노랑이 옆에 앉쳤다.
“이 어린 노무 시키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나. 나 급하다고!”
“뭐? 너 나한테 부탁하지 않았어? 엉? 조용히 하고 구석에 처 박혀 있어. 넌 세 번째야.”
“뭐 세 번째? 아까 얘 다음이라며! 이 자식이 거짓말을 쳐? 또박또박 반말로 하질 않나, 예의란 없냐? 살인자면 다야?”
나의 기분이 발동되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인자 놈의 멱살을 다시금 덥석 잡았다.
“이거 못 놔? 너 아까 부탁 취소야. 엉?”
“내가 웬만하면 사람 멱살 두 번은 안 잡는데, 너는 예외야. 저번에 그 아저씨는 살인자였어도 예의가 얼마나 넘쳤다고. 너 같은 놈이 사람들이랑 같이 살려면 예의와 존중은 필수인 거 몰라?”
“모른다! 아오!”
“뭐라고?”
어린 살인자 놈은 나에게 잡힌 상태로 내 배에 니킥을 날렸다. 몰려오는 아픔에 살인자 놈을 잡은 손을 놓아버릴 뻔했지만, 오기와 끈기로 똘똘 뭉친 나는 살인자 놈의 싸다구를 향해 손바닥을 세게 날렸다.
“윽!”
갑자기 살인자 놈이 축 늘어졌다.
“야! 정신 차려! 야! 죽었나? 아니겠지? 내가 살인자야? 안 돼!”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에요. 배가 움직이는 거 보니 숨은 쉬고 있어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제가 신고할게요.”
“어? 네네. 네?”
스텝은 무서웠을 텐데도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컨테이너를 나가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는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나가 대학교 입구까지 튀었다. 그와 동시에 대학교 입구에서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대학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멀리서 지켜보니, 무대가 있는 건물 뒤쪽으로 경찰들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휴~ 일단 피해서 다행이긴 한데, 내가 너무했나? 그냥 기다릴 걸 그랬나? 아니야. 역시 경력직이 아닌 어린놈에게 내 목숨을 맡기기란 위험했지. 괜히 꿈 따라 가 가지고 이게 무슨 난리야. 배만 고프잖아! 집에 가서 삼각김밥이나 먹자. 아 그런데 배가 좀 아파. 윽~”
“여기요. 여기 저를 죽이려던 놈이 있어요!”
“이 남학생 말입니까? 아니! 여학생은! 학생! 학생!”
“읍읍! 흑흑흑~”
경찰관들은 스텝의 말에 컨테이너에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온통 노란 페인트로 칠해진 한 여대생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얼른 그 여대생의 입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뗐다.
“괜찮아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엉엉엉.”
눈물이 얼굴에 묻어 있는 노란 페인트를 지워 살색이 드러났다.
“으음. 오늘은 나의 첫 시작, 노랑이. 노랑아~”
“당신을 살인미수로 체포합니다.”
“윽~ 뭐야!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축제를 즐기러 왔던 대학생들은 즐기기는커녕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이 사태를 보려고 건물 뒤편으로 몰려들었다.
“헉. 그 방송연예과에 킹카 있었잖아. 곧 연예인으로 데뷔한다던.”
“왜? 걔가 왜?”
“그놈이 노란색 변태였는지 대기실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놓고, 자기 여자친구도 노란색으로 칠해서 죽이려고 했대.”
“미친놈.”
“그런데 거기 천사가 있었다더라.”
“웬 천사?”
“777번 주인공이라고 추첨용지가 떨어져 있었는데, 스텝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이 용감하게 그놈 멱살을 잡고 싸다구를 날려서 구해줬다나 뭐래나.”
“번호도 행운의 번호고 이름도 주인공이라니. 진짜 영화 같다.”
“그렇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냥 믿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