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5. 58세 삼촌! 나 좀 죽여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by 이야기소녀

5. 58세 삼촌! 나 좀 죽여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큰일이다. 벌써 일요일이다. 어제 그 어린 살인자 놈을 상대하는 바람에 피곤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잠에 든 모양이었다.

잠이 깨서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을 보니 오후 1시였다. 몇 시간이나 잔 거야? 17시간이나 잤네. 어이가 없다.


“응? 여기는 어디?”


그런데 이럴 수가! 애증의 월세방은 어디 갔지, 내 집이 아니었다. 내 옷도 아니었다. 내 몸뚱이는 침대에 눕혀져 있었는데, 이런! 병원 침대였다.


“으윽! 아파!”


일어나려고 하니 배에 통증이 전신으로 퍼졌다. 아까, 아니지, 어제보다 더 아픈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 분홍색 문이 매끄럽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떤 아저씨였다.


“일어났어요? 우리 병원 앞에 쓰러져 있기에 내가 데리고 들어왔어요. 최근에 치료받았던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 부분이 조금 터져서 치료하고 다시 꿰맸어요.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다가 괜찮아지면 언제든 가도 돼요.”


“네? 제가 쓰러졌다고요? 말도 안 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윽~”


“하하하. 배고플 테니 환자식을 가져다줄게요. 일어나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어요. 나는 그럼 이만~”


대머리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다시 문을 닫고 나가셨다.


“의사인가? 갈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계셔서 그냥 아저씨인 줄 알았네. 나 같은 걸 구해주셨다니 감사하다. 병원비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세상에 착한 의사도 있구나.”


천장을 가만히 올려보다가 통증 때문인지 감동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찔끔 났다.


“아프긴 엄청 아프네. 어제 그 어린 살인자 놈 때문에 그런 거야. 아오~ 그 노무시키. 그나저나 오늘이 그럼 일요일이라는 소린데, 으악! 안 돼! 벌써. 이러고 있을 여유가 없어! 으윽!”


마음이 조급해졌다. 살인자를 찾아야 하는데. 내리 연속 실패했으니, 오늘은 꼭 찾아야 했다. 그래야 화요일까지 성공을 하지.

나는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을 켰다.


“‘미래가 창창했던 잘생긴 대학생, 살인미수?’ 혹시 어제 그놈? ‘여대생에게 새긴 육각형?’ 진짜 하다 하다 별 걸 다한다. 어제 노랑이라는 여대생에게 육각형 모양이 있었나?”


온몸이 다 노란색이어서 육각형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할 일 바빠 죽겠는데 언제 그거까지 봐? 그나저나 이 여대생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서 다행이네. 어린 노무 시키는 완전 사이코패스던데 나이 어리다고 봐주면 나중에 큰일 날지도. 판결 내리시는 분들, 제발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자~ 환자식 나왔습니다. 침대 매트를 당겨줄 테니까 아프면 말해요!”


“앗! 네네! 감사합니다. 아까 그 아저씨… 아니, 의사 선생님은요?”


꼬불거리는 파마머리에 꽃무늬 코트를 걸치신 아주머니께서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오셨다. 매트의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 고리를 잡아 돌리시면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셨다.


“아~ 원장님이요? 응급환자가 들어오셔서 급히 진료실로 가셨어요. 다 먹으면 식판은 바깥 복도에 있는 급식차에 넣으시면 돼요. 그럼 이만!”


“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요즘은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졌나 보다. 쓰러졌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병원비 공짜에, 밥도 공짜로 주시다니. 혹시 나중에 달라는 거 아니시겠지? 일단은 배고프니까 먹자.


“불고기와 김치야! 오랜만이다. 쩝쩝.”


라면과 삼각김밥만 먹다가 이런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다시 꿰맸는지도 모르게 음식을 맛있게 흡입하다 보니 어느새 순식간에 소중했던 점심밥이 사라졌다.


“더 먹고 싶다.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지. 그만해! 그만! 그러다가 돈 달라고 하시면 방법이 없잖아!”


‘아냐!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랑 아주머니의 인상이 좋아 보이시던데,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면 밥을 더 주실 수도 있어!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랑 김치랑!’


“안 돼! 넌 양심도 없니? 지금 병원비가 얼마야! 그것도 공짜로 해주셨어! 넌 사람이지 짐승이 아냐!”


‘사람이라도 배고플 수 있고 더 달라고 할 수 있지! 짐승만 본능에 충실해? 너 어차피 죽을 거잖아. 그럼 더 달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냐?’




‘드르럭~’


식판을 든 나는 편안하게 웃으며 병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앞에 급식차가 있었지만 못 본 듯 지나쳐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지? 생각을 해보자~”


복도를 보니, 대학병원은 아니었다. 복도 크기가 그리 크지 않고 병실도 한 층에 세 개 정도밖에 없는 걸로 보아서는 개인병원 같았다. 대부분 개인병원에 식당은 잘 없던데, 아무래도 환자들이 많아서 입원을 주로 하는 병원이거나 병원장의 개인취향인 이유로 식당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개인병원에 식당이 있으려면 보통 위층에 있던데. 아래층은 약국이나 진료실이나 병실로 써야 하니까. 역시 나의 추리란~ 으윽~ 이제 조금 아프네. 괜찮아! 다시 밥을 먹으면 통증은 사라질 거야! 하하하~ 으윽~”


엘리베이터는 병실 바로 오른편에 있어서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층 버튼을 살펴보니 7층까지 있었다. 현재 층은 4층이었다.


“음… 7층은 옥상일 수 있고 아니면 원장님의 개인적인 공간일 수 있으니까 6층?”


6층을 눌렀다. 금세 올라갔다.


‘6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내리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지? 고장 났나?”


열림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열리지 않았다. 노란색 종 모양의 버튼이 있기에 누르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갑자기 전깃불도 정전이 되었다.


“뭐야아아~ 무섭게~ 열려라! 열려라! 여기 사람 있어요! 사람이 갇혔어요! 도와주세요! 윽~”


왠지 모를 오싹한 느낌에 순간적으로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붙였다.


‘지지직~’


마이크 소리가 나는 듯했다.


“저기요! 저기요!”


“헉! 갇히셨군요. 금방 가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방송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이렇게 있으려니까 무섭다. 조금만 기다리면 열릴 거야. 그런데 이거 추락사하는 거 아니겠지? 요새는 엘리베이터 연결을 잘해놔서 줄 하나만 끊어져도 다른 곳 두 곳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괜찮다 그랬어. 뭐 추락사해도 고통만 없으면 괜찮긴 한데. 아! 제발! 이런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


다행히 5분도 채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 밖에서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낑낑대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돌리는 소리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서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싸한 느낌이 내 등을 훑고 지나간 것 같았다. 순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식칼이 내 등 위의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식판으로 식칼의 다음 경로를 대비해 앞으로 막았다.


“윽캬캬캬~ 잘도 피하는 청년이고만. 윽캬캬캬~”


“윽~”


태권도의 감이 남아있었는지 앞으로 내민 식판 중앙에 식칼이 단단히 꽂혔다. 그 힘에 진동이 배의 상처부근으로 전해져 통증이 느껴져 버티질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나는 이상하게 웃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숙하시는 분처럼 낡은 옷을 입고, 배가 불룩 나온 대머리 아저씨였다. 어디서 많이 본.


“애앵? 의사 선생님?”


“오랜만에 피 맛 좀 느껴보려고 했더니만. 에잇! 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윽캬캬캬~”


노숙자 아저씨는 식판에 있는 식칼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소처럼 돌진해 오는 아저씨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낮은 포복으로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식칼이 꽂힌 식판을 날쌔게 복도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 등 위를 덮쳤고 동시에 식칼이 바닥에 닿으며 ‘쨍’하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퍼졌다.


“거기 사람 있어요? 오늘 일요일이라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여성의 소리가 들리자 아저씨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금세 일어나 식칼을 주워 들고 반대쪽 복도로 도망가 버렸다.

어차피 가봤자 병원 안이 넓지 않으니 잡으려고 일어나려 했다.


“으윽~”


하지만 통증에 아픔이 밀려와서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는 바를 잡고 천천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라 뒤쫓지 못했다.


“어머! 엘리베이터 또 고장 났어요? 이거 식판은 왜 이래요?”


아까 나에게 밥을 가져다준 아주머니셨다.


“아주머니!!!!!”


“아까 그 환자분! 무슨 일이에요?”


“저 그게….”


나는 배고파서 올라왔다가 식칼을 든 노숙자 차림을 한 대머리 아저씨,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을 봤다고 했다.


“네에? 의사 선생님이요? 그럴 리가요. 제가 여기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병원 안을 그렇게 다니시진 않아요. 보는 눈들이 많아서. 잘못 보셨겠죠.”


거짓말이다. 아주머니는 내 눈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말에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직감이 매번 맞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심각한 일을 겪고 난 뒤는 예민함이 초절정이라 대부분 맞다.

아주머니도 한 패일까? 밥을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얼른 수습해야지.


“아… 제가 잘못 봤나 봐요. 하하하. 아파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요. 청년. 병원이 답답해서 그럴 수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의 맨 하단 부분의 뚜껑을 열고 열쇠모양의 버튼을 눌러주셨다. 그러니 바로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했고,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가는 4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자마자 어리숙하게 웃고 있던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어차피 등 뒤에 CCTV가 있어서 표정은 잡히지 않을 터였다. 또 4층에서 멈추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얼른 이 병원을 나가야겠어. 음… 응?”


병실에 들어가 옷장에 있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열었으나 다시 다소곳이 닫았다. 방금 전 상황에 다소 무섭고 엽기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턱을 손에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아까 그 아저씨가 뭐라고 했었지? '오랜만에 피 맛 좀 느껴보려고 했더니만.‘이라고 했어. 오랜만에 피 맛? 식칼을 쓰는 것도 보통 사람이면 그러지 못하지. 혹시 경력직 살인자? 오호라~’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의사 선생님이 노숙자 변장을 하고 나를 죽이려고 하셨던 건가 봐. 살인을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참고 참다가 '아무나 걸려라' 하고 이 일을 벌인 거지. 정말 절호의 기회야! 꿈도 안 꿨는데 운수 좋은 날도 있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내 병실에 올지 안 올진 모르겠다. 아까 그러고 나서 온다면 정말 돌아이 아닐까. 오셔도 4층 전체가 병실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살인을 벌이지 못하실 것이다. 그럼 내가 대령하는 수밖에.

나는 다시 6층에 가려고 문을 열어젖혔다.


“악!”


“엇! 아직 안 가고 있었네요? 병실체크 중이라서요.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소름이 돋았다. 노숙자 차림은 온데간데없고 갈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채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대머리 아저씨였다.


‘날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이렇게 놀려서 다시 올라오게 하려고? 그럼 받아주지~’


“아~ 죄송하지만 아파서 오늘만 좀 신세 져도 될까요? 제가 내일 새벽이라도 꼭 나가겠습니다.”


“그러셨군요. 괜찮습니다. 체크만 하는 거라서 나가라고 독촉하는 게 아니에요. 하하하. 편하게 계세요! 그럼 이만!”


‘그러고 보니 ’그럼 이만?‘ 아주머니랑 똑같은 말투잖아? 한패가 맞아! 주인공 움직여!’


나는 닫힌 문을 조용히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대머리 아저씨가 어디로 갔는지 동태를 살폈다. 왼쪽으로 가시면서 똑같이 병실 문을 열고 체크하고 계셨다. 그리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러 오시는 것 같아 급히 문을 닫았다.

병실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닫히는 소리가 들려서 몇 층으로 올라갔는지 알기 위해 문을 재빨리 열었다. 층수 간판을 보니, 7층이었다.


‘7층이면 옥상일까? 개인 공간일까? 개인 공간이면 살인하는 공간?’


“흡~~~ 푸움~”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이 환자복보다는 내 옷을 입는 게 맞는 것 같아 갈아입었다. 바로 7층으로 가려고 하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니 햇빛이 쨍쨍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갈까? 시간도 너무 이르고, 저녁 시간이 좋을 것 같아. 입원한 환자들이 있으니 너무 소란 피지 않는 게 좋겠어~”


‘무슨 소리! 뭐 하고 있어? 얼른 가서 죽여 달라고 해. 언제 마음 변해서 없던 일이라고 할지도 몰라.’


“그래도 아래에서 소리가 다 들릴지도 몰라. 아무리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적어도 비명소리는 나지 않겠어?”


‘그러다가 대머리 아저씨가 퇴근해 버리면 어떻게 할래?’


나는 곧장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7층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내 내면이 똑똑한 건지, 악마가 장악을 한 건지 헷갈리지만 맞는 말만 해대서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7층입니다.’


문이 열렸다. 7층에 내려 왼쪽, 오른쪽을 둘러보니 4층의 분홍색 복도가 있는 병실과 같이 복도 전체가 분홍색이었다. 오른쪽에는 원장실 문 하나와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문 하나가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원장실 앞에 섰다.


‘똑똑똑’


“누구세요?”


“아~ 저 치료받았던, 그러니까 병원 앞에 쓰러져있던 청년이요!”


“아아! 앗! 네? 네.”


분홍색 문고리를 잡았다. 나도 모르게 조금 땀이 났다. 식은땀이겠지. 대머리 아저씨가 나의 기척에 버벅거린 이유는 아마 살인무기를 챙기려고 그랬던 거겠지. 그 앞에서 식칼을 바로 날릴지도 모른다. 내 본능아, 절대 반응하지 말아라. 그냥 운명을 받아들여.


‘타악~’


“오셨어요? 무슨 일이세요?”


“…”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펼쳐진 광경은 참 기이했다. 원장실 전체가 분홍색이었고 벽면에는 빈틈없이 진열된 피규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 숨기려다가 못 숨긴 등신대가 하나 있었는데, 살짝 보니 만화그림이었다.

그랬다. 대머리 의사 선생님은 오타쿠였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작은 소년 인형이 놓여 있었다.


‘이 아저씨가 아까 그 아저씨 맞아? 정말 내 눈이 잘못된 걸까?’


“하하하. 무…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앗! 갑자기 와서 죄송합니다. 감사인사 전하려고요. 그리고….”


“그리고요?”


“여쭤볼 것도 있고요.”


“아~ 네네! 말씀하세요.”


대머리 의사 선생님은 턱에 꽃받침을 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그래. 저 순수한 눈빛이 아까 그 눈빛과는 다르지. 웃음소리도 다르고. 일단 물어나 보자.’


그래서 아까 점심을 먹고 6층에 갔을 때 노숙자 차림의 선생님과 닮은 사람을 봤다고 했다.


“네? 저랑 닮은 사람이요?”


“네.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는데, 너무 생생해서요. 아니면 엘리베이터에 있는 CCTV를 돌려보셔도 되고요.”


“음… 그 사람은 말이죠.”


“아세요? 아시면 저 좀 만나게…”


“제 쌍둥이 동생이에요. 저인 줄 착각하신 게 당연합니다. 배 나온 것도 똑같을 테니 말이죠. 동생이 20대 후반에 사업으로 승승장구를 했어요. 제 학비도 다 대주고 집안을 일으키다가 IMF로 한순간에 망해버렸죠. 이휴~”


“아~ 그러셨군요.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


“그래서 제가 의사가 된 이후로 동생을 데리고 살고 있는데, 가끔씩 가출해서 들어오질 않더라고요.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피해당하신 분들에게 항상 사죄드렸는데, 이 병원에서까지 그랬다니요. 저에게는 얼굴도 비추지 않았으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휴~ 오늘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동생이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제가 동생을 만나게 되면 단단히 혼내겠습니다.”


“아~ 그게 아니라 혹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싶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대신 뭐라고 할 테니 노여움 푸시고요.”


“그게 아니라요. 한번 만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할 말이 있어서요.”


“경찰에 신고하시려고 그러시는 거죠? 제가 구해드렸었잖아요. 그대로 뒀으면 통증이 악화돼서 끙끙 앓다가 합병증으로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러지 마시고 한번 봐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발요!”


대머리 의사 선생님과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아무리 오해를 풀려고 해도 듣질 않으시는 것 같았다.


‘하아! 저 의사 선생님, 울려고 하시는 것 같아. 눈물이 고였어. 그냥 포기하고 다른 살인자를 찾자. 계속 이러다간 우실 것 같아.’


“죄송해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그저 만나서 부탁 좀 드리려고 그랬던 거였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절 구해주셨는데 자꾸 곤란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갈게요! 베풀어주신 호의는 감사합니다!”


대머리 의사 선생님은 기쁨의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병실은 언제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편히 있다가 가세요.”


나는 서둘러 원장실을 나와 버렸다. 괜히 미안함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지만 이런 착한 분이 계시는데, 더 이상 캐는 건 안 될 말이지. 날 구해주셨는데 곤란하게 해드리지 말자.’


옷도 갈아입었겠다 이대로 바로 집에 갈 결심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내 몸이 강력한 힘에 의해 뒤로 당겨져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으아악~ 뭐야!”


“뭐긴 뭐야. 나지. 윽캬캬캬.”


사방이 온통 까맸다. 방금 전까지 밝은 7층 복도였는데, 한순간에 까맣게 되었을까? 어디로 끌려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어깻죽지가 약간 아렸다. 배에 통증도 느껴졌다.


“윽~”


“윽캬캬캬~ 아까 못한 걸마저 해야지?”


어쨌든 잘 됐다. 여기가 나의 마지막이구나.

나는 그냥 누워버렸다. 식칼을 들고 있을 테니 내가 잘 맞기만 하면 된다.


“좋아요! 그런데 잘 보이지 않으니까 불 좀 켜주세요. 다른 곳 맞으면 아저씨는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저도 아프고 둘 다 안 좋잖아요. 네?”


“윽캬? 생각해 보니 그렇네?”


불이 환히 켜졌다. 그런데 이곳은 아까 원장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새빨간 색이 온 벽을 휘감고 있었다. 방 안에는 빨간색의 침대 하나, 빨간 커튼, 빨간 탁자와 의자, 그리고 한쪽 벽에는 빨간 피를 머금고 있는 드라큘라가 그려진 큰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의사 선생님을 닮은 의사 선생님의 동생이라는 노숙자 대머리 아저씨는 내 예측대로 식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한 바퀴는 돈 것 같아 긴장되고 불편했지만 이 사람이 나의 숨을 곧 끊어줄 거라는 생각에 친근감을 가지기로 했다.


“아저씨! 불을 켜주셔서 감사해요. 아까 원장님, 그러니까 아저씨의 형님께서 어제 저를 구해주셔서 치료해 주시고 밥도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저씨께서 형님의 동생 분이신 걸 알았더라면 아까 뵀을 때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나는 누운 상태에서 최대한 예의 있게 말을 건넸다.


“으캬? 무슨 수작이지?”


“그게 심장이 왼쪽인 거 아시죠? 한 번에 부탁드립니다. 살인 한두 번 해보신 건 아니실 거고, 형님이 의사시니까 잘 아실 거라 믿어요. 살인할 때 고통을 즐기는 살인자가 있다던데, 그쪽이라면 저의 숨을 끊고 나서 즐기셔도 되고요. 이것만은 들어주세요. 네?”


그런데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다하고 편안하게 누워있는데, 노숙자 아저씨는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아저씨?”


“…”


“저기요!”


갑자기 노숙자 아저씨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 이렇게 믿어주는 사람은 처음이야. 엉엉.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았어. 내 형조차 날 감금했다고. 그래서 이제 막 살기로 작정했는데, 네가 날 믿어주면 어떻게 해. 엉엉엉.”


“…”


한 방에 죽여 달라고 부탁한 건데, 이게 믿어주는 거라니. 어이가 없었다.


“저 아저씨, 아니 삼촌! 울지 마시고요. 그동안 힘들게 사신 건 알겠지만 지금 와서 경력을 단절시킬 순 없잖아요. 아까 그 광기 어디 갔어요~”


나는 윗몸을 일으켜 아저씨의 등을 토닥여줬다. 어린아이 같이 엉엉 우는 노숙자 아저씨를 보며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야! 울지 마!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형! 또 왜 그래~ 엉엉. 혼내지 마~”


“내가 널 돌봐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는데, 그런 옷이나 입고 다니고, 뭐? 지금은 이렇게 믿어주는 사람조차 처음이라고? 내 형조차 날 감금했다고? 너를 살려둔 내가 잘못이다.”


“형! 형! 잘못했어! 형! 미안해! 형! 때리지 마~ 형!”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갑자기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건 아저씨의 목소리와 표정이 순간순간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목소리의 톤이나 높낮이, 온화한 표정에서 사악한 표정, 또 의기소침한 표정까지 경극처럼 쉴 틈이 없었다. 나는 급히 커튼 쪽 구석으로 후면주차를 하듯 엉덩이와 팔을 이용해서 뒷걸음질 쳤다.

아저씨는 손에 식칼을 든 채로 마치 1인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대학로로 진출하셔도 될 것 같았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두 명의 영혼이 아저씨의 몸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는데, 이상한 건 이 정도 목소리 크기라면 옆 원장실에서 들었을 텐데 아직도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앗!”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저 아저씨는 쌍둥이가 아니다. 이제 알다니. 껴들면 언제 식칼에 맞을지 몰라 좀 난감했지만 일단은 저 싸움을 끝내야 했다.


“저 삼촌 아니, 삼촌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는 범인이 누군지 알겠네요.”


“뭐? 널 살려두는 게 아니었어!”


“형! 진정해! 저 청년은 착해. 그냥 살려주자.”


“넌 가만히 있지 못해? 너부터!”


“잠깐!!!!!!”


식칼이 아저씨의 왼손, 오른손에서 묘기를 하듯 왔다 갔다 했다. 스스로의 손을 찌를까 봐 아슬아슬해 보였다.


“삼촌들, 아니지, 삼촌! 훗. 딱 보아하니, 형이 동생을 죽였죠? 지금은 이 몸이 동생 몸이 아니라 형 한 명이잖아요. 그렇죠?”


“…”


아저씨의 몸이 움찔하며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냐는 반응 같았다.


“삼촌, 나 좀 죽여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이 사실을 퍼뜨리잖아요? 그럼 이 병원 폭삭 망해요. 아까 들어보니 IMF를 겪으면서 동생분이 망하셨다고 했는데, 형님도 망하고 싶으세요? 그러면 그러시던 가요~”


나는 침대를 잡고 일어나 태연하게 굴었다. 언제든 나를 찌를 수 있게 아주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이다.


“저 자식이! 나를 감히 협박해?”


드디어 때가 왔다. 충분히 기분이 나쁘셨는지, 식칼을 제대로 고쳐 잡고 문 앞에 다다른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눈을 감고 팔을 양쪽으로 펼쳤다.


‘제대로 심장을 찔러 주세요~ 감사해요. 우연히 만난 살인자님!’


“으악!”


내 몸은 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누군가 내 등을 붙잡고 당겼기 때문이었다. 누구야 또!


“내 남편의 원수!”


“아주머니?”


아까 나에게 밥을 가져다준 아주머니였다.


“여보? 안 돼. 위험해! 도망쳐!”


“뭐? 네 아내라고? 죽어!”


“안 돼!!!!”


나는 빨리 일어나 이번엔 내가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고 아저씨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일인극을 하는 아저씨는 혼자 식칼을 들고 싸우다가 결국은 스스로를 찌르고야 말았다.


“윽!!!!! 억울해! 억울하다고!”


“악! 여기 112죠? 큰일 났어요. 여기가……병원 7층인데요.”


시끄러웠는지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셨다가 바로 신고를 하셨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드디어 원수가 죽었어. 내 남편의 원수가 죽었다고. 흑흑흑.”


울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뭐 영화 같이 누가 누굴 죽이고 죄책감에 정신분열이 되는 시나리오일까? 어쨌든 아주머니가 안 돼 보였다.


“앗!”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병원을 뛰쳐나갔다. 경찰이 오면 진술을 해야 하니, 아까운 시간만 흐른다. 경찰들이 CCTV를 돌렸을 때 내가 왜 6층과 7층에 자꾸 올라갔는지, 또 아주머니께서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도 다 해명해야 할 텐데, 귀찮은 일을 만들기 전에 튀는 게 상책이었다.


“왜 난 오늘도 실패일까?”


‘뭐 하루 이틀이야? 원래 안 풀리는 인생이지 뭐.’


“그건 그래. 그래서 뭐! 네 말 듣다가 다 막혔어! 이제 그만!”


나도 나와의 대화를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