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는 팀장의 말에 이자를 바로 멈췄다. 그곳은 중앙에 있는 팀장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엘리와 팀장 사이에 쇠막대기 같은 가로로 긴 봉이 있었는데, 팀장이 그 긴 봉을 한 번 터치하자, 홀로그램 화면의 크기가 커지다가 천장까지 확대되었다.
“우와~ 이런 건 처음 봐요~”
“처음 시행하는 것이 많아서 그래요. 화면이 천장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호호호 다시!”
터치를 두어 번 더 터치하자 홀로그램 화면이 줄어들더니 이 둘의 이자 높이에 맞춰졌다.
“엘리양! 이 화면을 보면 여기가 지금 우리가 있는 에덴 STD 회사예요. 줌아웃해 보면 여기가 1 지구. 맞죠?”
“네!”
“2 지구는 쇼핑과 문화지구, 3 지구는 거주지, 4 지구는 식물원과 동물원, 환경보전센터가 있는 지구예요.”
“네네! 알고 있습니다!”
“엘리 양은 이 회사 9층인 데이터실에서 일하게 될 거예요. 참고로 10층은 대표님의 공간이고요.”
“넵!”
“그리고 엘리 양이 거주하게 될 공간은… 음… 어디 보자~~ 3 지구의 거주지로 가면 좋겠지만, 이미 천 가구가 꽉 찼죠. 기업에서 일하는 정직원들로 말이죠….”
팀장은 홀로그램으로 거주지 상황을 체크하더니 엘리가 묵을 공간을 계속해서 찾아보았다.
“인턴으로 받은 직원은 엘리 양 한 명 밖에 없어서… 일단은 회사 2층 숙직실에서 지내요. 3 지구의 거주지에 곧 오티가 날 거예요. 본사를 소돔에서 공중도시로 옮기고 나서 인사오류로 지금 조정 중이거든요. 엘리 양!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일 시작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공중도시 돌아보면서 익숙해지세요!”
“야호! 앗! 넵! 그럼 내일부터는 데이터실로 출근하면 될까요?”
“그렇죠!”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에덴 STD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어디서 밥을 먹던 다 무료니까 걱정 말고요. 엘리 양! 이 화면 앞에 잠시 서보겠어요?”
엘리는 이자에서 일어나 이은하 팀장이 권하는 화면 앞에 섰다. 홀로그램 화면이 엘리를 상추쌈 싸듯 이자 위를 뒤덮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헉! 이게 뭐예요?”
“회사 사원증을 만들기 위한 절차죠! 호호호~.”
팀장은 화면에서 ‘사원증 만들기’를 터치했다. 긴 봉에서 손가락 모양이 나왔다. 팀장은 아까 보안로봇이 손가락을 넣어 정보를 넣었던 것처럼 그 손가락을 꺼내어 엘리 이자 중간 부분인 제어판에 넣었다. 이제 엘리 이자에 저장된 에덴 STD의 사원증으로 어디를 가든지 밥은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어떻게 내려가나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저 전자레인지 통으로 들어가서 텔레포트를 하던가 아니면 아까 올라왔던 그 자리에 서서 있으면 돼요!”
“아핫! 전자레인지 통이면 제가 쪼개질 수… 하하하…. 그럼 저는 아까 온 방법 그대로~~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엘리는 아까 절반이 잘린 음료기계를 떠올리며 아까 올라온 3층 이동 부분에 서 있었다. 10초간 서 있으니 부력이 작동하여 엘리이자가 자동으로 1층으로 내려졌다. 엘리는 곧장 회사 밖으로 신나게 나갔다.
“일단 한 바퀴 돌아볼까!!!!! 야호!!!!!”
****
엘리는 트랜스포머폰으로 공중도시를 지나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엄마! 아빠! 나훔? 넌 출근 안 했냐? 아~ 내일부터라고? 나도 내일부터인데! 엄마아빠! 여기 다 금색이야! 보여…?”
제일 보고 싶은 사람들과 전화를 다하고, 이세벨에게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걸었다. 하지만 역시나 엘리의 우려대로 받지를 않았다.
“이 언니는 정말 내 언니가 맞을까~ 연락도 안 되고~ 아 맞다! 요나!”
‘요나~ 요나에게 전화를 겁니다~.’
요나는 ON창업자의 아들이니 공중도시 거주지에 당연히 있다. 엘리는 요나가 보고 싶어 걸었지만 요나도 이세벨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이 자식! 아~ 공중도시 학교에서 수업 중이겠지~~ 쩝!”
엘리는 하는 수 없이 뭘 할지 고민하다가 안 가본 4 지구로 향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겠지 뭐~ 그런데 여기는 식물, 동물도 금색이려나?”
가는 길에 2 지구 쪽에서 나오는 익숙한 로봇들이 보였다. 속도가 꽤 빨랐다. 여러 짐들을 실은 운반로봇들과 공중을 날아다니며 짐을 옮기는 날개로봇들이었다. 단지 금색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앵? 날개로봇이 광장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다닐 수 있다니! 오호라~ 여기는 전선이 없어서 가능하겠군! 그나저나 운반로봇은 피하자. 부딪치면 나만 손해야.”
창세기 도시에서는 운반로봇과의 충돌로 이자를 탄 사람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겁이난 엘리는 달리지 않고 운반로봇들이 지나가길 바라며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런데 운반로봇들이 엘리의 이자를 감지했는지 다들 먼저 멈추었다. 그리고는 엘리에게 무슨 말을 했다.
“먼저 지나가십시오.”
“웬일! 대박~ 헉!”
엘리는 입이 쫙 벌어졌다. 공중도시에 올라오면서 업그레이드를 한 모양이었다.
쭈욱 달려 4 지구에 다다르자, 입구부터 눈을 편안하게 하는 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4 지구에서 처음 보이는 곳은 식물원이었다. 흙색과 초록색, 여러 꽃들의 색깔 등등 가지각색의 색들을 가진 식물들이 많았다. 식물원 중간지점을 지나가면서 식물을 관리하는 로봇들을 볼 수 있었다. 전자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몇 가지의 식물을 찔러 배합하는 중인 로봇연구원을 볼 수 있었다. 엘리는 식물원에 색이 많아 눈이 즐거웠지만, 식물에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아 빠르게 지나쳤다. 곧 동물원이 나왔다.
“식물원이나 동물원이나 소돔 식물원과 동물원이랑 차이가 없구먼. 오잉? 그런데 저건 무슨 동물이야?”
동물원에 깊숙이 좀 더 들어가니 난생처음 보는 동물들이 있었다. 토끼 같이 생긴 동물 머리 위에 사슴뿔이 있고 사자 입에 오리 입이 붙은 동물이 있었다. 이 뿐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엘리는 겁먹은 표정으로 유리덮개를 닫더니, 양팔을 엑스자로 어깨를 감싸고는 동물원 다음에 위치한 곳으로 스피드를 높였다.
마지막 곳은 환경센터였다. 바로 요나 아버지가 일하는 ON의 센터!
‘나는 이엘리~ 천재 과학자~~~~’
트랜스포머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야? 엇! 요나다!!!!! 여보세요! 요나야아아아아~~~ 나 지금 ON에 가려고! 뭐? 2 지구에서 보자고? 쇼핑과 문화지구 맞지? 알았어! 알았어! 지금 갈게!!!”
엘리는 요나의 전화에 얼른 2 지구로 이동했다. 다행히 인구가 천 명 남짓한 도시라 길가는 한산해서 좀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요나아아~ 오~~~ 너 이자 멋진데? 헬퍼도! 샀냐? 대박! 하루 만에 바뀌었어!”
요나의 이자는 광고에서 나왔던 그 이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금색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에혀~ 이런 거 바꾸면 뭘 해~ 소돔 학교가 백만 배 재미있다~”
“학교 끝나고 바로 왔구먼! 우정일세~ 친구!”
“…흠흠! 그래도 여기서 너를 보니까 숨이 트인다 트여! 밥이나 먹으러 가자!”
“2 지구 안에 아는 곳 있어?”
“있겠냐? 나도 어제 왔는데! 그냥 가보는 거야!”
“가자! 가자!”
요나는 겉만 바뀌었지 속은 똑같이 따뜻한 친구였다. 하루 만에 사람이 바뀔까 싶냐만은 그럴 수도 있는 게 세상이다. 엘리와 요나는 2 지구에서 음식모양의 건물들을 찾았다.
“해산물 건물, 고기 건물, 스테이크 건물… 여기도 다 금색… 하…하하하하.”
“아! 숨 막혀! 진짜 이 금색 좀 없애버렸으면 좋겠어! 아오~.”
“음식은 금색이 아니겠지…하하하하!”
2 지구만의 특색 있고 각기 모양과 크기가 다른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섰지만, 다 똑같은 색에 요나는 투덜거림을 시전 했다. 엘리도 이제 금색에 지친 듯했다.
“이 누나가 오늘 쏜다! 나 사원증 받았거든. 이자에 저장되어 있어! 어른이다! 어른! 으하하하! 부럽지?”
“나도 두 달 후에는 일하거든요! 분식이나 먹을까?”
“쏜다는 데 무슨 분식이야~ 고급 음식점도 많잖아!”
“그건 나중에 너 혼자 먹고, 나는 분식 먹을래! 나훔아줌마가 해준 거 맛있었는데~~.”
“저기 떡볶이 건물 있다~ 안에 김밥도 있겠지? 가자!”
엘리와 요나는 떡볶이 모양의 건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으니 위에서 메뉴판이 바로 내려왔다. 엘리는 모든 메뉴를 신속하게 다 터치하자 결제 화면이 떴다. 이에 엘리는 요나 앞에서 자랑스럽게 이자에 저장된 사원증 홀로그램을 띄웠다. 그러더니 신기하게도 금방 결제가 완료되었다.
“완전 신기!”
요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지며 엘리의 사원증을 보고 있다가 엘리의 시선에 금세 헛기침을 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3분 만에 메뉴가 다 나오자 둘은 폭풍처럼 먹기 시작했다.
“끄억~ 배불러~~.”
“여기 괜찮네~ 다음에 또 와야지!”
“그런데 여기 음식점들 90프로가 다 DF꺼 인 거 아냐?”
“몰라! 피유다는 꼴불견이지만 음식은 사랑한다~.”
“풉~ 역시 너야~.”
요나는 엘리의 말에 배꼽 터지게 웃다가 무지개분수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중도시 거주민들은 일상처럼 매일 이곳에 모여 대화를 하면서 하루에 두세 번씩 뿜어대는 물을 분무기처럼 자연스럽게 맞고 있었다. 요나와 엘리는 수다를 떨다가, 요나 헬퍼에 뜨는 알림에 요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 이제 집에 가야겠다. 여기 온 후로 부모님이 더 삼엄하게 관리해. 하아~ 지친다. 지쳐. 다른 애들 공부할 때 놀지 말라고 과외로봇을 엄청나게 붙여줬지 뭐야~ 짜증 나지만 부모니까 참는다.”
“재벌집에 태어난 것도 어찌 보면 힘들 수도 있겠다.”
“힘든 게 뭐야~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지! 나 간다!”
“요나야! 데려다줄게! 나 시간 많아~~.”
엘리는 요나와 함께 요나가 사는 3 지구로 향했다. 3 지구에서는 1 지구와 2 지구와는 달리 아파트 형태의 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모두 다 독채로 지어졌다. 집의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울타리가 쳐져 있고 경호로봇들이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오~ 여기는 다른 세상 같다~ 그런데 여기도 금색이네….”
“말도 마~ 그나마 집 안에는 색이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무슨 사람보다 로봇들이 더 많아. 음식로봇, 가정로봇, 과외로봇, 운반로봇, 미용로봇, 그림로봇…으윽! 진짜 내가 사람이랑 사는 건지, 로봇이랑 사는 건지 모르겠다. 소돔보다 더 심해. 그때는 음식로봇밖에 없었어.”
달리고 있는 이자 안에서 요나의 한풀이에 엘리는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들어가다 보니 집 입구가 금색나무와 금색꽃모양으로 이루어진 집이 있었다.
“저기야~ 말 안 해도 알겠지….”
“요나야! 우리 또 만나자! 힘내!”
엘리는 이자에서 내려 요나를 안아주었다. 이자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요나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다.
“에혀~ 어째 애가 더 말라가는 것 같냐….”
엘리는 이자를 돌려 돌아가지 않고 거주지의 끝으로 달려보았다. 거주지 끝에는 집이 없었다. 단지 금색의 풀밭만이 무성하게 나 있었다. 거주지 땅 밖과 땅의 경계에는 금색의 얇은 띠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자리를 잡고 구경하려던 찰나에 어디선가 동그란 모양의 로봇이 날아왔다.
“이곳은 공중도시 1k㎡의 끝지점입니다. 돌아가십시오. 공중도시 양 편으로 투명한 보호막이 쳐져 있지만, 안전하다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신기하게도 이 로봇만이 빨간 불빛을 내며 경고를 하고 있었다.
“너는 색이 있네! 오~~~ 돌아갈게! 나중에 또 보자고! 친구!”
엘리는 창세기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기려다가 안전로봇에 의해 실패했다. 그래서 그대로 회사로 돌아갔다. 1층 천장에 달린 달을 통해 2층 숙직실로 올라가니, 아까 인사팀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두꺼운 매트리스가 깔려 있고, 한쪽에는 음료로봇과 밖을 내다보며 앉아있을 수 있는 금색테이블과 금색의자가 놓여있었다.
“여기에서도 금색이라니~ 그래도 머물 곳이 있어 감사하다!”
엘리는 잠시 의자에 앉아 공중도시를 바라보았다. 해질 무렵이라 노을에 비추는 공중도시의 금색이 더 성숙하게 익은 색처럼 보였다.
“아름다워~ 아름답긴 한데 뭔가 빠진 것 같지?”
엘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매트리스에 풀썩 누웠다. 스르륵 잠이 몰려왔다. 너무 힘든 하루였다.
“그나저나… 하암~ 내가 공중도시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하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든 엘리였다.
2241년 12월 16일 목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인턴 이엘리입니다!”
“아~ 이은하 팀장에게 전달받았습니다. 저는 데이터 팀장 차빈입니다. 소돔에서 공중도시로 데이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질구레한 데이터들을 미처 정리를 하지 못했는데, 잘 됐군요.”
다음날 엘리는 9층인 데이터실로 출근을 했다. 큰 뿔테안경을 쓰고 너풀거리는 청바지와 두꺼운 난방을 입고 있는 차팀장은 엘리를 보자마자 동생 보듯 정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이자를 타고 따라오세요~.”
엘리는 차팀장을 따라가면서 9층 전체를 한 번 쓱 훑어보았다. 3층보다 훨씬 작았다. 인사팀처럼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트인 공간이 아니라 검은 벽이 쳐져 있는 개인의 공간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검은 벽 사이로 지나다 보니 흐린 날씨에 걷는 기분이 들었다. 차팀장은 구석진 곳의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데이터!”
차팀장이 ‘데이터’라 외치니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홀로그램 화면이 홀연히 떴다. 그 화면 안에는 여러 데이터들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연결!”
연결이라 외치자 바닥에 원이 그려졌다. 차팀장이 엘리에게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지시에 엘리는 이자를 탄 채로 그 안으로 들어갔고, 곧 화면과 엘리의 이자가 연결이 되었는지 화면에서는 ‘연결완료’라고 떴다.
“그럼 나는 일을 하러 돌아가야겠어요. 데이터를 처음부터 살펴보고 깨진 데이터가 없는지, 연도순이 잘못되어있는지, 쓸데없는 내용의 데이터, 그러니까 잡담 같은 그런 영상이요. 이런 게 없는지 보고 삭제하세요. 그럼 이만!”
“저 팀장님!”
“네?”
“여기는 에덴 STD잖아요. 이런 정리쯤은 데이터정리로봇을 만들어 처리하면 되지 않나요? 너무 기초적인 일이라서요….”
엘리는 당차게 묻고 나서 ‘너무 버릇이 없었나’ 반성하며 말끝을 흐렸다.
“좋은 질문! 역사를 다 배웠다면 알겠지만 인공지능 때문에 반역이 일어난 역사가 있었죠. 대략 2190년 때였나요? 그 이후로 절대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걸 허락하는 기술을 만들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죠. 이런 데이터들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편하긴 하겠지만 또 인류에게 공포를 가져다줄 수 있어요. 기초적인 일이지만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 알죠?”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진짜 이만!”
엘리는 큰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자 안에서 손가락으로 데이터들의 목록을 하나씩 터치하며 열어보기 시작했다.
“음~ 이건 연예인 영상인데 왜 여기 들어가 있지? 삭제! 이건 음식 정보? 대체 이런 게 왜? 삭제! 에덴 STD의 창립역사~ 이건 내버려두고~ 음… 혹시 모르니까 다시 볼까?”
엘리는 열어본 영상은 학교에서 창세기 역사 수업 때 본 영상과 똑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마도시 뒤에 보조로 서 있는 이공중이라는 개발자였다. 까만 머리색의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손에 빛나고 있는 은색 십자가반지.
“나도 까무잡잡하고, 나도 반지는 아니지만 은색 십자가가 있는데…. 이 사람이 아빠일까? 너무 뜬금없나? 나도 아빠가 누군지 알고 싶다~ 그래도 나훔아빠가 있긴 하지! 하하하!”
엘리는 괜히 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옷 안에서 꺼내어 만져보았다.
“에잇~ 아닐 거야. 마도시님의 친구분이면 엄청난 분인데! 괜히 느낌적인 느낌이야! 까무잡잡한 사람이면 얼마나 많게!”
엘리는 창세기 도시 역사 영상을 끄고 새 폴더로 끌어서 넣었다. 그런데 무언가 번뜩 생각났는지 자신의 트랜스포머폰을 꺼내 지하벙커에서 찍었던 영상과 방금 넣었던 영상을 다시 켜서 비교해 보았다.
“음~~ 확실히 사람만 바뀌었어. 배경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은데, 마도시님과 이공중, 이 두 분만 바뀌었어. 뭔가 있는데! 진짜 이상하다! 뭐가 가짜 영상인지 알아낼 방법 없나!”
엘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창세기 도시인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역사자료인데 이게 가짜일리 없잖아!’
머리를 마구 쥐 뜯으며 영상 무한 반복으로 돌려놓았다.
‘나는 이엘리~ 천재 과학자~~~~.’
갑자기 트랜스포머폰이 울렸다.
“악! 벨소리를 꺼둔다는 게 그만! 여…여보세요? 엇! 언니? 언니! 나 9층에 데이터실에서 자료 정리해.”
이세벨의 연락이었다. 영상통화는 아니고 목소리로만 통화하고 있었다.
“언니는 기술개발실이라고?”
엘리는 이세벨의 말에 눈앞에 보이는 영상들을 말해서 확인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앗! 잠깐 언니!!!! 끊지 마! 언니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니고 실은 내가…….”
엘리는 생존신고만 하려는 이세벨의 전화를 붙잡고, 그동안 지하벙커에서 있었던 일과 트랜스포머폰으로 찍은 영상이야기를 했다. 이세벨은 엘리가 어렸을 때부터 사고를 자주 쳐서 엘리 일에 관여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엘리입장에서는 이세벨이 도움을 줄지 안 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일단 말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앵? 여기로 온다고? 아! 진짜? 언니 정말 정말 고마워! 여기 데이터실 끝방이야. 내가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웬일로 엘리의 요청에 이세벨이 온다는 대답을 했다. 공중도시에서 일하려니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족관계라서 그랬을까!
이세벨을 본다는 생각에 엘리는 빨간물이 점점 빠져가는 까만 머리를 긁으며 금세 좋아서 헤헤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