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루 다른 시선(2) - 이세벨의 두 번째 각성

by 이야기소녀

2241년 12월 10일 금요일

“엄마! 엘리가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 공중도시 광고 보더니 머리가 이상해졌나 봐~~ 어떻게 해?”

나훔은 엘리가 평소 모습답지 않게 수업 시간에도, 등하교 시간에도, 집에서도 게임이나 실험, 조립 등 일체 해왔던 걸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모습에 매우 낯설었다.

“엘리가 철이 들었나 보다~ 호호~ 잘하고 있어!”


이세벨은 식당에서조차 공부하는 엘리를 보며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엘리를 기특해하며 바라보는 아줌마의 눈빛과 간식을 챙겨주는 따뜻함에 오늘따라 자신도 모르게 화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훔과 엘리보다 일찍 이자를 타고 소돔 학교로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라 이자들의 밀림은 없었다. 하지만 가나안 마을을 지나 소돔 마을로 들어가니 간혹 가다 보이는 다른 형태의 이자들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자기 앞에 떡하니 달리고 있는 처음 보는 이자. 금색에 호랑이 팔 같은 손잡이, 전체적으로 커진 사이즈 그리고 등받이에 보이는 에덴 STD의 상표. 이세벨은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베이지색 이자와 새로운 이자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계속 가는 금색 이자가 학교 내로 들어가 복도에서 갈라지기 전까지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금색이자가 저 뒷 반으로 가려고 옆으로 트는 순간 이세벨은 금색 이자에 앉은 여학생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 잠시 자신이 그 의자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고장이 나서 흔들리는 자신의 이자에 한숨이 절로 나왔고, 착각은 단번에 모래처럼 사라졌다. 이세벨의 이자는 반으로 들어와 첫 번째 줄 첫 번째 자리에 멈췄다. 어제 공부한 것들을 복습하려고 떠올리고 있는데, 그동안의 등교풍경과는 다르게 형형색색의 이자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세벨은 자기도 모르게 다시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새로운 이자들의 행차 사이에 이세벨의 친구들인 피유다와 강가인이 이세벨에게 다가왔다.


“이세벨! 오늘 우리 둘 공중도시로 이사 가~ 너도 곧 오리라 믿는다!”

“넌 당연히 올 자격이 있어!”

둘은 등교를 하자마자 이세벨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구나~ 그래~.”


이세벨은 공중도시가 생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언제 사람들이 들어가서 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친히 알려주니 아쉬움과 씁쓸함 보다는 자랑으로만 들렸다. 아쉬움도 없는 겉치레 인사임을 알았기에 서운한 미소의 입모양만 띠어주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로봇의 전원이 들어오자 갑자기 시험을 본다며 시험모드로 들어갔다. 다른 학생들이 불만과 불평을 토로할 동안 이세벨은 아무 내색 없이 시험에 집중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이세벨은 식당에 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영상 하나를 켰다.

공중도시 광고 영상이었다. 하얀 옷을 입고 월계관을 쓴 마도시. 은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마도시. 눈 아래의 점.

“아~ 기분 나빠….”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보였다. 이세벨은 손을 뻗어 홀로그램 영상 속의 마도시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엄마의 일기장이 생각났다.


‘마도시의 짓이다!!! 마도시가!!! 엄마와 아빠는 분명히 마도시에게 당한 거야.’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떠는 세벨은 마침 공중으로 떠오른 공중도시 홀로그램 영상에 이성을 잃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홀로그램 영상을 송출하는 양쪽의 전자막대기들, 즉 수업판에 손상이 갔는지 공중에 떠 있던 막대기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피유다가 옆에서 보고 바로 관리팀에 연락하자 나와서 수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피유다가 전화를 하건 말건, 관리팀이 나와서 수리를 하든 말든 이세벨은 눈을 감고 복수를 다짐하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피유다… 오늘 공중도시로 간다고 했지?”

“응? 응~ 왜?”

“어떻게 들어가는데?”

“장소는 부모님이 아셔. 극비리에 진행되는 건가 봐~ 개나 소나 들어가면 안 되니까~ 내가 아는 건 저녁 6시 하늘광장에서 진행하는 오픈식 밖에 없어.”


‘개나 소나….’


눈을 천천히 뜨며 피유다의 표정을 보니 교만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눈빛이었다. 광고에서 나왔던 마도시의 그 눈빛과도 흡사해 보였다.

“이제 남은 시험은 세 과목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로봇의 진행으로 남은 세 과목의 시험을 치고 나니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났다. 피유다와 강가인, 반 학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사고뭉치 삼인방과 이세벨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가야지! 너희들 잘 지내고 있어라. 우리 또 만나자!”

“권요나! 나 공중도시에 꼭 가니까 거기서 딱 기다려! 나훔은 못 볼 테니 내가 많이 봐주지! 하하하하!”

“역시 이엘리야~ 푸하하하!”


피유다, 강가인, 요나마저 가고 공중도시 오픈식이 시간이 다 되어갔다. 이세벨은 혼자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싶지 않아 엘리와 나훔에게 같이 가자고 냉담하게 말을 꺼냈다. 엘리는 정말 오랜만에 같이 가자는 이세벨의 말에 기뻤고, 나훔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셋은 함께 하늘 광장으로 갔다.


****


금세 하늘광장에 도착했다. 이자를 주이장에 세워놓고 자리를 잡았다.

저녁시간이라 엘리와 나훔은 서로가 한 배에서 태어나 피를 나눈 형제처럼 서로가 서로의 배고픔을 챙기며 마음을 표현했지만, 이세벨은 그 따뜻함이 어색하기만 했다. 어차피 지금은 따뜻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계적인 기업 에덴 STD 대표 마도시입니다!”


하늘 광고에서 마도시가 홀로그램 모양으로 튀어나와 인사를 했다. 아까 학교 수업판 영상으로 봤던 그리스식 옷이 아니라 빛나는 소재인 하얀 가운을 입고 나왔다. 옷이 하얗게 빛나는 통에 마도시의 은색 머리칼이 더 빛나는 듯했다. 이세벨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머리칼을 만졌다.

‘하아~ 똑같은 머리색… 정말 싫어….’


“이 하늘광장에서 역사적인 첫날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산증인이 되시는 거고요. 곧 공중도시에서 거주하실 분들의 입장이 있을 겁니다. 제가 그날 선착순으로 진행한다고 했었죠! 역시나 그날 바로 마감됐습니다. 이분들과는 천 년 만 년 공중도시에서 함께 살 게 되겠네요. 하하하!”

마도시는 저번의 진중한 콘셉트와는 달리 오늘은 유쾌한 진행을 했다.

큰 눈이 웃음을 지을 때 눈에 애교 살이 도드라지면서 점 또한 잘 보였다. 이세벨은 보기가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엘리가 들고 있는 트랜스포머폰으로 자신의 눈 밑 점을 오히려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왜 이렇게 닮은 거야…?’


미묘하게 동공이 커지고 입이 조금 벌어졌다가 다시 마음을 바로 잡았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보여드릴 영상은 공중도시로 입장하는 분들의 영상입니다. 혹여나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이 불법으로 들어갈 상황을 대비해 장소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입장이 끝나고 공중도시가 떠올라 이동할 때에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 알게 되겠지만요! 하하하!”


마도시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대신 어떤 땅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동그랗게 경계가 쳐진 땅이었는데, 저번 광고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세벨은 고개를 들어 그 영상을 째려보았다.

그때 고개를 젖혀 함께 보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우와~~~~~~~~ 공중도시 전체가 금으로 덮여 있어. 광고할 때랑 똑같아!”

“돈을 엄청 쏟았겠네. 부자들만 들어가는 곳 맞잖아. 그냥 부자도 아니고 부자 중의 부자….”

“다들 대기업 창시자들이구만~ 우리 서민들은 택도 안 되는 거였어~.”

“그래도 부럽다. 저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참네~ 자기네 특권층 자랑하는 거지. 저기서도 서로들 물고 뜯을 걸!”

“저 무지개물 나오는 분수 봐라~ 저거 개발하느니 가나안 마을이나 황무지를 더 개발시켰겠다. 안 그래?”

“일반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라고.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특혜를 받고, 누구는 버려지듯 살고. 불공평한 세상이야~.”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돈 많다고 티 좀 내보게~.”

“에잇~ 퉤퉤퉤!”


이세벨의 귀에는 왜 이런 말들만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왜 여기서 우러러보고 있어? 왜 말만 하고 가만히 있는 거지?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영상에서는 공중도시의 구획을 설명한 뒤에야 입장을 시작했다. 천 가구를 입주민으로 받은 공중도시의 땅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지진이 일었지만 이세벨은 아무 동요도 없었다.

옆에서 엘리는 방방 뛰며 공중도시가 떠오르는 기술을 알고 싶어 했지만, 이세벨은 활짝 웃으며 첫 번째로 입장했던 마도시가 계속 생각이 났다.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여러분! 이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공중도시가 완벽한 공중도시가 되었습니다!”


곧 영상은 꺼지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며 폭죽이 터졌다. 그곳에는 땅에서 분리된 공중도시가 유유히 떠 있었다. 그렇게 험담을 하던 사람들까지도 이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소리에 하늘광장 전체가 시끄러워졌지만, 이세벨은 폭죽이 공중에서 터져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이세벨은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조용히 읊조렸다.


“완벽한 공중도시? 이공중의 딸이 망가뜨려주지~.”



****


오픈식이 끝나 엘리와 나훔, 이세벨은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엘리와 나훔은 들어가자마자 아줌마에게 어린아이처럼 공중도시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아줌마가 이세벨도 챙겨주었지만, 이세벨은 이들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방으로 올라가는 발판을 타고 있었다. 그때 아저씨가 뛰어오시며 하시는 말씀에 이세벨은 올라가면서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그동안 고아원 재정지원을 에덴 STD가 해왔는데, 이제는 고아원 문을 닫으라고 통보한 것이었다.


‘뭐? 이 고아원을 에덴 STD가?’


엘리는 갑작스러운 고아원 폐업위기에 ‘자신이 곧 직업을 얻을 것’이라며 버티라고 하지만, 이세벨은 아랜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방으로 들어갔다.


‘감히 내가 있는 곳까지? 마도시!!!!’


이세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의 머리색깔이 거슬렸다. 이세벨은 학교 창세기 도시 역사시간에 잠깐 스쳐가면서 봤던 이공중, 자기 아버지를 떠올렸다.


“검은색으로 염색!!!!!!!!! 아주 까맣게!!!”


2241년 12월 13일 월요일

주말을 보내고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 되었다.

교실에 남은 학생은 이엘리, 김나훔, 이세벨과 강소라 넷 만 남았다. 나머지 학생들은 다들 공중도시 학교로 전학을 갔다. 총 7개의 반이었는데, 한 학급당 20명이며 소돔에 들어간 학생은 한 반 당 90 퍼 가까이 되었다.

“이세벨! 나 너한테 처음 말 걸어봐~ 머리색깔 이쁘다! 잘 어울려!”

“고마워~.”

가나안 마을에 사는 강소라는 학교를 다니면서 지금까지 이세벨에게 한 마디도 붙여보지 못했다. 반장이긴 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고위 재벌인 피유다와 강가인이 엄호로 감히 가까이 갈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수업로봇의 전원이 켜지고 어제 본시험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고3 전체의 인원수 변동으로 오늘은 재정비를 위해 시험 등수만 발표하고 휴강하겠습니다. 먼저 이엘리! 반에서 3등! 전교에서 7등!”


나훔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고 이엘리는 입이 귀에 걸리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뭐? 이엘리가?’

“이세벨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등!”

“역시! 우리 언니야! 나훔! 그렇지 않냐? 너는 누나나 형 없지? 캬캬캬”


엘리는 이세벨의 전교 1등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나훔의 결과에도 위로를 주었지만, 이세벨은 소돔 학교 전교 꼴찌가 갑자기 전교 7등이 된 사실에 있어서 믿을 수가 없어서 자신이 전교 1등이라는 결과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엘리는 수업로봇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이자를 타고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이세벨은 당황스러워 수업로봇에게 물었다.


“이엘리가 정말 전교 7등이 맞나요?”

“맞습니다!”

“시스템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시스템은 에덴 STD 것으로 항시 보안이 철저하며 20년 간 오류 없이 정확도를 자랑했습니다. 문의가 있다면 에덴 STD에 직접 문의하십시오.”

“그럼 이엘리가 커닝했던 건 아니고요?”

“세벨아~ 그런 거 아니야~ 엘리가 천방지축이어도 열심히 공부했어~.”


나훔은 뒤에서 듣고 있다가 세벨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하지만 이세벨은 나훔의 말은 듣지도 않고 수업로봇의 응답을 기다렸다.


“아닙니다. 커닝을 하는 순간 센서로 인지되기 때문에 제가 관리하고 있는 교실은 커닝이 불가능합니다. 이상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나훔은 트랜스포머폰에 연락이 왔는지 교실을 나섰고, 이엘리는 바로 상담로봇에게 내려갔다.


“소돔학교 19살 1반 이세벨, 맞습니까?”

“네.”

“무슨 일로 왔죠?”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요. 저번 에덴 STD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전교 1등, 2등, 3등의 특혜입니다. 아직 대답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확정 지으실 겁니까?”

“네! 반드시 들어가야겠어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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