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지 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1-
2241년 12월 26일 일요일
어제 눈이 멀거나 입이 막힌 사람들은 다음날이 되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룻밤 악몽을 꾼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리트 고객들이라 처음 받는 모욕적인 대우에 에덴 STD에 신고를 하기도 하고 직접 에덴 STD 앞에 찾아가서 ‘물어내라’며 주말에 출근하는 에덴 STD의 직원들을 붙잡고 화를 내기도 했다. 또한 마도시 대표를 만나 끝장을 보겠다고 올라가려 했지만, 1층에서 제지를 당해 씩씩대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엘리는 다행히도 이 소문을 듣고 외출을 포기했다. 숙직실에서 가만히 앉아 유리를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지?”
엘리는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서, 유일하게 주말에도 일거리가 넘치는 기술개발실로 내려갔다. 비록 인턴이지만 상황을 알고 싶었다. 다른 직원들은 없고 노현재 팀장과 이세벨만 있었다.
“시스템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어제는 왜 그랬지? 이세벨 씨 한 번 체크해 봐! 어제 내가 여기 있었어야 했는데~ 하아~ 나는 왜 갑자기 집에 있었던 거야? 생각이 나질 않아~.”
노현재 팀장은 퀭한 눈으로 한숨을 쉬다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자책을 했다. 이세벨은 팀장의 지시에 말없이 에덴 STD 전 시스템 하나씩 체크했다.
“팀장님! 모두 다 정상입니다. 저도 어제 감기가 너무 심해서 자느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브날에는 이유도 모르게 정신을 잃어서 너무 당황했고요. 저희 쪽에서 띄운 이벤트가 아닌데 대체 누가 그런 홀로그램을 띄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쪽 직원들은 다 모르는데, 공중도시 거주민들은 다들 에덴 STD가 한 줄 알고 있으니 원~ 하아! 대표님이 경책 하실 때도 됐는데 왜 연락이 없으실까?”
엘리는 바쁘게 돌아가는 기술개발실 상황에 조용히 숙직실로 돌아갔다. 트랜스포머폰을 켜서 어제 공중도시 TV에 나왔던 공중도시 무지개분수 상황을 다시 보았다.
“‘간음하지 말라, 이웃에 거짓증언 하지 말라’ 이건 성경의 십계명이잖아?”
엘리는 그 빨간 여인을 확대해 봤지만 폰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홀로그램 화질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9층 데이터실 자신의 방으로 가서 어제의 영상을 다시 돌려 보았다.
‘빨간 여인은 언니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뿐이겠지. 게다가 언니는 평소에 말을 안 하는 편인데 저 사람은 말을 너무 잘해~ 그런데 이 눈먼 사람….’
엘리는 처음으로 눈먼 사람의 영상을 다시 돌려보고 반복해서 보았다.
“엇! 천천히!”
영상이 천천히 재생하자 엘리의 눈에 무언가가 띠었다.
“역시! 홀로그램 화살을 맞아서 눈이 먼 게 아니었어. 그렇게 될 수가 없지. 이건 헬퍼에서 나온 물질이 확실해!”
엘리는 확신에 차서 바로 기술개발실로 내려가, 노현재 팀장과 이세벨에게 설명했다. 노현재 팀장은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세벨이 날카롭게 한 마디를 했다.
“그럼 입이 닫힌 건 헬퍼가 한 거야? 그리고 헬퍼에서 어떻게 물질이 나와? 헬퍼는 액체를 보관할 수 없는 전자기기야.”
“아니야! 언니! 이것 봐!”
자신의 트랜스포머폰으로 찍어온 느린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말 액체가 튀어나오는 모습이었다.
“오호! 이 영상 나한테 보내줘요. 아니다. 내가 여기서 전송해 갈게요. 대표님께 얼른 가서 말씀드려야겠어!”
노현재 팀장은 엘리의 폰과 자신의 헬퍼를 연동시켜 영상을 가져온 뒤, 급히 대표실로 올라갔다. 엘리도 얼른 1층으로 나가려고 했다.
“엘리!!!!”
“응? 왜?”
“어디 가?”
“사람들한테 알려줘야지! 그래야 헬퍼를 끼지 않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 에덴 STD 직원이야?”
“당연히 직원이니까 알려야지. 다음에 또 헬퍼에서 사람을 해하는 물질이 나오면 어떻게 해.”
“네가 그렇게 하면 에덴 STD는 어떻게 될까? 에덴 STD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세벨은 엘리에게 다가와 폰을 뺏은 뒤 그 영상을 지워버렸다.
“언니!!!!!!!! 그래도 알려야지! 사람이 다쳤잖아.”
“다치지 않았잖아. 그러고 끝났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그 입 다물지 않으면~.”
그때 노현재 팀장이 내려왔다. 엘리와 이세벨의 말다툼이 수그러들었다.
“맞아요~ 이세벨 씨의 말이 맞아요. 그 입 다물지 않으면 당장 쫓아낼 테고 고아원 지원도 끊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세벨 씨를 봐서 고아원 다시 재개시켜 준 겁니다. 이엘리 씨 맞죠? 이엘리 씨 때문에 망하게 생겼네요. 대표님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어요!”
“…”
이세벨은 엘리에게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엘리는 충격을 받은 상태로 이자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1층으로 내려갔다. 이세벨과 노현재 팀장의 반응은 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에게 멱살을 붙잡혀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물어내라는 협박을 당했지만, 엘리는 그 말에 대꾸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엘리는 무작정 도로를 달렸다. 무지개분수대에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었지만, 주말치고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어제의 여파로 대부분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어떤 가족이 짐을 들고 엘리가 올라왔던 귀퉁이 땅으로 가고 있었다.
“웬 짐? 어디를 가는 거지?”
엘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가족의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니, 그 가족이 그곳을 지키는 보안로봇에게 내려가겠다고 손가락질하며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 보안로봇은 대꾸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보안로봇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고 밀쳐도 그 로봇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가족이 제 풀에 지쳐서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갔다.
‘헐~ 왜 이동이 안 되지? 이상해~.’
엘리는 궁금해서 그 로봇에게 가까이 가보았지만, 역시나 먹통인 상태였다. 그래서 그 가족들처럼 자신도 궁금증을 안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때 그 보안로봇의 전원이 켜지며 ‘꿈틀’하고 움직였다.
‘이 보안로봇이 고장 났나!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언니가 그런다고 나까지 그럴 순 없어. 고아원을 생각하면 입을 다물어야 하지만 그래도 고아원에 엄마, 아빠도 내가 가만히 있었다는 걸 아시면 오히려 꾸중하셨을 거야! 그래! 결심했어!’
엘리는 아까 그 가족들을 떠올리다가 자신의 고아원 가족들이 떠올라 마음을 바로잡았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 같은 에덴 STD 앞으로 갔다.
“여러분!!! 헬퍼를 빼세요! 헬퍼에서 해로운 액체가 나와서 눈을 멀게 한 거예요!”
“당신! 아까 그 에덴 STD 직원이지? 헬퍼탓 하지 말고 정신적인 피해보상 달라고! 너희 대표 나오라고 하라고!!!!”
“그래! 너희 대표 어디 있어!!!”
엘리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놀랐다. 성을 내며 다가오는 사람들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바로 회사 안으로 도망쳐 숙직실로 들어갔다.
“하아~ 하아~ 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억울한 마음에 공중도시 TV 영상을 켜서 그 아래 댓글을 달려고 했다. 전화는 되지 않지만 메시지가 되니까 댓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공중도시 도와주세요!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저는 공중도시에서 일하는 직원이에요. 이 영상은 꾸며진 영상이 아니라 실제 영상이에요. 지금 헬퍼를 쓰시는 분들은 다들 전화나 메시지가 먹통입니다.’
다행히 댓글이 올라갔다. 그런데 대댓글들의 내용이 엘리를 힘 빠지게 만들었다.
‘그럼 님은 어떻게 댓글을 올리나? 일부러 내일 이벤트 더 조회수 늘리려고 하는 주작 아니야?’
‘재벌들이 안전하면 더 안전했지. 너희가 우리를 도와줘라~ 나도 헬퍼 써보고 싶다!’
‘공중도시 직원이면 정말 좋겠네~~ 그 직장이 안 맞으면 퇴사하면 되지, 왜 공중도시까지 먹칠하려고 하는 거임?’
“하아~~ 왜 다들 안 믿어주는 거야~.”
엘리는 그저 한숨만 쉬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241년 12월 27일 월요일
월요일이 되었다. 공중도시 거주민들은 마음을 졸였다. 그 빨간 여인이 말한 디데이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무지개 분수대에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저번처럼 멍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이자를 타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제정신으로 집에 있거나 일터에 있었다.
엘리도 데이터실에서 차빈 팀장님이 시키는 대로 데이터를 검색해서 주거나, 현재 에덴 STD에서 개발한 모든 기기들에 대한 개발데이터들을 차곡차곡 모아 보안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한껏 긴장이 풀어진 듯 무지개분수대로 쏟아져 나왔다. 때마침 무지개분수에서 무지개물이 뿜어져 공중도시를 덮었다. 사람들은 공기를 마시듯 무지개물을 흡수하고 있었다. 광고로봇들도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DF 또 다른 신제품 치즈요거트 아이스크림. 여기 한 입 시식해 보세요!”
사람들은 열심히 시식을 하고 있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나?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야.’
엘리는 이자를 타고 밥을 먹으러 2 지구로 향했다. 그때 옆에 지나가는 두 여자의 대화를 들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나 봐. 에덴 STD의 실수일까?”
“그렇겠지 뭐~ 그 분수는 에덴 STD가 관리하는 거잖아.”
“그런데 아직도 사과도 안 하고 너무 베짱이다~ 자기네 없이는 공중도시도 없다는 건가. 교만해!”
“그래도 어쩌겠어. 전 세계 일류기업인데. 에덴 STD 없이는 이 나라가 돌아가진 않으니. 에혀~ 없는 자의 서러움이란~.”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 대화에 엘리는 생각에 잠겼다.
‘진짜 크리스마스 단 하루만의 악몽이었길 바래. 그런데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방금 앞서 가던 두 사람이 갑자기 멈추더니, 이자에서 유리덮개를 내리고, 도로 한복판에서 서로 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야! 너 언제 내 헬퍼 가져갔어? 이리 내놔!!!”
“내가 가져간 거 아니야! 이게 언제 내 손에 있었지? 아까 너 얼굴에 껴 있었잖아.”
“그런데 왜 지금 네 손에 있어? 전부터 내 헬퍼를 그렇게 보더라니~ 어쩐지 내 헬퍼가 이번 신상이니까 가지고 싶었던 거지?”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얼마 차이 난다고! 내가 네 거 부러워하긴 했어도 훔치진 않아!”
“그런데 왜 지금 네 손에 있냐고!!!”
마치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처럼 머리를 뜯고 싸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엘리는 얼른 그곳을 지나 음식거리로 진입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난 것만 같았다.
‘쿵!’
“악!!!!”
‘쿵! 쿵! 쿵쿠쿠쿠쿠쿵’
원래 음식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가게들이 열을 맞춰 일렬로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가게들이 세 개 중 하나 꼴로 저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음식점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생사를 알 수 없으나,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엘리도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배고픈 걸 잊고, 바로 뒤돌아 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는 족족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요나~ 요나에게 전화!”
엘리는 이 와중에 요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악! 엘리!!!”
요나 쪽도 심상치 않았다.
“요나 괜찮아? 거기도 혹시 무너졌어?”
“너 어떻게 알았어? 방학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엄마가 방금 전까지도 차고 있었던 다이아 목걸이가 없어졌다고 하셔서 찾는 중이었지. 그런데 주위에서 큰 소리들이 들리고 땅이 울리길래 창밖으로 봤더니 몇몇 집들이 무너졌더라. 소름~~.”
“넌 괜찮은 거야?”
“당연히 괜찮지. 우리 엄마는 목걸이 없어져서 울상이지만~ 아~ 정말 이 상황 짜증 난다!”
“휴~ 다행이야. 이거 누가 벌인 일 같은데 누군지 모르겠어.”
“에덴 STD에서 한 거 아니야? 시스템 오류 같은 거?”
“아니래~ 팀장님과 이세벨이 확인해 봤는데, 크리스마스 때는 먹통이더니 어제 정상으로 돌아왔대. 요나야! 정신이 없겠지만 동물들 쪽이랑 수상해 보이는 곳들 좀 알아봐 줘!”
“알았어! 조사 좀 해봐야겠군. 엇! 엘리! 지금 무지개분수로 가봐. 공중도시 TV 떴어! 조심하고!”
“그래? 알았어! 연락할게!”
투덜이 요나가 웬일로 성숙하게 엘리를 챙겼다. 엘리는 요나의 말에 최대한 빨리 무지개 분수대로 갔다. 이제는 무서움보다는 대체 누가 그랬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아~.”
엘리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지개 분수대 위에는 역시나 그 홀로그램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악몽의 빨간 여인.
“호호호~ 기다리셨죠? 여러분! 오늘은 공손하게 돌아왔어요.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참 편하게 잘들 있더라? 호호호~ 오늘 제가 준비한 추첨은 어땠어요? 다들 본인이 한 대로 받는 거예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호호호~ 지금 무슨 소리하는지 몰라?”
그 여인은 유치원생이 쓰는 노란 모자에 노란색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노란색 가면을 쓰고 노란색 팔 장갑을 하고 노란색 구두를 신고 노란색의 모과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에는 노란색 립스틱을 바른 상태였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음식거리로 가다가 갑자기 닥친 재앙으로 돌아 나오는 바람에, 무지개 분수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엄마! 괜찮아? 뭐? 집에 가정로봇 화면에 무지개 분수대가 나오고 있다고?”
집에 있는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어떤 여자의 말을 엘리가 들었다.
‘그럼 굳이 여기에 없어도 지금 공중도시 전역에 다 방송되고 있다는 뜻이잖아.’
“아차차! 내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지? 나를 뭐라고 부를지 고민 많이 했을 거야. 내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