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소녀 Aug 08. 2024

무지개 빨간도시모험 - 새로운 친구 하얀토끼 마네

“서나야, 일어나! 서나야!”

 “으음, 엄마…, 나 졸려….”

 “서나야, 서나야!”

 “어… 엄마…, 아암~ 응…? 넌…, 누구야…?”

 서나를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부스스하게 일어나다가 깜짝 놀랐다. 서나를 부르는 소리는 부모님 소리밖에 없었는데, 부모님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보던 책가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크기가 서나 키 정도였고 눈, 코, 입과 손, 다리, 발이 생겨서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신비로운 존재 같이 보였다.

 서나는 아주 찬찬히 살펴보더니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너 내 책가방이잖아…, 어떻게 커진 거야…?”

 “나는 빽빽이라고 해. 서나야 이럴 시간이 없어. 나가야 해!”

 “빽빽? 어디… 어딜…?”

 빽은 서나의 등을 떠밀었고, 서나는 얼떨결에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어디 계셔…?”

 “이거 메고 다녀야 해!”

 헝겊으로 만든 하얀 천 속에 푹신한 솜이 가득 든 병아리 인형이었다.

 “키가 나랑 똑같아….”

 빽은 인형에 붙어있는 끈을 서나 어깨에 메 주었다.

 “가자!”

 “엄마는…, 어디 가셨지….”

 서나가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등에서 소리가 났다.

 “안녕?”

 “응? 혹… 혹시 인형이 말하는 거야?”

 빽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럴 수가….”

 “놀랠 시간 없어. 나가자!”

 빽은 한 손으로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당황하는 서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열자마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발밑 길도 빨간색, 오른쪽도 빨간색, 왼쪽도 빨간색, 앞도 빨간색이었다.

문을 열었더니 옆집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그곳에는 처음 보는 빨간색의 돌이 박힌 길만 쭉 나있었다.

 “학교를 어떻게 가지…? 내가 아는 길이 아니야….”

 빽은 느리게 걷는 서나 손을 놓은 채, 대답도 하지 않고 바쁘다는 듯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서나는 혼자 있기가 두려워 서둘러 빽의 뒤를 따라갔다.

 빨간색 길 위를 몇 걸음 걷다 보니, 지금쯤이면 나와야 하는 학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빨간색의 뾰족뾰족한 지붕에 빨간 페인트로 벽을 칠한 집들만이 일자로 늘어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집 모양이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나무도, 꽃도, 풀도 또 뾰족하고 모두 다 빨간색이었다.


 “아 짜증 나!!!!!!!”

 갑자기 빨간 토끼가 빨간 집에서 나오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아아악~ 짜증나아아아~~ ”

 그러더니 점점 서나에게 가까이 오면서 자기의 귀를 막 뜯었다.

 “아아아악~~~”

 서나는 빨간 토끼를 보고는 무서워서 그냥 빨리 지나갈까 하다가 ‘토끼들은 다 착하고 순하던데 짜증을 낼 정도면 누가 토끼에게 나쁜 짓을 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돕고 싶어졌다.

 “저…, 왜 짜증이 나세요…?”

 “내가 일어나는 것도 짜증 나고, 집이 여기에 있는 것도 짜증 나. 꽃이 예쁜 것도 짜증 나!”

 “네…?”

 당황했다.

 “못 들었어? 자꾸 물어보지 마. 짜증 나!”

 “죄…죄송해요…….”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지 빨간토끼의 포악한 목소리에 서나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다가 끝내는 울먹거렸다. 빨간 토끼는 전혀 서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마에 인내천의 굴곡을 더 강하게 패면서 서나를 째려봤다.

 “그래서 뭐? 네가 물어보는 것도 짜증 나. 누구야? 아아아! 아니야! 듣기도 귀찮아!”

 빨간 토끼는 발을 땅에 쿵쿵쿵 굴렀다. 왠지 빨간 토끼가 발길질을 할수록 그 주변의 빨간색 전부가 점점 더 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빨간 토끼의 옆집에서 문이 열렸다. 똑같은 표정의 새로운 빨간 토끼가 나왔다. 쌍둥이 같았다.

 “짜증 나. 귀찮아. 누가 밖에서 떠드는 거야? 너야? 래빗래빗?”

 “쟤는 누구야?”

 그 옆옆집에서도 똑같은 빨간 토끼가 나왔고 그 옆집도 그 옆옆집도 도미노가 쓰러지듯 문이 켜켜이 열리며 빨간 토끼들이 나왔다. 다들 똑같은 쌍쌍쌍쌍쌍둥이 같았다.

 “쟤 누구야?”

 “보기만 해도 짜증 나!”

 “네가 더 짜증 나!”

 “래빗래빗, 너 말하지 마. 짜증 나!”

 “래빗래빗, 너나 말하지 마. 귀찮아!”

 서나는 동화 속에서 보던 순수하고 착한 토끼가 아니라 놀라운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그랗지만 빨간색으로 충혈된 눈을 가진 여러 마리의 토끼들이 큰소리로 '짜증 나, 귀찮아'를 반복적으로 외치는데, 무서움이 극도로 올라왔다. 목소리는 제각기 달랐어도 내는 음이 비슷하고 위협적인 목소리라 마치 서나를 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서나서나, 괜찮니? 여기는 빨간 도시야.”

 서나가 눈물을 흘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는데, 서나 뒤에서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야, 등 뒤에 있는….”

 “아…, 아까 내 등 뒤에 인형….”

 “응! 맞아! 저 토끼는 불평만 하는 거야. 지금까지 불평만 하면서 살아와서 그래.

 “엇? 병아리 인형이 말을 하네?”

 그런데 서나 앞으로 여기서 처음 보는 하얀 아기 토끼가 다가왔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토끼는 다른 토끼와는 다르게 온화한 표정으로 서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마네마네라고 해. 너 이름은 뭐야?”

 서나는 빨간색이 아닌 하얀색에 마음이 약간 풀어지며 눈물 닦은 손을 내밀었다.

 “아…, 안녕…? 나는 서나라고 해….”

 “헉!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얼른 두 번 말해!”

 하얀 토끼는 깜짝 놀라 동그란 귀를 쫑긋 세우며 재빨리 속삭였다. 서나는 하얀 토끼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랐다.

 “뭐를…?”

 “이름 말이야!”

 “서나…, 서나…?”

 “휴~”

 하얀 토끼 마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토끼들이 대화를 들었을 때 '래빗래빗'이라고 서로를 불렀던 게 기억났다.

 “이름을 왜 두 번 불러야 돼…?”

 “당연하지. 법이잖아. 이름을 한 번 부르는 건 가장 큰 죄야!”

 서나는 이해가 안 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너는 왜 하얀색이야…? 다들 빨간색인데…?”

 “나는 빨간 토끼들이랑 안 맞아. 내가 토끼지만 성격이 너무 달라서 건의하러 왕궁으로 가는 길이야! 나도 같이 살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마네마네! 같이 가자!”

 인형이 말했다.

 “엇? 너 이름은 뭐야?”

 마네토끼는 신기해하며 서나의 등 뒤에 있는 인형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난 이름이 아직 없어!”

 “음 시나시나 어때? 너 이름이 서나서나고, 인형은 서나서나꺼니까 이름 비슷하게 해서 시나시나!”

 “우와~ 대단하다… 어떻게 이름을 바로 지었어…?”

 서나는 감탄을 하며 마네를 쳐다보았다.

 “내가 원래 머리가 잘 돌아가지! 헤헤"


 한편 서나와 마네, 시나가 대화할 때, 빽은 멀리 앞장서 가다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얼른 가야 돼! 뭐 하고 있는 거야!”

 “으…응,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

 “궁~ 다음부터는 화살표 찾아~”

 빽은 무심하게 또 혼자 앞장서 걷다가 뛰어갔다.

 “서나서나야~ 나도 같이 가도 돼? “

 마네는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서나를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친구가 생겨서 기뻐…, 같이 가자…!”

 “서나서나, 시나시나, 빽빽! 너무너무너무 고마워!”

 마네는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마치 빨간 도시를 진심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토끼 같았다.


 “시끄러워, 귀찮아!!!”

 “시끄럽다고 하는 것도 짜증 나!”

 빨간 토끼들은 처음 보는 서나와 빽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금 자신들에게 집중하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푹신한 빨간 발로 계속 땅을 ‘쿵쿵쿵‘ 치면서 말이다.

 “시끄럽다고, 그만 좀 쳐! 짜증 난다고!”

 '쿵쿵쿵'

 “너나 치지 마. 짜증 나니까. 시끄러우면 네가 치지 말던지. 귀찮아!”

 불평할수록 집의 지붕과 꽃, 나무, 풀들이 더 뾰족해지는 것 같고, 빨간색도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구급차의 빨간불 같기도 하고, 더운 여름날 햇볕이 작렬하는 모습 같았다.

 “나빠 나빠 나빠!”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같았다. 어디서 나는지 찾을 겨를도 없었다.

 “매일 이렇지만 언제나 적응이 안돼~ 빨리 가야겠어~”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이곳을 벗어나려고 마네는 서나의 손을 잡고 빨리 앞으로 뛰어갔다.


이전 01화 내 이름은 서나...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