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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06. 2024

내 이름은 서나...서나?

“이쁜 이반 여러분, 길거리 걷다가 이렇게 커다란 박스 본 적 있나요?”

 “아니요.”

 “저게 뭐예요?”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요~”

 “…”

 “뭐지?”

 “전에는 길거리에 전화를 할 수 있는 박스가 많이 있었어요.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요. 자, 사진 보이죠?”

 초등학교 2학년 사슴선생님은 교실 텔레비전으로 네모난 상자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안에는 숫자 버튼이 튀어나와 있고 몸통 옆에 걸려있는 손잡이는 아주 컸다. 그냥 전체적으로 커도 너무 컸다. 무슨 전화기 공장 같아서 안에 작은 요정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선생님, 왜 이렇게 커요? 핸드폰이나 우리 집 전화기는 작은데, 저거 전화기 맞아요?”

 “그니까요! 저기 구멍은 뭐예요? 전화기에 왜 구멍이 있어요?”

 “맞아 맞아. 하하하”

  2학년 2반 아이들은 다 같이 웃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핸드폰이 없었을 때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이 전화기로 전화를 했었어요. 이 세로 구멍은 동전을 넣는 곳이에요. 백 원짜리 동전 있죠? 넣으면 짧게 통화할 수 있어요. 이 전화기를 공중전화라고 해요!”

 “오~~~~ 공중전화!”

 “이제 걸어 다니다가 있는지 봐야지.”

 “나도! 전화공장 같아!”

 아이들은 서로 공중전화의 사진을 봤다가 서로를 쳐다봤다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이 스프링 달린 손잡이 보이죠? 전화받는 수화기라고 해요! 여기를 귀에 대고 말하면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전달되기도 해요. 이건 스마트폰과 같죠?”

 “아~ 소화기요?”

 “아니요~ 수화기요~”

 사슴 선생님께서는 친절하게 공중전화에 달린 물건의 이름이 수화기라고 알려주셨다.

 서나는 한 마디도 없이 교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공중전화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뒤에 있던 민애가 서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나는 저거 본 적 있어. 버스 정류장 옆에 있더라. 사람이 들어가서 말하고 나오던데~”

 “어디서?”

 갑자기 민애 옆 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궁금해했다. 서나도 뒤돌아 눈을 반짝였다.

 ‘신기하다…. 저 작은 세로구멍에…, 동전을 넣으면…, 통화를 할 수 있다니…, 핸드폰은 그냥 누르기만 하면 되는 대…, 민애는 어디서 봤을까…? 나도…, 보고 싶다….’

 “흠흠! 내가 보게 되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어딘지도 가르쳐줘. 보러 가게!”

 “나… 나도….”

 ‘딩동댕동~’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나고 선생님께서는 텔레비전을 끄셨다.

 “이쁜 이반 여러분. 1교시 통합시간이 끝났네요. 공중전화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 편하지만 길거리 지나다니다가 공중전화를 보면 오늘 배운 거 떠올려 봐요!”

 “네!!!”

 서나는 선생님이 텔레비전을 끄실 때까지 공중전화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혼자 중얼거렸다.

 ‘세로구멍에 동전을 넣으면 통화를 할 수 있다고…, 꼭 보고 싶다….’

 서나 뿐만이 아니라 반 아이들은 공중전화에 대해 신기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다.



‘딩동댕동~’

  2교시 국어시간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국어시간이죠! 어제 내준 시 쓰기 숙제해 왔나요?”

 “네!”

 “네니요….”

 “아니요….”

 “네에….”

 서나는 국어시간이라는 사실에 기뻐 눈빛이 반짝거렸다. 시 쓰기 숙제를 한 공책을 꺼냈다.

 ‘선생님께서…, 얼른 내 숙제를 보셨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숙제한 내용을 보셨다.

 “서나는 역시 국어를 좋아하는구나. 잘했어!”

 “헤헤”

 “민애도 잘했네!”

 “귤이 숙제 어디 갔니?”

 서나 뒤에 앉은 귤이는 먼 산을 보고 있었다.

 “엇…, 선생님! 죄송합니당. 제가 놓고 왔나봐용!”

 귤이도 멍 때리다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러는구나! 이 숙제 내일 다시 검사할 테니까 꼭 해오도록! 알았죠?”

 “넹~”

 “네 선생님….”

 선생님은 다른 분단의 아이들 것도 보시고는 교과서를 펴서 읽기 시작하셨다. 서나는 책을 펴 선생님의 읽는 글 속도에 맞춰 눈이 글을 따라갔지만, 귤이는 어느샌가 눈이 서서히 감기며 쿨쿨 졸고 있었다.

 “국어시간 끝! 우리 이쁜 이반 수고 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2교시 후에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귤이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얘는 2교시 쉬는 시간만 되면 사라지지~ 쉬는 시간이 수업시간이야.”

 “그… 그러게….”

 민애는 익숙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5분이 지나자 귤이는 입에 빵을 물고 양손에는 과자와 초콜릿우유를 들고 나타났다.

 “역시~”

 “헉….”

 “먹(냠냠)을(냠냠)래에엥?”

 오물거리기 바쁜 귤이는 선심 쓰며 과자를 내밀었지만 민애가 잡으려고 하자 아까운 표정을 살짝 지었다. 하지만 이에 굴할 민애가 아니었다.

 “고마워 귤아~ 네가 정이 많아서 좋단 말이야! 서나야 먹자!”

 민애는 재빨리 과자봉지를 뜯어 한 입 털어 넣었다. 서나는 귤이를 살피면서 하나를 집어 먹었고, 귤이는 언제 아까워했다는 듯 뜯긴 과자봉지에 손을 내밀어 한 움큼 쥐어 곧바로 입에 넣었다.



 3교시 수학시간!

 사슴 선생님이 들어오시자마자 귤이는 과자봉지와 빵 봉지를 서랍에 넣었다.

 “이제 이 시간만 공부하면 집에 갈 수 있으니 조금만 힘내요! 다들 수학교과서 펼까요?”

 “네!”

 선생님은 칠판에 문제 몇 개를 적으셨다.

 ‘173+210=  , 281-127=   , 372+119=   …….’

 “할 사람? 손들어볼까?”

 “저요!”

 “…”

 민애 혼자만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을 다 살피시더니 말씀하셨다.

 “지금 과자 몰래 먹고 있는 귤이랑 손 든 민애랑 앞에 서나 그리고 옆에 …… 나와서 해볼까?”

 순서대로 칠판에 섰다. 서나는 진땀이 절로 났다.

 ‘372 더하기 119? 좀 어렵다.’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민애는 이미 ‘281-127=154’ 써놓고 자리에 앉아있었고, 귤이는 ‘173+210= ’ 대한 답을 적을 공간에 분필만 찍은 채로 서 있었다.

 서나는 480이라고 적었다가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미소 지으시며 눈빛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뭐지? 헉….’

 당황했다. 맞는 것 같았는데, 놀라서 민애를 쳐다보니 손으로 4.9.1이라고 해줘서 그대로 적고 선생님을 한 번 더 보니 빙그레 웃으셔서 다행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로 들어갔다.

 “너무 쉽지 않았냐. 나는 벌써 3학년 거 공부하고 있어. 정말 쉬워.”

 “민애야…”

 “왜?”

 “너는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똑똑해…, 고마워…”

 “서나! 너는 국어 잘하잖아. 그럼 됐지.”

 “고… 고마워…”

 “그나저나 쟤 귤이는 잘하는 게 없어. 아! 먹는 거 잘하지?”

 “풉”

  민애가 서나에게 속삭였다. 귤이는 결국 못쓰고 들어와서는 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귤아…, 괜찮아…?”

 “서나야! 걱정하지 마~ 너가 아직 얘를 몰라서 그래.”

 민애는 두 팔에 힘을 주고 귤이의 어깨를 당기자 서랍 속에 숨겨놓은 나머지 빵을 몰래 먹고 있었다.

 “우헤헤헤헤 냠냠냠~ 흡! 무… 무… 물….”

 귤이는 무안한 표정을 짓다가 목이 막혀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

 “으이구 말썽꾸러기!”

 선생님이 얼른 달려오셔서 귤이에게 물을 주셨다.

 “선생님. 죄송하고 고마워용.”

 “우리 귤이! 고마우면 수업시간에는 먹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요?”

 “헤헤헤 넹! 아름다운 선생님!”

 “크크크”

 “푸하하”     

‘딩동댕동~’

 무서운 수학시간이 끝났다. 서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앉아있었고, 민애는 콧노래를 부르며 수학 다음 과정을 풀고 있었다.

 ‘민애처럼…, 똑똑하고…, 말도…, 잘했으면 좋겠다….’

수학시간 후 쉬는 시간은 항상 조용하다. 다들 긴장했다가 풀어져서 짧은 쉬는 시간에 자기도 하고 화장실을 많이들 다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 부산스러운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귤이! 4교시가 미술시간이라 가방에서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꺼내 미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야~ 아직 선생님이 그리라고 하지도 않았잖아.”

 “어차피 그리라고 하실 거니까 그리는 거징.”

 “뭐 그리라고 할 줄 알고?”

 “아니면 또 그리면 되징! 메롱~~~”

 민애와 귤이는 참 티격태격을 많이 한다. 짝꿍이라서 그런지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칠판에 무언가 적으셨다.

 ‘자신의 색깔을 골라 아무거나 그리기!’

 “자! 이번 미술시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서 그 색깔에 맞는 물건이나 자연이나 동물, 식물 등 아무거나 그리는 것이 주제예요. 모두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꺼내서 시작하세요!”

 서나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하얀 배경에 어떤 색깔을 쓰면 좋을까?’ 크레스파를 열어 어떤 색깔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지?’

 서나는 뒤를 돌아 민애의 스케치북을 보았다. 민애는 까만색으로 도화지 전체에 칠하고 있었다.

 “민… 민애야 뭐 하는 거야…? 왜 까만색으로 칠해…?”

 “응! 나는 흰색을 좋아해서 하얀 도화지에는 흰색을 칠해도 색깔이 나오지 않으니까 까만색을 먼저 칠하고 흰색으로 그림을 그릴 거야.”

 “우와~~~~ 어…어떤 거 그리게…?”

 “흰색은 많지. 토끼도 있고, 눈송이도 있고, 국화꽃도 있네!”

 ‘역시 민애는 똑똑해. 귤이는 뭘 그리려나?’

 귤이는 갈색 크레파스로 나무를 그리고 어떤 동물을 그리고 있었다.

 “귤…귤아… 어떤 동물이야…?”

 “곰이양~ 나는 곰이 좋앙. 먹고 겨울잠 자잖앙. 하하항”

 서나는 주위를 다 살펴보는데, 서나처럼 고민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다들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이미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처럼 말이다.

 “서나야~ 왜 못 그리고 있니?”

 “선… 선생님. 좋아하는 색깔도 모르겠고, 무엇을 그릴지도 몰라서요….”

 서나는 울먹거렸다.

 “괜찮아. 서나야 천천히 생각해도 돼. 생각이 나지 않으면 굳이 그리지 않아도 되니까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단다.”

 선생님은 서나의 등을 토닥여 주시며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

 서나는 다시 크레파스들을 보는데,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이 보였다. 빨간색을 집었다가도 아닌 것 같아 내려놓고, 주황색을 집었다가도 내려놓고, 다른 색의 크레파스들도 집었다가 내려놓는 걸 반복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채, 수업시간은 끝났다.



 ‘딩동댕동~~~’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사슴 선생님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자, 여러분 이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정리하고, 손 씻고 점심 먹으러 갑시다! 손은 왜 씻는다고 했죠?”

 “소독한다고 했어요!”

 “물로 세균을 씻어야 한다고 했어요!”

 “맞아요. 손 씻고 교실 앞에 모여서 다 같이 급식실로 가요!”

 “네!”

 손을 씻고 다 같이 급식실로 내려갔다. 서나는 미술시간의 여파로 마음이 좋지 않아 조금 느리게 내려가다가 결국은 맨 뒤에서 가게 되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서나 앞에 서려고 하자 먼저 서 있던 민애가 이를 보고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서나야! 얼른 이리로 와~ 얼른!”

 “어…? 어….”

 민애의 부름에 서나는 쭈뼛쭈뼛 대다가 민애쪽으로 가서 같이 섰다. 식판에 밥과 국, 반찬 그리고 요구르트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옆에는 민애가 앉고 반대편에 귤이가 앉았다.

 “볶음밥은 맛있는 것 같아~ 그치?”

 “어…? 어….”

 민애는 맛을 음미하며 먹으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서나는 평소처럼 밥을 씹는 건지, 돌을 씹는 건지 사막화된 얼굴이었다.

 “양! 서낭! 너 요구르트 안 먹징? 내가 먹는당!”

 “어쭈!”

 먹을 거에 욕심 많은 귤이가 서나의 요구르트에 손을 대자 서나는 가만히 있고, 오히려 민애가 귤이 손을 탁 쳤다.

 “민애야…, 나… 나는 괜찮은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야! 귤이 니꺼나 먹어!”

 “양! 서나가 가만히 있잖앙!”

 “그렇다고 남의 걸 그냥 가져가냐?”

 서나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요구르트 누가 먹어도 상관없는데….‘

 “으엉”

 서나는 결국 울음이 났다. 꼭 귤이가 뺏어먹어서 울음이 난 것이 아니라 수학도 못하고 미술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엇! 서나 운다!”

 “서나양 미안행. 울지망~”

 귤이는 사과하며 빨리 자리를 떴고, 민애는 서나의 등을 토닥여주며 식판을 가져다가 치워주었다.      

 서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엎어져 잠깐 휴식을 취했다.

 ‘내가 괜히 울어서 민애랑 귤이가 놀랐겠다…, 너무 미안한 걸….’ 혼자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딩동댕동~’



 5교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왔다.

 다행히도 이 시간은 서나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나는 국어시간과 책 읽는 시간이 좋았다. 하루종일 책만 읽고 글만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정말 말보다는 내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떠서 생각한 게 그냥 떴으면 좋겠어…. 말하는 건 너무 힘들어….’

 서나는 집에서 가져온 책들을 꺼내어 읽었다.

 “곰돌이 카페, 아기 곰돌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닙니다. 엄마 곰돌이들이 아기 곰돌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곰돌이들을 배려해야 해’라고 말하자 아기 곰돌이들은….”

 조용히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곰돌이 카페’는 처음 읽는 내용이었다.

 ‘이것보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더 재미있네. 다음에 가지고 와야지….’

 책 한 권을 다 읽고 또 다른 책을 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사나이가 노란 피리를 불었다. 어른들의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춤을 추며 따라갔다.”

 흥미로웠다. ‘피리 부는 사나이면 리코더를 부는 사나이인가…? 나도 피리를 불면 친구들이 따라올까…? 아냐. 엄마들이 걱정하실 테니 불지 말아야지….’

 귤이는 또 자고 있고, 민애는 또 똑 부러지게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쓰고 있다. 아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적는 것 같았다.

 ‘딩동댕동~’

 마지막 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고, 사슴 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셨다.

 “이쁜 이반 오늘 수고했어요. 내일 만나서 다 같이 봐요! 서로 인사합시다!”

 “서나야 내일 보자. 귤! 그만 좀 먹어”

 “민앵~ 놀리지 망! 서나양 저녁 많이 먹엉!”

 “잘 가…, 민애야…, 귤아….”



 서나는 빨간 책가방을 메고 평소처럼 학교 정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보통 100을 세고 나서 안 오시면 학교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아 혼자서 간 적도 있었다.

 ‘엄마가 일이 많으신가 봐…, 혼자서 갈 수 있어…,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서나는 조금 기다리다가 초록불이 켜지자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길을 걸을 땐, 양팔을 씩씩하게 앞뒤로 흔들고 양다리를 힘을 주며 쿵쿵쿵 걸었다. 학교에서 수업 들을 때 조심스러운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비둘기들도 보이고 강아지들도 있다. 매번 만지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지나쳐오기 일쑤였다.

 서나네 집은 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끼고 앞으로 쭉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첫 번째 집이 서나네 집이다. 날이 약간 저물었지만 그리 어두운 건 아니었다. 엄마와 항상 걸었던 막다른 골목이 나올 때까지 쭉 걸었다.

 그런데 여느 날과 다르게 막다른 골목 벽에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꿈을 가져라’라는 남색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꿈…? 잘 때 꾸는 거…?’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겨 걷는데, ‘쿵’ 무언가와 부딪혔다.

 “아아…, 머리야….”

 서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마를 매만지며 뭔가 하고 보니 유리였다. 유리를 지탱하는 것은 빨간색 기둥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빨간색 기둥 주위를 보니 전봇대는 아니었고 작은 네모난 공간이었다. 키가 작아 고개를 머리끝까지 젖혀 위를 올려다보니, 글쎄, 선생님이 보여주신 그 공중전화와 똑같았다.

 “이게 그 전화상자…? 공중전화인가…? 여기에…, 없었는데….”

 서나는 수업시간에 본 공중전화를 직접 보게 되니 신기했다. 새로운 것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 공중전화상자에 살며시 들어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숫자버튼이 있었고, 옆에는 수화기가 있었다. 서나는 숫자버튼을 누르고 싶어서 살짝궁 제자리에서 깡충 뛰어봤다. 하지만 키가 작아 좀처럼 닿지가 않았다. 그래도 열 번쯤 시도했는데도 아얘 닿지 않아서,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기대했던 마음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만 포기하고 나가려 하니, 갑자기 서나 발 앞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일곱 칸짜리 계단이 생겼다. 이 계단 칸칸에는 위로 향하는 화살표시가 그려져 있었고 층마다 색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엇…, 계단이다…. 그런데 이 색깔들…, 많이 봤었는데…, 뭐였더라….”

 서나는 그 계단을 손과 발을 이용해서 올라갔고 드디어 수화기를 잡았다. 귀에 대보니 ‘뚜뚜’ 소리만 들릴 뿐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 맞아…! 동전을 넣어야 한다고 하셨지….”

 서나는 주머니를 뒤지고 가방을 뒤졌다. 백 원 한 개가 나왔다.

 “세로구멍이 어디…, 아 여기 있다….”

 세로구멍에 동전을 넣는데 자꾸 들어가지 않았다. 자꾸 넣었지만 들어가지도 않았다. 서나는 가로로 동전을 넣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엄마가 기다리실 거야….”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세로로 있던 구멍이 가로로 돌았다.

 “어? 내가 못 넣어서 전화기가 배려해 주는구나…, 고마워…, 전화기야….”

 서나는 드디어 동전을 넣을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누르세요~”

 방송이 흘러나오자 숫자버튼을 보았더니 방금 전 배열과는 달리 버튼이 가로로 줄을 선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지개 색으로 1부터 7까지 칠해져 있었다.

 “아…, 맞아…! 무지개색이야…, 계단도 버튼도 무지개색이야….”

 서나는 아래 계단과 바로 눈앞에 보이는 버튼을 놀란 듯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홀린 듯 빨주노초파남보 순서대로 1에서 7까지 버튼을 눌렀다.

 “이름을 말하시오!”

 “서나….”

 “이름을 말하시오!”

 “서나요….”

 이름을 말하래서 말했는데 자꾸 말하라니까 서나는 풀이 죽었다. ‘내 이름 서나 맞는데, 서나가 아닌가.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이름을 말하시오!”

 “서나…, 서나….”

 이제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용하게 이름을 말했다.

 “접수되었습니다. 띠띠띠~”

 접수가 되었다니, 이상한 전화기였다. 서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그 이상한 전화기 계단에서 내려와 집 쪽으로 뛰어갔다. 저 멀리서 엄마가 오고 계셨다.

 “엄마엄마, 엉엉 내 이름 서나…, 아니야?”

 “서나 맞지. 우리 예쁜 딸 이름 서나 맞지. 왜 울어?”

 “내가… 이름 말했는데… 자꾸 이름 말하래. 저기…, 저거”

 서나는 엄마품에 안겨 검지손가락으로만 공중전화를 가리켰다.

 “어떤 거? 어디?”

 엄마는 이리저리 둘러보셨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깜짝 놀랐다. 어느샌가 공중전화가 사라진 것이었다.

 “어…? 분명히 있었는데… 내가 백 원도 넣었어…, 공중전화 말이야….”

 “아~ 공중전화! 그랬어요? 오늘 수업시간에 배운 거구나! 어디 뿅 하고 사라졌나 보다. 이제 집에 가자~ 서나야~”

 참으로 이상했다. ‘분명히 빨간 박스였는데…, 선생님이 보여준 공중전화 맞는데…, 내 백 원도 넣었는데…, 접수가 됐다고 한 것 같았는데….’

 집에 도착하니 피곤했는지 엄마 품에서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자!”

 엄마는 서나를 눕혀주고 방 불을 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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