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그랬다.
엄마말로는 말 못 할 때부터 동화책을 보면서 자랐는데, 형편이 좋지 않으니 이웃집에서 빌려온 동화책에 낙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낙서한 게 아직도 생각난다.
왜냐면 다 낙서하고 나서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빌려온 거라서 낙서하면 안 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급히 책을 덮었기 때문에~
하하하~
그리고 부모님께서 도배일 하실 때 나를 데리고 가셨는데,
깨끗하게 도배를 다 하고 나서 보니 내가 색연필을 가지고 온 벽을 돌아다니며 낙서를 했다고 하셨다.
거기서 자랑스럽게 잘했다고 칭찬해 달라고 부모님께 봐달라고 했다는 것.
하하하하~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구구단을 초등학교 3학년 때 깨우쳤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재ㅇ교육’이라는 학습지선생님이 계셨는데 내가 너무 못해서 진도가 안 나가니까 선생님이 몇 명이나 바뀌셨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그때 간식으로 내놨던 땅콩을 가지고 줄 세워가면서 천천히 가르쳐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도 같이 가르쳐주셨었다.
어릴 적 선천성 심장병수술로 모든 게 느렸나 싶기도 하지만
심장병수술이 아니라도 느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행동보다는 생각이 많았고
사람이나 사물, 구조를 파악해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관찰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조카와 비교해 볼 때
(조카가 17개월이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기 좋아하고
모든 사물에 호기심이 있어서 자신이 못하면 어른의 손을 빌려서라도 하길 원하고
음식에 있어서도 호불호가 있어서 표현이 확실하다.
아기들 영상들이나 지식들을 접하다 보면 음식에 있어서는 대부분 저런 것 같은데,
호기심이 있어서 어른의 손을 빌려서라도 하길 원하는 양상은 다른 것 같았다.
나의 경우를 들어보면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일을 하면 날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를 안고 도배일을 가셔서 한쪽에 앉혀 놓고 3~4시간 일하고 와도 처음 그 상태로 가만히 울지도 않고 있어서 엄청 순했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반면에 내 조카는 그렇게 가만히 앉쳐두면 본인이 기어서라도 다녔고
여기저기 손에 닿는 건 다 만진다.
그리고 한번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니까 그다음부터는 그 어린것이 넘어질 때 재빨리 머리만 드는 걸 보고 놀랐었다.
나 같으면 그냥 똑같이 또 넘어질 텐데.
이처럼 어릴 적부터 사람과 사물,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자라는 아기들은 현실적응도 빠르지만, 관찰하면서 생각하는 아기들은 현실적응이 어려운 것 같다.
나는 확실히 후자인데,
확실히 숫자나 공간에 있어서는 봐도 봐도 새로웠고
오히려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여담이지만 이런 아기들은 어릴 적부터 손으로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
내 조카 같은 아기들은 알아서 잘하는데, 나 같은 아기들은 그게 안 되니까.
반대로 내 조카 같은 아기들에게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줘야 한다고 한다.
뭔가 반대의 습관을 가르쳐줘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건가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 아무도 없어도 책만 있으면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책이 더 재미있었다.
초등학생을 위한 내용들은 다 교훈적이었어서 도덕이나 인성 발달에는 딱 올바른 길을 잡아줬던 것 같은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접하게 되는 책들은 그러지 못함을 느꼈었다.
어릴 적에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무한대로 할 수 있었는데, 이때는 이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모든 사람이 상상을 나처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대 때 암흑기를 겪고 나니까 긍정적인 상상의 자리에 부정적인 상상이 자리 잡았고
그 긍정적인 상상의 나래도 대폭 줄어들었다는 걸 느꼈다.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니 슬펐다.
그럴 때 글 좀 써 놓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나고 나서도 부모님은 생계가 달려있으니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셨고
오빠는 그런 부모님을 가까이서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다들 10대 때부터 일을 시작하셨다.
돈은 곧 음식이고,
음식은 곧 생명의 에너지인데,
나는 부모님과 오빠가 그 부분에서는 다 책임져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건지 안 느꼈던 건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도배일을 하시고, 오빠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밤늦게 돌아올 때
나는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나 '탈무드', 여러 필독서들을 읽으며 감동받고 있었고, 또 다른 책을 뭐 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 돈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계획이 없었다.
‘지금까지 산 것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애매한 생각으로 살았었다.
남자친구 사귀는 일도 내 삶을 살면서 좋아해야 사귀어야 하는데 내 삶을 다 버려가며 만났다.
그래서 남는 게 없었다.
그래도 주어진 공부는 열심히 했었어도 이 공부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중요하게 생각을 안 했었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존의 기로에서 아주 끝으로 몰렸던 것 같다.
어떻게 찾는지도 몰랐지만
내게 ‘너는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하고 어느 방향이 좋은 것 같다’라고 추천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담당교수님을 찾아가면 될 것을 교수님은 어렵고 또 나 자신이 미래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멘토를 찾을 노력을 안 했었다.
그만큼 현실적이지 못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누구라도 붙잡고 요청을 했을 텐데 말이다.
만약 집이 엄청 찢어지게 어려웠다면 어땠을까?
만약 나에게 뭘 하는 게 좋겠다고 선택해 주고 그 길을 가기까지 하나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전자였다면 그 당시 성격으로는, 부모님께 죄송한 줄 모르고 대학을 계속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만 계속하다가 중국어로는 취업도 못하고 어디 회사 사무직으로 들어갔을 것 같다.
후자였다면 일단은 고마웠을 것 같다. 너무 자아확립이 안 되어있어서 정해주고 도와주면 고맙겠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뭐 어떻게 하라고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러니 환경이나 누구의 영향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라는 뜻이다.
내가 현실적으로 나 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보고 주어진 환경이 어떤지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가고 대학 후에는 무슨 일을 하는 그런 계획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현실적이지 못해서 집에서도 그 어떤 일도 안 했던 것 같다.
집안일의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불효녀다.
그래서 엄마께서 도배일을 하시면서도 오빠랑 나를 케어하시고 집안일도 다 하시고 집안 행사까지 다 챙기셨다.
나보고 엄마 같은 삶을 살라고 하면 못 산다.
정말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일단 건강상 그렇게 살면 금방 숨이 넘어갈 것이고
그러면 내 존자자체가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 같다.
또 그렇게 살다가 포기할 것 같다.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대학 때 중국에 갔던 일도 '가면 중국어를 잘하게 되겠지',
대학을 졸업하면 '뭐든 일하게 되겠지', '뭐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들에 하루하루를 불안한 편안함으로 보냈던 것 같다.
이또한 내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걸 인생의 쉬는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티브이를 보면 김밥부터 팔아서 점점 사업을 넓혀가는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신기했다.
한 가지 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다른 일에 투자하며 넓혀갈 수 있는지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뭘 만들어서 판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가 힘들고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으면 그 일을 꾸준히 할 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또 다른 일에 도전하는 열정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의 니즈가 어떠한지 분명히 이해하고 도전하는 사람 같았다.
조카처럼 주위의 환경과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얻어낸 것처럼.
나는 또 관찰만 한다.
현실적이지 않아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적합한 성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뭐 돈에 빠삭한 사람들만 살아야 돼요?’라고 할 수 있다.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니 세상이지.
예술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소수라고 생각한다.
장사에 있어서는 시장조사를 면밀하고 연구를 하고 자금이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되지만,
예술은 확실히 사람들의 정서를 움직이는 일이라 쉽지가 않다.
음악, 춤, 글 등등 모두 이에 속하는데 현실적이지 않아야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은 인성, 배려, 도덕 이런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게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생존에 적합한 방법을 알고 있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뜻한다.
'세상의 무게에서 가벼워져 구름처럼 떠 다닐 수 있는 특성'을 가리킨다.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인내, 희망, 끈기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특성을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줄 따뜻한 마음도.
취업의 길에서 현실적이지 못하게 살다 보니 결국은 끝까지 다다라서야 현실과 도피가 충돌해서 병으로 도출되었지만,
덕분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아직도 현실적이지 않기에 또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어서 인지 현실감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부모님이나 오빠처럼 내 갈 일을 확실히 알고 직진으로 갔더라면 아플 일도 없었을 테고 돈을 잘 벌면서 보통의 가정을 꾸렸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의 모양은 다양하니 이제는 받아들인다.
주어진 길에서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현실적이지 못해서 상상을 하고 글을 쓴다.
현실적이지 못해서 생각이 많고 관찰이 익숙하다.
현실적이지 못해서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