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의 삶- 2. 정신질환 치료, 첫걸음은 병원

가기 힘들어도, 어떻게든 꾸준히 치료하자

by 손우영




나는 '네가 의지를 가져야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정신질환을 앓던 초반, 엄마와 병에 관련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내가 어떠한 힘도 낼 수 없는 상태인데도 엄마는 '나으려는 의지를 더 만들어야지', '마음을 강하게 먹어봐'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지라는 것조차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더욱 원망스럽곤 했다(지금은 안부 삼아 퇴근길마다 전화를 걸면 작은 것도 잘했다고 해주는 엄마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요새의 나는 하고자 하는 일에 진행이 더디면 '의지를 다지자!!!'라며 파이팅 넘치게 외치지만, 과거에는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괴로운 일이었다.



환자들에겐 나아질 의지를 만들 에너지가 없다


인터넷상에서 다수의 정신질환 환자들은 이런 말이 본인에게 상처가 됨을 호소한다. 일부 전문가들 역시 우울증 환자들에게 의지를 더 가지라는 말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무기력한 사람이 어떻게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일상을 헤쳐나가는 것이 어려운 병에 걸린 사람이, 병이 나을 의지를 어떻게 스스로 만들 수 있을까?



의지를 좀 더 키워보라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우울증이 정말 많이 호전된 사람의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노력해 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면 매우 훌륭한 방향인 것 같고, 환자가 이런 의지를 표명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큰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력해 보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것은, 병을 이겨낼 만한 에너지가 있다는 전제이다. 내가 낫는다는 것은 현재 일상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 더 많은 일들을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증 우울 증상을 겪었던 나는 하루의 외출이 그날의 큰 일이었다. 나는 종종 청소를 할 힘이 없었고, 일어날 힘이 없어 침대가 푹 꺼지도록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나는 일상을 지내는 것도 어려워했지만, 약물 치료를 하며 기본적인 일상을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의지를 가질만한 에너지가 올라와 추가적인 노력(?) 끝에 증상이 아주 많이 호전되었다. 나아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병원 진료와 약물 치료, 상담 치료를 꾸준히 다녔기 때문이다.



시행착오가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병원을 다니자


나는 18년도부터 치료를 시작하며, 총 5군데의 병원을 거쳤다. 처음 병원은 사람들한테 추천을 받아서 갔다. 선생님은 무척 친절하셨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하지만 증상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고, 약 용량도 느는 바람에 결국에는 3차 기관 소견서를 받아 대학병원에 갔다. 대학병원은 일을 다니면서 가기가 약간 부담스러운 점이 있었고, 이때 당시 약 용량도 쓸 수 있는 최대치를 썼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중간에 다른 동네 병원을 가봤지만 약물 치료에서 차도는 없었다. 이후 두 어번의 자살 시도가 있어 다른 2차 기관 병원의 폐쇄병동에 입원할 뻔했으나, 내가 극강 거부하여(?) 병원을 매일 가며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 이후 이모의 추천으로 다른 동네 병원을 가게 됐고, 그 병원에서 상담 치료와 함께 약 2년간 약을 꾸준히 먹었더니 증상이 호전됐다.




내가 5개의 병원을 거치며 느낀 점은, 처음 가는 병원이 무조건적으로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안 맞는다고 대안으로 선택한 병원도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증상이 심할 때는 용량이 높은 약을 먹어도 증상이 줄어들지 않았다. 어떤 약은 증상의 호전 없이 체중 증가나 손 떨림 등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고용량의 약을 먹는다고 반드시 호전되진 않는다. 기존의 복용량보다 낮은 약을 먹어도 종류가 다르면 호전을 바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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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4년 동안 겪다 보니, 중간에는 내가 영원히 안 낫는 것이 아닐까? 했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는 유전적. 기질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는 점도 있어, 낫는다는 개념보다는 평생 관리해줘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맞는 약이 분명히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담당 선생님과의 소통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간다면 약을 먹은 일주일 동안 기분이 어땠는지, 행동이 달라진 것이 있다던지, 일상에 이벤트가 있었는지 등을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나처럼 특별한 이유로 병원을 옮겨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한 군데를 꾸준히 다니며 맞는 약을 찾아가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담당 선생님이 내가 어떤 부분에 취약한지, 어떤 약을 먹으면 차도가 좋지 못한 지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약이 안 듣는다고 무조건 병원을 옮기면, 새 병원에서는 비슷하지만 동일한 약을 써서 결국엔 같은 문제가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약에 부작용이 심한 것 같고, 차도가 없어 담당 선생님과 상담 후 약을 바꿨는데도 차도가 좋지 않다면 병원을 바꿔보는 것은 고민해 볼 만하다. 증상의 종류에 따라 선생님마다 판단하는 진단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나 스스로가 판단이 어려운 경우, 보호자나 나의 질병 상태를 알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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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기가 싫다면 병원 근처에 맛집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실제로 나는 가기 싫은 날이 있어도, 그곳에서 먹던 유부초밥과 쌀국수 세트를 생각하며 진료를 받으러 갔다. 진료가 다 끝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할 때면 오늘 내가 나를 돌봤구나,라는 느낌에 뿌듯한 마음이었고 쌀국수 국물이 맛있어서 그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매주 병원에 가는 것도 엄청난 이벤트인 환자도 있을 수 있겠다. 알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 기록에 남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꺼리는 사람, 심지어는 24시간 동안 밥도 안 먹고 누워있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다. 하지만 정기적인 진료와 치료는 '의지', '정신력'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만들어라도 볼 수 있게 되는 기초적인 영양소나 다름없다. 매주 혹은 몇 주에 한 번, 진료를 꾸준히 받으러 가고 선생님과 해볼만큼 소통해 보자. 이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도와주면 좋겠다. 이것이 익숙해질 쯤에, 여러분은 나를 돌보는 패턴 하나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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