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기막힌 생각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과 맞닿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대한 간절함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이 빌어먹을 향수병은 늙어갈수록 내 삶의 모든 즐거움을 앗아갔다.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생각에 사로잡혀 며칠씩 집 밖을 나오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는 혈기왕성하게 정권을 풍자하는 글을 썼고, 그 글을 무대에 올렸다.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내 영웅심을 불타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마침내 나는 낙인이 찍혔고,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미국으로 가는 배에 태웠다.
“잠깐만 다녀와, 몸 건강. 금방 다시 보자.”
어머니의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2년 뒤 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나는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미국에서 나는 동양인으로서 드물게 브로드웨이에서 이름을 알렸다. 낮에는 배우학교에서 연기를 배우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일을 했다. 빌딩 청소, 세탁소 다림질, 웨이터, 봉제공장 심부름까지. 운이 따랐다. 꽤 비중 있는 동양인 조연 역할로 출연한 연극이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동양 배우가 드물던 시절, 출연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바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화려한 배우, 극작가, 칼럼니스트의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인생의 어둠도 짙어졌다. 가슴 한편에 뚫린 구멍 같은 공허함을 잊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 마약에 취할 때마다 어린아이가 되어 고향 뒷산의 익숙한 흙냄새 속을 뛰어다녔다.
마지막 공연의 기억은 흐릿하다. 객석에 앉은 누군가는 분명 나와 똑같이 생겼다. 공연이 끝나자 나는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유명 인사였기에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나를 도와준다면 후한 사례를 하겠소. 한 달만, 딱 한 달만 나로 살아주시오. 대신 내가 당신으로 한 달을 살겠소.”
14시간의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코끝에 늘 따라다니던 그 냄새, 고향의 흙냄새가 나를 맞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치 내뱉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끝없이 들이마셨다. 입국심사에서 조심스레 한국 여권을 내밀었다. 이름: 김덕만. 심사관은 여권과 내 얼굴을 건성으로 훑더니 도장을 쾅 찍었다. 이렇게 쉽게 고향에 닿을 수 있다니.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마다 마약이 나를 이끌던 그곳으로, 이제 진짜 돌아왔다. 몰라보게 변한 고향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래, 이곳이야! 체제나 이념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고향의 봄밤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한 달이라니, 터무니없어!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
나른한 취기 속에서 행복감이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고통이 번졌다. 온몸이 굳었다. 뒤에서 누군가 나를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이 새끼, 어디 숨어 있다 이제 나타난 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가로등 불빛이 흐릿해졌다. 고향의 흙냄새가 코끝에서 강렬히 진동하다 스러졌다.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이 냄새는 흙냄새일까, 아니면 내 몸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 냄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