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소독약 냄새가 났다. 너무 오랜 낮잠으로 머리가 맑지 못한 것 같다. 머리만이 아니다. 뒷덜미부터 척추뼈 하나하나까지 축축한 침대보에 들러붙어 몸을 좌우로 돌릴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잔 걸까? 어두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온 방을 강탈해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무겁게 짓눌렀다. 간간이 들려오는 신호음은 핸드폰 소리인지, 문자 메시지 알림음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깨어나야 할 텐데. 그때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경쾌하지만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이야?"
낯익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응. 오래가네... 그동안 보약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땀으로 젖은 등과 침대보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든 듯 갑자기 냉기가 느껴졌다. 이들은 내가 여기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마치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투명인간이 된다면 친구 집에 몰래 들어가, 그들이 없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던 것처럼 다음 말이 몹시 기다려졌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
생각과 달리 몸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꿈을 꾸었다. 오랜 지기인 상택이와 현식이와 함께 술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상택과 현식은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던 친구들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들을 '정우의 그림자'라고 놀렸다. 나는 실체였고, 상택과 현식은 언제나 내 그림자였다. 내가 있는 곳은 늘 무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모두가 나를 동경했고,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경멸했다. 물론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존경마저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옷장 서랍을 내 손으로 닫아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을 벗으면, 옷은 뱀 허물처럼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것을 주워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놓는 건 우리 집 식모인 미숙 누나의 몫이었다. 모두가 걸어서 학교에 갈 때, 나는 운전기사가 열어주는 자동차에서 피곤한 듯 내렸다. 그러면 모두 앞다퉈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 위해 애썼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의자를 들고 내 책상으로 다가와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싶어 했다. 교실이 온통 쉰 김치 냄새로 진동할 때, 내 도시락은 소시지와 돼지불고기, 들기름에 바삭하게 구운 김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에이씨~ 이게 뭐야, 어제 먹은 걸 또 싸주면 어떡해! 밥맛 없어..."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한 손으로 도시락을 휙 밀쳐내면, 그들은 여지없이 달려들어 거지새끼들처럼 밥을 퍼먹었다.
그래도 상택과 현식은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나보다 공부도 잘했거니와, 내 남은 음식을 주워 먹는 아이들보다 훨씬 고상했다. 나는 그들의 그런 자존심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먼저 그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나를 거부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교무실로 불려 가 담임 선생님에게 모진 고초를 당하던 바로 그날, 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들을 등록금 납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아버지는 우수학생 장학금 명목으로 그들의 자존심이 구겨지지 않도록 기지를 발휘해 주셨다. 어쨌든 그 후로 그들은 내 평생의 가장 신실한 친구가 되었다. 물론 내가 물심양면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 건 말할 나위 없다.
아까 그 목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처럼 침대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하반신은 거의 감각이 없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려 했지만, 쥐가 난 듯 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이 진절머리 나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 되겠구나! 허허허."
"너 배우 했으면 엄청 출세했을 거다."
"이 새끼 말 뽄새하고는! 그렇게 치면 내가 널 따라가겠냐?"
둘은 주거니 받거니 아주 흥에 겨웠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눈을 뜨려 했으나, 눈꺼풀도 이제 내 지시에 순종하지 않았다. 오직 귀만 더욱 날카롭게 반응할 뿐이었다. 온몸 중에 내 말을 듣는 기관은 귀밖에 없는 듯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입을 뗐다.
"사... 상... 택아..........."
순간 몸이 오리털처럼 가벼워지며 자유로워졌다. 눈부신 형광등 불빛 사이로 상택이와 현식의 잠시 놀란 얼굴과 뒤이은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어디론가 계속 이끌려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내 영혼이 너무 자유로워져서 더 이상 저 몸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간헐적으로 들리던 신호음이 이제 고장 난 기계처럼 일관된 음을 낸다.
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