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시 감상

by 마리안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 밑 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사슴 96쪽)


감 상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선선하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 유쾌한 화자의 느낌이 나의 기분까지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 혹은 어떤 사람에게는 불만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이 화자에게는 감사의 제목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외면하다'라는 단어는 원래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이 시에서는 반대의 이미지로 부각된다. 화자는 마치 턱 끝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콧노래를 부르며 앞을 향해 걷고 있는 한 신사의 옆모습과 같이 느껴진다. 그는 좋은 날씨에 감사하고, 가난한 동무가 새 신을 신어서 감사하고, 똑같은 넥타이를 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감사하고, 작은 월급이어도 꼬박꼬박 수입이 있어서 감사하고, 가난한 집의 싸구려 생선이지만 먹을 것이 있어서 맛있게 조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는 큰일에만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주어진 것,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감사하니 기분도 유쾌해진다.


과거에 한국은 가난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었다. 서로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이웃을 향해 부자였다. 밥 한 그릇도 나눠 먹는 인심이 있었다. 찬이 없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었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금 한국은 부자다. 그러나 마음은 모두 가난해졌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자랑하고 판단한다. 자존심 때문에 화려하게 대접하지 못하면 아예 손님 대접을 못한다. 그래서 모두 외롭다.


몇 년 전 멕시코의 빈민촌에 방문했다. 집이 없어서 흙바닥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 나무사이에서 나뭇잎을 덮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거리를 헤매는 개들은 굶주림에 바짝 말라있었다. 그들은 모두 주인이 있는 개들이었다. 그러나 주인도 먹을 것이 없는데 개들까지 먹이를 줄 수는 없었다. 그토록 가난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독이 없었다. 아이들은 물 한 동이로 물놀이를 하면서도 그토록 즐거워했다. 우리가 식사를 대접했을 때, 그들은 김 한 조각을 먹으며 그렇게 맛있어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며 기분이 유쾌해지는 이유는 서로를 향한 "너그러움"과 "감사"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량한 가을에는 이 시를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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