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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18. 2021

항암은 끝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항암은 끝나고, 3개월마다 정기검사만 남았다.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졌다. 다시는 이런 걱정 끼치지 말자고 2021년 시월의 단풍과 푸른 하늘과 떨어진 낙엽들과도 약속했다. 염려해 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


항암 결과가 나온 날의 산책길.



항암  검사 결과가 나왔다. 항암도 방사선도 안 해도 되고, 가슴뼈 전이는  달에 한 번 뼈주사만 맞으면 된단다. 중요한 건 3개월 후에 있을 정기검진. 그때까지 잘 관리해서 3개월 후에도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며 Dr.  마리오글루샘이 축하의 말과 함께 다정한 미소를 건넸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편이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을 던지답변을 동안 내 머릿속에 회오리바람처럼 맴돌 말 하나뿐. 진짜로 항암을 안 해도 된다고? 정말이었다. 항암은 끝났다.


검사 전날과 면담 전날에 특별히 좋은 꿈을 꾼 것은 아니다. 잠은 잘 잤다. 걱정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검사 결과에 실망할까 봐 남편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시킨 덕분이었다. 항암을 더 할 수도 있고, 방사선을 할 수도 있다고. 당연하지. 그럴 수 있지. 하라면 두말 없이 할 각오도 되어있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남편을 위로할 작정이었다. 검사 결과에는 나뿐아니라 남편도 놀란  같았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리액션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도 그런 사람이었다. 좋은 일에도 안 좋은 일에도 호들갑이 없는  사람. 그래서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사람.



가을 햇살이 초록 풀밭에 초대되면 펼쳐지는 풍경!



두 분 시어머니도 기뻐해 주셨다. 특히 힐더가드 어머니는 저녁에 전화를 드리자 하루 종일 내 생각을 하며 결과를 기다렸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주말 레겐스부르크로 찾아뵈었을 때는 벌써 잊으신 건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알츠하이머 증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첫날은 불안해 보이셨고, 첫날 저녁에 아이가 애완 쥐와 라틴어에 대해 끝없이 재잘대자 그제야 편안한 모습으로 즐거워하셨다. 둘째 날은 훨씬 안정을 되찾으신 것 같았다. 혼자라는 외로움. 본인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것이 불안과 공포와 우울의 원인이 아닐까.


내 항암이 끝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어머니께 더 이상 걱정을 끼쳐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마음으로 의지하시게 해도 뭣할 판에.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에게는 남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거기다 발 통증도 있다. 수술을 하는 것도 어렵고 안 하는 것도 어렵다. 통증은 예고도 밤낮도 없이 부정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다. 문제는 통증은 너무 가깝고 우리는 멀다는 것. 더 이상 어머니가 골프를 치실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머니를 뵙고 뮌헨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내게 베푸셨듯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가을밤. 생각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쌓이고 흩어지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가을 단풍과 뒤늦게 핀 시월의 장미들.



검사 결과가 나온 날 오후에는 산책을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잘 기에 항암 때와는 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앞으로의 3개월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지만 믿고 기댈 언덕도 없다. 일상도 식이도 운동도 기분도 내게 달렸다. 자유가 많아진 만큼 책임도 무겁다. 항암 한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부릴 수도 없다. 산책은 항암 때 만난 이어리스와 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독일 여성이다. 배울 게 엄청 많은 사람이다.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 등 일상이 부지런함 자체인 거 같은데 어쩌다 암에 걸리신 건지가 미스터리 한 사람. 저녁을 안 먹는다는 이어리스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항암 후 따라 하고 있다. 항암 기간에 몸무게가 점차 늘어서 정확히 예전으로 돌아왔기 때문. 오후 5시 전에 적은 양을 먹거나 과일로 저녁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어리스 역시 재 항암은 안 하고, 항암 기간에 매일 받던 방사선만 계속한다. 그런데 추가로 혈전이 생겨 6주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뜻밖의 결과가 나와서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항암 후 3주간 재활 휴양 클리닉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운동 그룹에 가거나 산책도 계속할 것이다. 이어리스와 걷던 길가의 가로수는 노란 리본을 단 듯 노란 물결로 넘실댔다. 햇살이 얼마나 좋은지 여기가 어디인가, 내가 있는 곳이 진정 독일인가, 누구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지 즐거운 고민을 선물로 안겨주던 가을날. 단풍이 든 나무들. 초록빛 풀밭 위로 황금빛으로 떨어진 낙엽들. 누군가의  정원에는 때늦은 장미가 피었고, 출입문 사이로 고개만 내민 핑크빛 장미를 바라보던 오후의 산책. 첫 항암과는 그렇게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작별을 했다.



독일의 가을은 깊어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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