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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27. 2021

뮌헨에서 피트니스

항암 이후의 일상


항암을 안 해도 된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 2주째다. 마음의 긴장이 풀린 탓도 있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흘려보내며, 운동으로 새로운 일상을 세팅하는 늦가을.


뮌헨의 헬스장 Body Street 브로슈



항암이 끝난  3주, 검사 결과가 나온 지도 2가까워온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의미 있게 보냈노라 말할 수 있을까. 내 경우엔 당연히 운동이겠. 뮌헨의 체인점 헬스장 Body Street에서 EMS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항암을 하던 5개월 동안 결심한 것이 피트니스 센터 등록이었다. 트레이너에게 제대로 된 트레이닝받기. 혼자서는 바른 자세를 알기 어렵고, 게을러서 유튜브 보며 따라 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는 주제 파악을 일찌감치 한 덕분이었다. 나이가 주는 한 가지 메리트라면 이런 게 아닐까. 포기가 빠르고, 미련도 오래가지 않는다. 산책만 하니 지루하고, 근육도 함께 키워야겠다는 절실함이 주된 동기였. 항암이 끝나자마자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피트니스 센터는 트람을 타고 매일 지나던 곳이었다. 위치는 병원과 집 사이.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집이 훨씬 가깝다. 지하철로는 한 코스, 걸어서 20분 정도니까. 항암 중에 냄새가 고약한 열대 과일 두리안이 먹고 싶어서 두리안을 사러 집에서 가까운 대형 아시아 숍에 자주 갔다. 피트니스 센터는 바로 그 옆에 있었다. 그날은 백혈구 수치가 낮다고 항암도 못하고 병원에서 공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오전이었는데 햇살이 좋았다. 과일인데도 두리안에는 단백질이 많다고,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는  아닐까 신기해하며 냉동 두리안을 손에 들고 지나 이었다. 어떤 가게 인지도 모르고 무심코 바라본 통유리를 통해 피트니스용 기계가 내 눈 안으로 쑥 들어왔다. 여기가 피트니스 센터? 그러다 누군가와 눈도 딱 마주쳤다. 내 트레이너 탄야 Tanja였다.


탄야는 키가 작고 아담한 몸매의 20대 여성이었다. 마스크가 얼굴에 난 여드름을 다 가려주지도 못하는 청춘. 말할 때 눈이 계속 웃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트레이너들을 인상 보고 뽑나? 모든 트레이너들이 싹싹하고 인상이 좋음.)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답게 몸에 균형도 잡혀있었다. 상체는 날씬 하체는 튼튼. 저게 표준이지. 나도 하체가 튼튼해지고 싶었다. 치매는 허벅지 굵기와 상관관계가 있다잖나.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사실은 전통적인 헬스장에서 걷기도 하고 근력운동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간 곳은 달랑 기계 하나만 있었다. 저 기계로 뭘 하지? 탄야가 말하길 자기 아버지는 전통 헬스장 트레이너라고. 오, 여기서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탄야에게 트레이너 아버지를 소개받으면 되겠네. EMS에 대해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하다고 하니 좋다고 엄지 척을 하셨단다. (당연하지. 그럼 난 반댈세, 하셨겠나. 딸이 트레이너인데!)



내가 가는 뮌헨의 체인 헬스장 Body Street. 대부분 규모가 작다.



'EMS' 트레이닝이 뭐냐고? 나도 아는 바가 없으니 시범으로 무료 트레이닝을 받아보기로 다. 독일어로는 프로베 짜이트 Probezeit. 어떻게 하냐고? 일단 대형 옷가게처럼 커튼으로 가린 개인 탈의실에서 입고 간 옷을 벗어둔. 피트니스용 상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미끄럼 방지용 양말도 는다. 운동화 착용은 금지. (등록 시 개인 운동복과 양말은 구매해야 한다. 가격은 129유로.) 운동 중에 개인 물품은 탈의실에 두고 커튼만 면 끝.  회에 두 명 이상 트레이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분실 우려가 없음. 실용적인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라커룸을 싫어하기 때문에. 번거로워서. 트레이너가 따뜻한 물을 뿌린 조끼를 입혀주고 팔다리와 엉덩이에 보호대 비슷한 것을 착용해준다. 혼자서 그걸 다 하라귀찮을 같았다. (보호대는 아니고 전류가 흐르도록 특수 제작한 것임. 여기에 총만 쥐어주면 여전사!)


드디어 20분간 트레이닝을 받았다. 처음에 20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겨우 20분?이라고 얕잡아 보았다. 기계 앞에 선다. 트레이너가 20분으로 세팅된 기계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자세를 보여준다. 기본자세는 스쿼트. 팔과 다리를 앞/뒤/옆으로 순서대로 들었다 내리며 무릎을 굽히는 동작을 무한 반복한다. 복부, 등, 어깨, 허리, 팔다리, 엉덩이에 차례로 자극을 느낀다. 그것도 저릿저릿한 전기 자극! 트레이너가 강도를 조절해 줌. 정신이 없었다. 동작해야지. 강도를 묻는 말에 답해야지. 끝나고 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짐. 기대하던 바였다. 나처럼 땀이 안 나는 사람에게는 최적. 다음은 계약서를 쓰는 시간. 1주에 한 번. 6개월/1년/18개월로 선택할 수 있음. 가장 저렴한 건 당연히 18개월. 1회/25유로. 한 달/평균 100유로(약 13만 원).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싸. 내겐 적당하다. 독일이 오죽 비싼가. 인건비가 말이다. 피트니스 센터 등록 완성!    

 

첫 시범 트레이닝이 끝나고 근육통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두 번째 트레이닝 때는 탄야가 없어서 다른 트레이너랑 했다. 키가 큰 젊은 여성, 마니였다. 상체는 날렵하고 하체는 당연히 튼튼. 건강미가 철철 넘쳤다.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트레이너마다 동작들은 조금씩 달랐다. 그게 뭐 대수인가. 탄야와 할 때처럼 땀이 철철 넘쳐흐르진 않았어도 다. 집까지는 걸어왔고, 다시 집 근처 공원을 1시간 걸었다. 집에서도 폭이 넓은 운동용 고무 밴드를 무릎 팔꿈치에 끼고 무릎 벌리기와 양팔 벌리기를 쓰리 세트씩 했다. 자고 일어나니 양팔에 묵직한 근육통. 반갑다, 근육통! 피트니스가 주 1회라 나머지 시간엔 운동을 보충하려고 노력 중이다. (독일은 뭐든 주 1회가 대세다. 3회나 매일, 이런 건 없다.) 독일 사람들은 우리처럼 가열차게 살지는 않는다. 대신 휴가와 여행에는 진심인 편. 어쩌나, 난 피가 뜨겁고 무위도식이 어려운 한국인인데. 그리하여 내년 1월 정기검진 때까지 열심히 운동하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뮌헨의 트람. 버스도 트람도 2량으로 길다. (사진에는 다 안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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