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유센터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을 읽었다. 와이파이가 없어 데이터를 썼더니 일주일 만에 데이터가 바닥났다. 책을 읽고 복도를 오가며 오나의 작품을 감상했다. 프루스트의 책과 어쩜 이리 잘 어울리냐며 홀로 감탄하면서.
자연치유센터에 걸린 Thierry Ona(프랑스)의 작품들. (나는 Ona의 그림과 이름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왜 계속 여성 화가라고 생각했을까. 이름이 아니라 성인데.)
20년 전쯤일 것이다. 내가 노랑과 주황과 빨강에 주목하게 된 것이. 아니지. 열광이라고 해야 하나. 그 색들이 내게 스며들었다고 해야 하나. 내 안의 세 가지 빛이 내 밖의 빛들과 조우해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때로푸른빛과 초록에 경탄할 때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경탄일 뿐.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매혹. 그러나편안함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차가운 거리감. 상처 받을 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끌릴 때의 심정같은.안 좋은 예감이 맞아떨어질 때의 서늘함같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에서 다시스완을 만났다. 얼마 만인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럼에도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그와의 작별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스완. 내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고 우아했던 사람. 6권의 끝무렵에 재등장해7권이면소설 무대에서 퇴장**할 사람. 그렇게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가 영원히 사라질사람. 그의 병이꽤나깊어서. 그리하여 6권은 스완에게 바치려 한다. 어쩌면 7권에서도. 애도의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충분하지 않기에. 마음에 담아둔 존재를삶의 무대 뒤로 내려놓는 일이라서.
자연치유센터에서 프루스트를 읽던 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스완을 보지 못했으므로 한순간 스완이 콧수염을 잘랐는지, 스포츠형 머리를 하지 않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스완이 뭔가 변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몸이 몹시 아픈 탓에 모습이 많이 '변한' 것이었다. 병이란 수염을 기르고 가르마 타는 자리를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심한 변화를 일으킨다.*
스완은 우아하게 옷을 입었고,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그를 예전의 그와 연결해 주는 멋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연회색 프록코트를 몸에 딱 맞게 입어 큰 키와 날씬한 몸매가 더욱 돋보였고, 검은 줄무늬가 있는 하얀 장갑을 꼈으며, 들리옹이 이제는 스완이나 사강 대공, 샤를뤼스 씨와 모덴 후작, 샤를 아스 씨와 루이 드 튀렌 백작을 위해서만 만드는 조금은 벌어진 회색 실크해트를 쓰고 있었다.내 인사에 응하는 스완의 매력적인 미소와 다정한 악수를 접하며 나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으므로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훨씬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몇 분 후 내 이름이 불리는 걸 듣고서야 날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나 말투, 그가 내게 한 말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고, 게르망트 씨가 내게 던진 한마디 말로 날 알아보았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도 사교적인 삶의 유희에 능란했고 자신감이 있었다. (...) 이렇게 해서 이 나이 든 클럽 회원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로 한 인사는, 사교계 사람들이 순전히 형식적으로 하는 차갑고 경직된 인사가 아니라,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인사처럼 다른 포부르생제르맹 부인들의 기계적이고도 습관적인 인사와는 달리 정말로 다정하고 진정한 우아함이 넘쳤다.
집으로 돌아와 처음 한 일은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간 일. 치과에서 만난 아드벤스 크란츠 양초.
게르망트네 사람들에게는 살갗이나 머리칼, 맑은 눈길이라는 멋진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고 걷고 인사하고 악수하기 전에 바라보고 손을 잡을 때에도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마치 사교계 인사가 작업복을 입은 농부와 다르듯이 여느 사교계 인사와도 달랐다.
그래서 그들의 친절한 태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색하지 않아도 그들은 우리가 걷고 인사하고 외출하는 걸 보면서, 이 모든 몸짓을 자신들이 하면 제비가 날듯, 장미꽃이 기울어지듯 우아한 몸짓이 되기에 '저 인간들은 우리 게르망트네와는 인종이 달라. 우리는 지상의 왕자야.'라고 생각할 권리가 정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훗날 나는 게르망트네 사람들이 사실 나를 다른 인종으로 생각했으며, 나 자신은 몰랐지만 그들에게서 유일하게 중요하다고 공공연히말해 왔던 재능이란 걸 가졌다고 여겨 그들의 부러움을 자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나중에 나는 이런 신앙의 선언이 절반밖에 진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서 경멸이나 놀라움이 찬미와 부러움과 공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치과 대기실에 걸린 오렌지빛 양초 그림.
마르부르크에 3년을 산 적이 있다. 중부 독일의 헤센 지방. 거기서 결혼을 했고, 아기를 기대했으나 아이는 한참 후에야찾아왔다. 그때 만난 M과 홀가와는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 집을 구하던 처음 석 달은 마르부르크 성 아래 살았다. 마르부르크는 작은 대학 도시였다. 성이 동서남북 사방 어디서나 보이던 곳. 성을 둘러싼 오래된 마을은 도시의 한가운데인 높은 지대에 만들어져 있었다. 아랫동네인 신시가지는 버스나 차가 다니고 도로도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살던 임시 아파트는 구시가지에서도 꼭대기에있었는데, 좁고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올라가야 했다. 그 길들을 따라 작고 정겨운 가게들과 높고 위태로운 집들이 장난감처럼 수직으로 올려져 있었다.
집에서 경사길을 따라내려 오면 작은 분수대였다. 애완견을 위한 물그릇이 있고, 비둘기들이 구구 거리고, 두 갈래길이 나오던 갈림길. 넓고 완만한 왼쪽 길은 작은 예술 영화관과 500년이 넘은 엘리자베스 성당과 기차역으로 이어졌다. 오래된 엔틱 가게들과 주말이면 작은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좁고 구불구불한오른쪽 길은 구시가지의 중심인 마르부르크 광장까지 이어졌다. 작은 옷가게들, 장난감과 문방구들, 아이스크림과 카페와 빵집들 사이에 그림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거기서 오나의 그림을 만났다. 개미허리의 세 여인과 뾰족한 삼각형 양산. 바닷바람을 머금은 듯 부푼세여인의드레스과 둥근 양산. 그림 속에서는 바다마저붉었다. 저렇게 단순한 색으로 저토록 풍성한 표현이 가능하다니. 신선하고신기했다. 오나의 새그림들 앞에서자잃어버린시간들이줄줄이다시되살아나는것까지도.
자연치유센터 복도에 걸린 Ona의 작품들 2. 나는 바닷가의 세 여인들(위/왼쪽)과 저 개미 여인들(위/가운데)를 소장하고 있다.(그림의 제목은 임의로 정한 것임. 원제는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