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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06. 2022

눈보라 속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이별여행>


"쓸쓸하고 얼어붙은 오래된 정원에서
 두 유령이 흘러간 과거를 찾고 있네."


2월의 첫날. 옅은 눈보라 흩날리던 산책로.



2월의 산책길에서 눈보라를 만난 적이 있다. 2월의 첫날. 오후 3시. 뮌헨의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갈 때였다. 돌아보면 짧은 순간이었다.  시간 정도 옅은 눈보라 속을 걷는 일은 신비로움 자체였다.  순간만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없었다. 산책길에 오가는 이가 드물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찰나의 시간. 온전히 나에게만 몰두하는 순수의 시. 오래전 중국의 북쪽 지방에 살 때 만난 눈보라처럼. 귀와 코와 입을 꽁꽁 싸매고도 춥던 곳. 그때 그 눈보라가 그랬다. 전생의 어느 시공간 머물고 있 기분. 무섭거나 춥지는 않고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했다. 뮌헨에서 2월에 만난 눈보라도 그랬다. 가슴속에 밀물처럼 차오르던 환희! , 나 기분 알아, 리치고 싶을 만큼. 현실 속으로 돌아오지도, 깨고 싶지도 않은 꿈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충만한 생의  순간이었다.


그날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중편집 <이별여행>을 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생전에 작가로서의 최고의 지위와 예를 누렸던 사람이. 작가라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을  사람. 그럼에도 정작 자기 자신은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작품에 회의를 품고, 자신의 성공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타고난 우울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과 미국과 브라질에서 망명자로서 살아야 했던 운명이 그의 우울을 깊게 했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전 브라질에서 두 번째 아내와 약물 과다로 동반 자살했다. 로맹 롤랑과 프로이트와 긴 세월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고,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쟁문서 보관소에서 일하며 릴케를 만났다. 작품으로 장편 <미안한 마음>, 중편 <이별여행>과 <당연한 의심> <모르는 여인에게서 온 편지>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자 사후에 출간한 <체스> 등이 있다. 작품 전반에 묘사된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 세계 3대 전기 작가이자 자서전 <어제의 세계>가 있다. 1881.11.28 출생. 1942.2.22 사망함.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다. 짧지만 영원으로 기억될 만한 순간이. 내게는 작년 겨울 암수술 전후에 매일 들르던 곳, 뮌헨의 이자르 강변에서 마른꽃을 피워내던 장미 정원, 로젠 가르텐이 그랬다. 그곳에서 어버린 존재남아있던 장미들과 보낸 간들. 수정처럼 맑은 대기. 갈색으로 박제된 장미 꽃잎 위로 하얀 서리가 꽃처럼 내려앉던 겨울. 눈만 뜨면  날아와 박히던 얼음 가시들은 그해 로젠 가르텐에서 장미꽃들과 함께 얼음꽃으로 피어나 슴에 남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서로의 마음만 확인한 채 갑작스런 전쟁으로 9년을 떨어져 살던 연인이 재회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기쁨과 열정을 테이블 아래 숨긴 채 예의 바르게 대화하던 그들은 <이별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거기서 마주하진실은 두 가지. 인정하기 싫도록 변해버린 현실과  사람의 내면의 풍경이었다. 그들은 다시는 9년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작품 마지막에 소개된 베를렌의 시처럼. 램프 불이 금빛으로 빛나던 저녁, 어둠이 내린 거실에서 오래전 그녀가 그를 위해 읽어주던 구절들. '일렁이는 램프 그림자 속에 앉아 있던 그녀, 가까우면서도 멀고,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처럼.


쓸쓸하고 얼어붙은 오래된 정원에서

두 유령이 흘러간 과거를 찾고 있네*



산책로 입구의 비어 가르텐과 산책로 끝의 작은 운하.



눈보라 속을 걷던 다음날엔 산책로 입구의 작은 성당에 들렀다. 다시 해가 났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지나면 해가 나올 때 것. 뮌헨 동물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는 경사길은 마치 굽이굽이 끝도 없이 이어지 범어사로 오르는 길 한쪽을 떼내어 확대시킨 듯하다. 그 완만한 길을 오르면 작은 찻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크고 반짝이는 구슬이 달린 나무가 있는 비어 가르텐, 오른쪽엔 작고 노란 성당 다. 해가 나올 때면 인생의 온갖 빛나는 것들이 비어 가르텐 마당 입구에 우뚝 선 나뭇가지 위에서 제각기 빛을 다. 사랑과 우정, 연민과 공감, 성공과 실패, 노력과 포기, 희망과 절망, 쓴맛과 단맛. 삶과 죽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인생이다. 무엇을 빼고 무엇을 버리랴. 크리스마스와 연말까지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빛을 잃어가던 구슬들이 지금은 저토록 빛나는데.

 

그 나무를 보자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아이가  살 무렵 한국에 살 때였다. 남편과 아이와 셋이 지금은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신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전남 화순의 이름도 정갈하던 그 암자.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는 암자를 지키던 백구. 큰스님 이름을 가졌던 개들. 암자의 계곡과 뒤편의 정갈하던 대숲. 햇살이 잘 들던 선방 마루. 스님의 맑은 차. 낮은 담장. 깨끗한 마당의 수돗가. 차방 쪽문 밖의 바위를 뚫고 올라온 어리고 어린 나무 한 그루. 크고 시원하고 개방된 공양실. 그곳에서 먹던 나물밥. 더욱 잊을 수 없는 건 암자 아래 큰절에 갔을 때였다. 스님의 도반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계신 그 절 마당에 있던 나무. 수백 년을 살아와 마치 보살이라도 되어 버린  의연하던 그 나무. 굵은 가지마다 걸려 있던 색색의 연등들. 그 기쁨 그 환희! 연등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그 풍경이 아직가슴에 남아있다.


비어 가르텐의 은빛 금빛 나무가 삶이라면 길 건너편엔 죽음이 나란히 누워 있다. 찻길을 벗어나 성당으로 가는 길. 성당의 담벼락 앞쪽으로 해가 잘 드는 야외 공터에는 벤치가 여럿. 덕수궁보다 몇 배는 낮은 돌담길을 따라 작은 성당 문을 들어서면 손질이 안 된 정원. 돌담을 따라 늘어선 십자가들. 그 아래 누워 산 자들을 일깨우는 망자들. 건물 왼쪽 벽엔 예수상. 건물 오른편엔 성당으로 들어가는 철문. 그 문을 향해 걸어가다 보았다. 십자가에 적힌 글귀들을. 어쩌면 이토록 완벽할 수 있나. 삶과 죽음이 별개일 리가. 삶이 없는 죽음, 죽음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을 잊지 말라고, 이것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산다 할 수 있겠지. 묘비명은 말한다. 나그네여.. 이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나그네여, 고요히 멈추고 으시라

그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언젠가 우리는 한 줌 티끌로 돌아가리



산책로 입구의 작고 노란 성당.



*<이별여행 Die Reise in die Vergangenheit> (슈테판 츠바이크, 배정희 남기철 옮김, 이숲에올빼미)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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