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같은 건 돌아보지도 말고

친척 동생들에게

by 뮌헨의 마리


"누나, 저 결혼해요!"
"그래, 니가 결혼을 하는구나."


"누나! 저 결혼해요! 청첩장 드리러 한 번 갈게요."


올해 초 독일에 오기 전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결혼 소식을 전한다며 친척 남동생이 찾아온 것이다. 부산 사는 형도 결혼을 해서 다음 날이 조카 돌이라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조카 돌잔치에 내려가는 길이라 했다. 몇 년 만인가. 결혼이라니. 한국에 돌아와 곧바로 얼굴 몇 번 보고 다음엔 간간이 근황만 전해 들었다.

형이 대학을 중퇴하고 식당일을 하며 동생 대학 등록금과 사법고시 준비를 뒷바라지 한다던 소식도 예전에 들었다. 형의 바람 대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대기업에 입사를 했단다. 애썼구나. 장하구나. 네 형의 노고가 헛되지 않아 다행이구나. 무관심한 아버지 대신 그의 형이 대신 짊어졌던 짐을 벗을 수 있어 나 역시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형제가 태어난 곳은 언니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이웃 마을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날 무렵 우리는 고향을 떠났지만 두 형제 이야기는 외가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외가에서 형제를 본 적도 있어 언니는 언제나 명석했던 첫째 얘기를 하곤 했다.

그들 엄마가 떠났을 때 아이들은 둘 다 어렸다. 둘째는 젖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외가 쪽 일이라 우리 역시 두 형제에게 부채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특히 첫째에게. 엄마가 떠난 후 외가에서 챙겨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유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사람도. 비록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해도, 아버지의 외도 때문이었다 해도, 아이들에게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둘째를 만나기 전 결혼 축의금과 조카 돌잔치용 봉투 두 개를 준비했다. 둘째의 표정이 예전보다 어두웠다. 그토록 밝은 아이였는데. 그 사이 형제의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투병 전에 서로 몇 번 만나기는 했으나 마지막엔 둘 다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때 나도 한국에 있었다. 나라도 나서서 연락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두 번째 이별은 더 가혹했다.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거나, 손 쓸 시간도 없이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손 치더라도. 마지막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기회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었어야 했는데. 그게 나였어야 했다는 자책이 나중에는 죄책감으로 변했다.



솔직히 결혼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엄마를 좋아했을 리 없는 첫째를 대면할 자신도 없었다. 엄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닌 친척 누나인 우리가 떠안아야 할 책무가 너무 버거웠다. 뭐라고 할 것인가. 큰 애야, 미안했다.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나. 둘째가 와서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봉투만 받고 아가자 언니가 말했다. '작은 애가 청첩장까지 들고 왔을 때는 우리에게 와 주었으면 하는 걸 거야. 엄마도 없고 이모도 없으니 누나들이라도 말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톡을 하니 장문의 답이 왔다.


"누나! 저희 형 그런 사람 아니에요. 누나들이 와 주시면 좋아할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결혼하고 조카를 낳고 나서 형이 많이 변했어요. 형수님 덕분 같아요... 그리고 지난 일은 엄마 잘못도 아닌데요, 뭐. 아버지가 잘못하신 거죠."


30년도 넘는 세월이었다. 둘째의 말에 용기를 얻어 결혼식에 갔다.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무정했던 외가를, 무심했던 세상을 대신해 늦게 매를 맞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언니도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웠다.
어린 모습이 남아 있는 첫째를 우리는 금방 알아보았다. 새신랑처럼 얼굴이 환한 첫째와 천진난만한 조카아이. 밝고 싹싹한 첫째의 아내를 보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니와 둘이서 첫째의 손을 잡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잘 자라주다니. 고맙고도 고마웠다. 첫째는 통닭집을 한다고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난 늦은 밤에 둘째의 톡을 받았다.


"누나들!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형이 부산에 한번 놀러 오시래요. 치맥 대접하고 싶다고요."


부모들 일일랑 다 잊고 부디 잘 살거라, 얘들아. 유년 시절엔 우리도 엄마가 곁에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것보다 소중한 건 없단다. 다 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아빠도 되고 좋은 남편도 되어 보거라. 미움 같은 건 돌아보지도 말고 사랑만 생각하고 살아가거라, 동생들아.






버려진다는 것



약속할게 아가야, 널 버리지 않을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를 낳고 나는 생각했다.


이모, 난 유아기 때의 결핍을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요

고 3이 된 친구 딸이 말했다.


우리 형은요, 세 살도 되지 않은 그때 일을 지금도 기억한대요 저는 못하는데요.


태어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던 시간을 건너와
서른을 앞둔 친척 동생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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